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치유라는 의미의 단어 힐링(healing). 우리 주변에 힐링이라는 말이 흔하게 들려온다. 하지만 이 말의 이면을 생각해 보면 그만큼 우리 사회, 우리의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가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다소 급진적인 제목을 가진 『휴식은 저항이다』라는 도서는 쉬어야 우리의 상상력이 발현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흑인 노동역사를 공부하며 백인우월주의와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더 나아가 부지런히 일하라는 권면 속에는 쉼이 곧 ‘수치’라는 것을 내재화하는 방식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적, 장애차별적, 가부장적 체제가 주입한 생산성을 내면화 한다. ‘생산성’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는 욕구와 집착이 우리를 피로와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이끈다”는 저자의 지적이 낯설지 않다. 저자의 적극적 대안은 잠을 자라는 것. 쉼의 구체적인 행위에 가장 기본이 되는 잠을 권면하며 ‘낮잠사역단’을 조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새벽형 인간, 저녁형 인간을 부르짖으며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권하는 사회. 더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한 행동강령을 주제로 한 서점가의 판매순위권 도서들. 부지런히 일하는
용인신문 | 미학자의 일이 아름다움을 말해주는 일이라면 그 일을 탁월하면서도 맛깔나게 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유홍준이다. 유홍준이 펴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국내 12편, 일본 5편, 중국 3편에 이르며 무려 500만 부 이상의 판매 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 외에도 박물관 순례기를 두 권에 걸쳐 출간했다. 유홍준이 새로이 출간한 책은 그의 인생 답사 결과물이다. 유홍준은 자신의 글을 ‘잡문’으로 표현한다. 이는 옛 선인들의 문집을 읽을 때 정통적인 글쓰기라 말하는 저술보다 잡저(雜著)에 인생이 녹아있는데 그 정신을 이어받겠다는 의미에서 쓴 말이다. 도서는 유홍준이 28년 동안 써 온 글을 선별하여 인생만사, 문화의 창, 답사 여적, 예술가와 함께, 스승과 벗 등 다섯 개의 장으로 나눠 수록했다. 후반부에는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담고 있다. 수록된 글은 한결같이 전통과 문화 혹은 사람, 인문적 정신에 대한 진정성이 묻어난다. 담배 이름 하나에서도 추억을 소환하며 좋아하는 바둑으로 한미 FTA를 해석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발굴해 낸 인사동 고서점 주인 이겸로 선생과의 일화도 눈물겹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장례식에 문화재청장
용인신문 | 한국 작가의 노벨상 수상이 발표되고 한 달, 작가와 작품에 대한 열기는 좀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제 누구나 알 법한 문학가의 탄생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예술에 대한 평균 안목이 높아졌음을 실감한다. 그렇다면 노벨상 수상 작품의 무게는 어떨까? 노벨상의 목적이 인류 평화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상이라면 작품의 무게 또한 범상치 않다는 것을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발견한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큰 서사는 우리 현대사 속에서 이념갈등으로 인해 죽은 민간인들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1948년 제주도에서는 빨치산 조직의 진압이라는 명목으로 주민들이 희생당했으며, 한국전쟁 중에는 국민보도연맹원이나 양심수 등을 포함해 10만 명 이상이 학살을 당했다. 소설에서 이들의 죽음은 인선 엄마의 가족사로 대표된다. 이웃 마을로 심부름을 갔다가 화를 면한 엄마는 운동장에 쌓인 시신 속에서 몰살당한 가족을 발견했으며 이후 평생을 시신 위에 쌓인 눈을 잊지 못하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라 한 것은 소설 속 인물들이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다시 과거로 그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다친 인선을 대신해 제주
용인신문 | 파브르는 곤충기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식물기도 적은 학자이다. 파브르에게 매력을 느낀 이상권 작가는 소설가이지만 과학과 미술을 사랑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소년의 식물기』는 작가의 어릴 적 꿈이 눈꽃처럼 꽁꽁 포장되어 있는 도서이다. 이 책은 식물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옛이야기책처럼, 에세이처럼, 소설처럼, 사회평론처럼 읽을 수 있기도 해서 표지 디자인만큼이나 다채롭다는 느낌이 든다. 열 여섯 꼭지에 등장하는 식물의 수가 방대하다. 마늘과 나리와 양파의 상속 방식이 다르다. 우리가 아는 나무의 눈이 꽃눈과 잎눈이 어떻게 다른지도 알게 된다. 뱀딸기와 클로버의 번식을 자식의 독립에 연결해 설명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식물과 연결해 등장하는 또다른 생물들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는 이야기 작가이지만 『소년의 식물기』 속에는 식물의 진화와 형태, 해부학적인 모습, 곤충과의 관계, 화분, 식물들의 역사 등이 다채롭게 서술하고 있다. 작가인 아버지와 딸이 직접 작업한 그림들도 인상적이다. 단순히 식물의 식생을 포섭해 지면에 옮기는 것과 달리 이야기가 있는 식물기라 할 만하다. 나무의 뿌리를 공화국에 비유해 설명한 부분은 인상적이다. 경제논리에 의해 도시개발
용인신문 |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베를린은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이런저런 기념관이 있기도 하지만 도시는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를 기억하는 독특한 문화를 품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베를린은 유대인 학살의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분단의 민낯을 사장시키지 않고 도시 구석구석 유산으로 남겨 두었다. 『기억하는 인간』은 이처럼 과거의 수치를 기억하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인지 짚어 나가는 책이다. 고급스런 프린팅과 디자인 덕분에 이 책은 기억하고자 하는 대상이 아름답게 보이지만 사실은 슬픈 인간의 역사이자 기록이 도서의 주요 내용이다. 어떤 이는 존재를 부정당한 이들을 기억한다. 유대인, 여성, 비국민 같이 타자로 낙인찍힌 이들을 기억한다. 어떤 이는 실패를 기억한다. 실패로부터 진보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는 지나간 시간을 기억한다. 그 시간은 사랑을 완성하고 사람을 살리는 아름다운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실패로부터 진보를 길어올린다는 부분에서 생각할 점이 많은 책이다. 가령 대구지하철 참사를 경험한 것은 우리지만 일본은 다른 나라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다. 연구의 결과 일본은 자국의 지하철을 개선했다
용인신문 | 한국의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으로 반가웠던 한 주를 보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부분 인간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깊은 사유를 언어로 구축한 예술작품으로 드러냈다. 한강 역시 그 깊은 심연을 “시적 산문”으로 드러낸 작가로 호명되었다. 한강의 문장이 상처 입은 인간의 심연을 돌아본다면 조해진의 문장은 상처 입은 영혼을 보듬는 소설이다. 조해진의 작품은 대체로 몫이 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와 자리를 내어주는 작품을 쓰고 있다. 올해 출간한 『빛과 멜로디』는 그의 전작 단편 「빛의 호위」에서 확장한 장편 소설이다. 『빛과 멜로디』는 「빛의 호위」에 등장했던 사진작가 권은의 행보를 따라간다. 작품은 분쟁지역을 누비는 권은이 만나는 사람과 사건들 속에서 분쟁지역에서 사진을 찍어 보도하는 이들의 윤리 의식이나 가치에 대한 사유를 드러낸다. “배경은 아름답고 구도는 안정적이되 그 안의 사람들은 더 아프고 더 불쌍하게 보이는 사진, 혹은 끊임없이 잔인한 이미지를 징집해서 찍은 사진이 과연 세상의 분쟁을 막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의심”을 끊임없이 한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없었다. 유대인을 학살했던 독일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나선 영국은
용인신문 | 사랑받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면 어디까지 용서를 할 수 있을까? 사랑받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면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할까? 자발적 아웃사이더는 정말로 세상과 단절하고 싶은 것일까? 소설 속 에번 핸슨과 코너의 이야기는 뮤지컬이 원작이고 소설이 후에 발표된 작품이다. 아웃사이더로 지내던 코너는 미겔과 가까이 지냈다. 미겔이 불법적인 약을 가지고 있다는 혐의로 재적될 위기에 처하자 코너는 그 대신 누명을 쓰고 재활시설에 수용되기까지 했다. 미겔은 무심했고, 재활시설은 코너에게 더 위험한 곳이었다. 코너가 전학 간 학교에 역시 코너처럼 아웃사이더로 지내는 에반이 있다. 에반 역시 아웃사이더이며 정서적인 문제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자신에게 편지를 써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코너는 에반의 편지를 가져가 버렸고 며칠 후 자살한다. 에반이 쓴 편지는 코너가 에반에게 쓴 유서로 오인되고 그것을 계기로 에반은 점점 더 큰 거짓말을 만들어 낸다. 에반에게는 그렇게라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에반의 거짓말은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서 비롯되었다. 이야기는 몇 가지 궁금증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독자에게 깊은 위로를 선사한다. 에반의 진실은 어떤 식으로 밝
용인신문 | 김기태는 202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무겁고 높은」으로 등단했으며, 2024년에는 『젊은작가상수상집』에 「보편 교양」을 수록하기에 이른다. 그의 소설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에는 두 작품을 포함해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수록되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오랫동안 부조리한 상황에 노출되어 불행하거나 불안한 현재를 살고 있다. 주인공 앞에 펼쳐지는 가난과 모멸과 허무의 원인은 시간의 중첩 속에서 만난 세태의 부조리가 대부분이다. 위선적이고 경쟁적이고 빠른 세계는 개인의 사색을 방해하고 개별성을 무시한 채 어디서부터 잘못된 인생을 살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들고 정신세계마저 피폐하게 만든다. 작품들의 개성은 작품 속 소시민들이 어떻게든 자기 앞에 닥쳐온 불행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 나간다는 평범한 결론에 이르는 방법 때문일 것이다. 깨진 전조등에서 오히려 생의 완전함에 이르는 방법을 찾고, 100 킬로그램 덤벨의 무게에서 발견한 그저 자기와의 약속을 지켜내는 삶. 엘리트들만이 영유하는 고급스런 문화보다 대중가요 속에서 발견하는 생의 진리, 무용해 보이는 고전에서 얻는 삶의 지혜 같은 것들 그리고, 소시민의 연대. 그래서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용인신문 | 히가시노 게이고의 100번째 소설 『마녀와의 7일』이 번역되었다. 소설 제목 중 ‘마녀’라는 말은 18세기 프랑스 수학자 라플라스에게서 기인한다. 그는 만약 어느 순간에 모든 물질의 역학적 상태와 힘을 알 수 있고, 그 데이터를 분석할 만한 능력이 존재한다면 이 지성에게는 불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미래를 정확히 예단한다는 것이 악마와 같은 능력이라 그러한 능력이 있는 인물을 마녀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전직 미아타리 수사관 스끼자와 가쓰시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의 포문이 열린다. 스끼자와가 하던 일은 전국에 지명수배자들의 사진을 기억하고 이들을 길거리에서 찾아내 체포하는 것으로 인터넷이나 전화, 보안카메라 같은 것들이 없던 시절의 수사 방식이었다. 스키자와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직업을 잃었고, 어느 날 중학생 아들 리쿠마를 홀로 남긴 채 살해당한다. 리쿠마는 마녀의 능력을 가졌던 마도카와 함께 미궁에 빠진 아버지의 죽음을 수사해 나가고 여기에 경찰에서는 형사 와키사카가 수사에 참여한다. 『마녀와의 7일』은 마녀의 능력을 지닌 마도카의 능력이 미궁에 빠진 사건에서 실마리는 찾는 점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작가가 작품에 녹여낸 시대
용인신문 | 자유로운 개인이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있다면 고독하다. 우주 공간에서 또 다른 외계의 개인을 만난다면 가장 먼저 상대방의 존재에 대해 무엇을 묻게 될까? 『어둠의 왼손』은 한 개인이 타인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젠더 역할이 사라졌을 때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상상한 작품이다(「젠더(성별)가 필요한가?」, 『세상 끝에서 춤추다: 언어, 여자, 장소에 대한 사색』, 황금가지, 2021. 참조.). 소설의 배경은 겨울 행성 게센이다. 겐리 아이는 에큐멘의 특사로 게센과 동맹을 맺기위해 파견되었다. 게센의 사람들은 ‘케메르’라는 시기를 제외하면 성별이 없이 지낸다. 게센의 두 세력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는데 카르히데와 오르고레인이다. 게센에 도착한 겐리 아이는 처음엔 카르히데에서 지냈으나 정치적으로 복잡해진 상황에서 오르고레인으로 간다. 오르고레인에서는 정치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려 감옥에 갇히기까지 한다. 감옥에서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 겐리 아이는 카르히데에서 반역자로 낙인찍힌 에스트라벤의 도움으로 80여일간 빙원을 뚫고 탈출한다. 그 와중에 겐리아이는 에스트라벤과 대화 중 어둠의 왼손이 빛이라 주장한다. 타인을 섬이라고 명명하고 그 섬에 가고 싶다
용인신문 | 『몽실언니』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권전생은 평생 100여작품이 넘는 집필활동을 하고도 그 수익을 모두 기부해서 아름다운 작가로 널리 칭송을 받았다. 그 중 「강아지똥」은 당대 해, 별, 달 같이 예쁜 동화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을 때 ‘강아지 똥’이라는 특별한 소재로 작품을 써서 주목받았다. 1969년, 권정생의 동화 <강아지똥>이 세상에 등장했다. 어느 날 길가에 놓여진 강아지똥. “쓸데 없는 물건은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다”는 흙덩이의 말을 쉽게 믿지 못하는 강아지똥은 자신의 처지에 슬프고 외로웠다. 그런 주인공에게 민들레는 별이 되는 꿈을 꾸게 한다. 짧은 내용만으로도 <강아지똥>은 30년이 넘게 사랑받아왔다. <강아지똥>은 2004년 원작이 애니메이션으로 공개되며 다시 한번 관심을 받게 된다. 1969년, 기독교아동문학상 동화 부문 응모 매수는 200자 원고지 30매라는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원작은 묻히는 듯했다. 2004년 원작이 알려지면서 그간 삭제되었던 감나무잎 에피소드가 주는 위로에 주목하게 되었고 2024년 원작이 『동화 강아지똥』으로 출간되었다. 『동화 강아지똥』,은 정승각이 표현하는 토속
용인신문 | 우리나라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2024년 7월을 기준으로 주민등록 인구가 약 5100만 명인데 이중 노령인구가 1000만에 육박하고 있다. 유소년인구 100명당 고령인구를 보는 노령화지수도 약 180이 넘고 있는데 이 수치는 작년에 비해 15%나 증가한 수치다. 이렇게 급격하게 대한민국이 나이 들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대책도 필요해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초고령 사회 일본이 사는 법』은 우리보다 초고령사회를 10년 정도 먼저 경험하는 일본의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우리가 힌트를 얻을만한 정보들을 담고 있다. 일본은 초고령사회를 맞아 적극적으로 느린 이들을 위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스타벅스에서 열리는 치매 카페, 마트에서의 느린 계산대, 변두리 지역의 주문형 교통 등은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으로 고령화시대를 준비했을 때 생기는 시너지까지 생각하게 한다. 고령 인구를 소비의 새로운 주체로 보고 필요한 기계장치부터 소비패턴 등을 하나의 문화로 만드는 것도 흥미롭다. 돌봄에서 사후 문제, 유산 상속에 이르기까지 장기적인 안목으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 사례들도 소개되고 있다. 일본은 고령인구를 돌봐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