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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꽃ㅣ박신규

             박신규

 

달맞이꽃처럼 순식간에 터져요

참지 않는 울음은

봉선화 씨앗처럼 간지럽게 뿌려요

눈물 매단 웃음은

 

열매 감춘 씨방보다 연하게

나무를 새긴 씨눈보다 완고하게

사철 지치지 않고 활짝,

무궁한 꽃이 피었습니다

 

흔들리고 주저앉을 때

귀신같이 쪼르르 달려오는 꽃은

배고프다는 그 꽃은 친히,

목젖 찢어져라 피어납니다

꽃을 품고 굽신굽신

밥벌이에 단내가 납니다



박신규는 꽃을 슬픔으로 노래한다. 꽃은 슬픔의 은유이며 상징이기도 하다. 참지 않는 울음이 달맞이꽃처럼 순식간에 터지고 눈물 매단 웃음은 봉선화 씨앗처럼 간지럽게 뿌려지는 공간에서의 울음이나 웃음은 슬픔의 다른 이름이다.

그에게 무궁한 꽃으로 활짝 피어난 꽃은 열매 감춘 씨방보다 연하게/나무를 새긴 씨눈보다 완고하게사철 지치지 않고 피는 꽃이다. 연하고 완고하게 피는 무궁한 꽃이라면 몸이다. 몸만이 무궁하게 피는 꽃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열매를 감춘 씨방은 연한 몸을,‘나무를 새긴 씨눈은 완고한 몸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문장이다. 연하고 완고하게 사철 지지 않고 활짝피어 있는 무궁한 몸은 우리들의 몸이어서 순식간에 터지는 울음을 가진 몸이고 눈물 매단 웃음을 뿌리는 몸이다. 그러므로 슬픈 몸이다. 몸의 슬픔은 꽃의 슬픔에 다름 아니다.

시적 화자가 흔들리고 주저앉을 때마다/쪼르르 달려오는 꽃은위로자이며 헌신자다. 몸이 몸을 위로하고 몸이 몸을 헌신하는 장면은 좀 더 극적인 결말로 이어진다. ‘배고프다는 그 꽃은 친히,/목젖 찢어져라 피어난다고 노래한다. 배고픈 몸으로 배고픈 몸을 위무하려는 헌신은 목젖 찢어져라 피어난다. 목젖 찢어지게 노래한다고 환언하면 더 분명해지는 이미지다. 어디에도 배고프지 않은 몸은 없다. 몸은 언제나 배고프고 슬프고 외롭다. 몸을 꽃이라했을 때 그 은유는 더 절절하다.

사람마다 꽃을 품고 산다. 꽃은 희망이며 자존이며 불확실한 미래다. 몸을 품고 있는 몸은 굴신의 하루하루를 산다. 굴신의 굴욕과 수치를 견디며 산다.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도 산다.

살아야 몸이니까. 살아야 꽃이니까. 산다는 것은 밥벌이를 한다는 것이고 밥벌이는 치욕이니까.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