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밀 흐라발(1914~1997)은 밀란 쿤데라와 카펠 차페크, 야로슬라프 하셰크와 함께 호명되는 체코의 국민작가로 알려져 있다. 프라하 카펠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학교가 폐쇄되고 전쟁이 끝난 뒤에야 졸업을 한다. 1963년 「바닥의 작은 진주」를 발표한 이후 창작을 이어갔으나 1968년 체코에서 일어난 ‘프라하의 봄’ 이후 1989년까지 출간금지를 당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야기꾼들』에 수록된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1963)는 작가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밀로시 흐르마. 소도시의 기차역 수습생이다. 그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아직 남자로서의 자신감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배차계장 후비치카는 전신기사 드데니치카 엉덩이에 직인을 찍을 만큼 대담한 남자이다. 밀로시는 그런 후비치카를 존경의 눈으로 본다. 사회정화 위원회의 위원인 역장은 후비치카에게 호통을 치고 조사원을 부르기까지 했지만 사실 후비치카를 부러워하기는 매 한가지다. 그러니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저 그런 무뢰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대단한 일을 저지른다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나치 독일의 군수물자를 나르는 기차를 폭파하는 인물은 고작 기차
용인신문 | 열심히 달리고 달린다. 실적을 위해, 성공을 위해, 보장된 미래를 위해, 비교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열심과 정열이라는 신화는 건재할까? 『우리는 왜 피로한가』는 이른바 ‘K-피로’에 대한 아홉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의 오늘을 만든 것, ‘K-’로 대변되는 어떤 현상들이 현대인에게는 피로에 잠식당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역변이라는 말이 따라가기 힘들 만큼 빠르고 고도화된 사회에서 열정의 당사자는 피로에 찌들어가고 있으므로 이를 인식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된다는 것이 아홉 논자의 주장이다. 조선시대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빛나는 미래를 꿈꾸는 것과 무관한 이들이 있다는 K_입시. 소비의 신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덜 가지면 더 많은 의무와 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현대판 시지프스 탈출법, 나를 사랑하면 바쁨을 멈출 수 있다는 주장. 한결같이 우리의 심신 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떤 이야기는 바쁨 상태보다 무료함 혹은 지루함에서 변화가 시작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놀라운 처리능력을 가진 ChatGPT의 창의성이 의외로 인간의 창의력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위로를 주기도 한다. 이밖에도 구조화된 폭력이나 정보가 현대인의 안전 욕망과 연결된다는 것도
용인신문 | 백석, 본명 백기행. 『사슴』이라는 유일한 시집을 남기고 북으로 떠난 시인. 그의 작품은 1980년대 후반에서야 해금의 바람 속에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북에서 창작활동을 이어간 백석은 돌연 작품 발표를 중단한다. 소설가 김연수는 북으로 간 백석이 절필하게 된 이유를 시인의 흔적과 작가의 상상력을 버무려 『일곱 해의 마지막』이란 제목으로 세상에 내 놓았다. 소설은 분단 이후 북한에 살던 시인 백석이 마지막 시를 발표하기까지의 일곱 해를 조망한다. 이야기는 선동적 성격의 글과 문학적 글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인 백기행의 행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행은 정책과 사상을 홍보하는 시를 쓰라 요구를 받았다. 기행은 문학가의 양심으로 그에 편승할 수 없었으나 가족이 있으니 난감한 입장이었다. 1956년 소련에서 스탈린에 대한 개인 숭배가 비판받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시 시를 썼지만 혹독한 비판을 받았고 그 때문에 험하다는 삼수로 내몰려 고된 노동을 해야 했다. 1962년 기행은 당이 원하는 시를 쓰지만 그 후로 다시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일곱 해의 마지막』은 시인의 행적을 따라가는 작품이라 머물러 주인공이 펼쳐놓은 시적 순간에 집중해야 할 때가
용인신문 | 2001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그림책 작가 권윤덕의 감독아래 한국작가 11명, 폴란드 작가 2명이 8권의 그림책을 책을 만들고 있다. 이 작업은 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을 위한 프로젝트로 총 10권의 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당신을 측정해 드립니다』(권정민), 『바나나가 더 일찍 오려면』(정진호), 『타오씨 이야기』(장재은)가 먼저 세상에 나왔다. 이중 『타오씨 이야기』는 이주노동자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타오씨가 일하는 곳은 공장이 빼곡하게 들어선 곳이다. 어느 골목 전봇대에는 생활쓰레기 배출 요령이 4개국 언어로 제시되고 있고, 회색 벽에는 두 달에 50만 원인 월세방이 있다는 것 역시 외국어로 쓰인 벽보가 붙어있다.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외국인이 많다는 것, 이들의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타오씨도 그런 외국인 중 하나이다. 그의 고향은 매우 따뜻한 곳이었지만 타오씨가 일하는 공장지역 겨울은 춥고 어둡다. 타오씨의 고용주는 일터의 안전은 뒷전인 것처럼 보이고 말의 의미 전달이 잘 되지 않자 타박을 하고 있는 분위기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곳에서도 이주근로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그래서 딸과 먹을 고
용인신문 | 어슐러 K. 르 귄(1929~2018, 미국). “SF와 환상세계를 넘나들며 관습을 뒤흔들고 경계를 깨는 작품을 다수 집필”했다고 모 포털에 소개된 인물이다. 그의 작품들은 SF와 판타지적 요소가 동시에 등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은유 속에 철학적 화두를, 소외된 자에게는 넓은 마음을, 그리고 인간의 심연 속에 있는 욕망을 엮어낸다. 『바람의 열 두 방향』은 르 귄의 초창기 단편을 모아 1975년 출간한 소설집이며 1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샘레이의 목걸이」는 1964년에 「앤기어의 결혼 지참금」으로 발표되었다. 가족보다 푸른 사파이어가 박힌 목걸이를 더 원하다가 뒤늦게 가족을, 특히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게 된 샘레이에게서 오래된 허무를 발견하게 된다. 「겨울의 왕」은 르 귄의 소설 『어둠의 왼손』으로 발전하게 되는 작품이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의 오멜라스는 한때 BTS의 뮤직비디오 〈봄날〉에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행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하는 마을 오멜라스의 문제는 공리주의의 허점을 드러내는 서사이다. 「해제의 주문」과 「이름의 법칙」을 읽었다면 르 귄의 판타지 소설 『어스시 마법사』 시리즈를 읽을 준비가 된 셈이다.
용인신문 | 저자 구한나리. 그는 수학교사이지만 글을 더 열심히 쓰는 것으로 보인다. 환상문학 웹진 《거울》(mirrorzine.kr)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오래 전 발표해 큰 상을 탔던 소설 『아홉 개의 붓』은 요즘 세태에 필요한 판타지 소설이기도 하다. 신분은 낮지만 세상을 다정함으로 보듬어줄 영웅, 깊은 슬픔과 분노를 위로해 주는 영웅, 희망을 꿈꾸게 해 주는 영웅이 소설 안에 유려한 우리말과 함께 녹아 있다. 희망을 찾아 떠나는 최초의 인물은 아홉 개의 붓과 그 붓의 주인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갈이라는 소녀이다. 이 붓은 세상을 조화롭게 해 줄 물건으로 대대로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다룰 수 있는 주인에 의해 만들어진다. 갈이 만든 것은 그림을 그리는 붓이었지만 이후 등장하는 물건들은 ‘붓’이라 부르는 피리나 도기, 비파와 같은 악기와 같은 물건들이다. 붓의 주인이 갖는 마음새에 따라 붓이 세계를 구할 수도 있고 오용되어 인간에게 해로 돌아올 수도 있다. 갈이와 일행의 여행이 세계를 구하는 희망의 여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목적이 ‘조화’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홉 개의 붓』은 출간한 지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말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용인신문 | 『고래와 대화하는 방법』은 고래에 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생태를 보호하는 것의 의미와 중요성을 말한다. 저자 톰 머스틸은 SBS다큐멘터리 ≪고래와 나≫에서도 소개되었던 동영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는 아내와 함께 카약을 타고 고래를 관찰하던 중 물 위로 뛰어오른 거대한 혹등고래가 덮쳐왔다. 톰 머스틸과 아내는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왔으나 고래를 쫓는 여정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과 고래가 대화를 한다는 제목이 말하듯 이 책은 고래의 소리에서 의미를 알아가기도 하고 반대로 인간의 어휘를 고래에게 알려주는 방법을 소개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인간 입장에서의 언어가 동물에게는 통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인간과 동물이 처한 환경과 문화가 다르기 때문인데, 진정한 고래와의 소통은 고래를 이해하는 것부터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고래가 내는 소리를 수집하기 위해 해저에 EAR(생태음향녹음기)나 웨이브 글라이더와 같은 자율주행 장치들을 바다에 띄웠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들이 모였고 이 자료들은 인공지능의 힘을 빌거나 과학자들의 숨은 노력에 의해 분석되었다. 저자는 탐색과정의 끝에서 걱정거리 하나를 제시한다. 고래의 생태가 위험
용인신문 | 여행을 떠나면 다른 공간에서 좀 더 나은 자유를 꿈꿀 수 있다.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 사건, 풍경은 일상에 지친 사람의 각오를 새롭게 다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나의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의 여정 속에서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이들이다. 오래전 작가 세르반테스가 감옥에서 위대한 작품을 창조했듯 등장인물 진솔도 막막한 현실을 돌파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 자신의 새로운 행보를 찾는 일로 이어진다. 진솔이 아지트로 삼은 곳은 어릴 적 멘토이자 친구 같았던 돈 아저씨의 비디오가게였다. 돈 아저씨는 젊은 시절 정의롭게 살려는 열정을 가졌던 인물이지만 생각처럼 생이 풀리지 않아 고군분투 한다. 그는 영문학과 법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졌으면서 비디오가게를 운영하며 이곳을 찾는 이들과 속깊은 이야기들을 나눈다. 작품 감상을 즐겁게 하는 면모 중 하나는 추억 속 인물들을 만나며 과거에 순수했던 마음을 만나는 대목이다. 돈 아저씨와 친구들이 함께 보고 이야기나눴던 영화, 먹었던 음식은, 그리고 부조리에 대한 저항은 과거 속 한 장면으로 남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현실에 지친 진솔이 발견한 현재는 그래서 희망의 씨앗을
용인신문 |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에 말이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하게”(14쪽) 전달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당한 관계를 지키면서 일을 잘 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사회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덕목이다. 그런데 사람의 관계는 언어가 얽히게 마련인데 언어의 특징이 표면적인 의미뿐 아니라 비언어적인 면을 종합해 맥락적 이해가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 바로 이 책이 필요한 이유이다. 저자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고 말하며 독자에게 용기를 준다. 오해와 왜곡 없이 생각과 진심을 전하는 법, 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 최악의 상황에서도 품위를 지키는 법 등으로 구분되는 본문에는 대화를 이끌어가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들과 갈등 그리고 대안이 소개된다. 각 단원의 말미에는 추천도서를 안내해서 독자들이 더 알고 싶은 부분을 찾아볼 수 있게 했다.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전문적인 용어가 남발되기보다 일상을 중심으로 현상과 문제의식,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말을 하다보면 의도와 다르게 전달되는 이유들이 납득할 만한 근거와 함께 구체적으로 써 있어서 독자가 공감을 하게 만든다. “상대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자기의 과거 경
용인신문 | 개인의 권리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많은 근로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재한다. 사회안전망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고, 노동자의 권리는 지켜지지 않는다. 『철도원 삼대』는 근로자가 경험하는 부조리를 백년 전 역사 속에서 찾아냈다. 소설은 일제강점기 철도원으로 고용되었던 어떤 가족의 역사이면서 보통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와 그가 속한 사회의 안녕을 위해 어떻게 투쟁했는지 속속들이 보여준다. 노동자의 권리와 나아가 독립을 꿈꿨던 이철과 그의 동지들과 역사 속 인물들. 이들은 조선인을 앞세운 일제에 의해 투옥되고 죽기까지 했다. 『철도원 삼대』는 이들을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를 이진오의 시선에서 회고한다. 이진오라는 인물은 현대 시점에서 굴뚝에서 농성 중이며 이백만 할아버지의 증손자이다. 이진오는 기업합병 중 해고된 이들의 복직과 소송 취하를 요구 중이다. 이진오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부조리에 저항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시간이 지났어도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투쟁이 일상의 무게에 눌려 무의미해지는 것이 두렵다. 400일만에 극적으로 굴뚝을 내려오긴 했지만 이진오가 마주한 현실은 비애감만
용인신문 | 장강명은 글을 써서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는 서생이다. 한때는 기자였고 소설을 썼으며 짧은 칼럼도 쓰고 있다. 독서문화 확산을 위한 플랫폼 그믐(www.gmeum)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이주에 소개할 『미세 좌절의 시대』는 저자가 2016년부터 2024년까지 신문과 잡지에 수록했던 칼럼들 중 선별한 글의 모음이다. 『미세 좌절의 시대』는 네 개의 주제로 칼럼을 구분해 소개하고 말미에 에필로그를 덧붙였다. 저자는 현대인이 “늘 비상인 세상, 뜻밖의 긴급한 사태에 힘겨워도 끊임없이 적응해야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며 이들에게 “미세 좌절”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그래서 개인은 거대한 세계에 굴복하고 무력하고 소모된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개인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나친 목표설정에 좌절하기보다 인생의 구조조정을 해 보라 한다. 또, 이론가보다 실천하는 이가 적어서 우리의 세계가 방황하고 있으니 적절한 책임의 당사자가 구체적으로 미세한 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대체로 시류에 편승해 과부하에 걸리는 인생을 살기보다 좀더 인생을 관망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며 문제로부터 적당히 도망치는 힘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관망도 참여도 쉽지 않은
용인신문 | 이사 와타나베는 페루에서 시인 아버지와 그림 작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사 와타나베는 문학과 일러스트를 공부하며 예술을 통한 사회 통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의 그림책은 2024년 볼로냐에서 열리는 세계아동도서축제에서 큰 상을 받기도 했다. 이사 와타나베의 『이동』은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시절에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위로하며 희망을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배경의 검은 색은 그 자체로 절망적인 상황을 암시한다. 어둠 속에 나무들은 잎사귀 하나 키워내지 못하고 앙상하다. 어둠 속에서 이동하고 있는 동물들의 표정은 비장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무기력하기도 하다. 그 뒤를 따르는 유령 하나. 그들이 탄 배는 이편에서 저편으로 도착하지 못하고 와중에 숨을 거두는 동물들. 말이 없는 동물들의 이동은 어떤 언어로도 표현될 수 없는 깊은 어둠과 슬픔과 고통을 품고 있다. 『이동』은 그림책이라고 해서 죽음을 아름답게 위장하지 않는다. 이동하는 동물과 함께 하는 유령은 언제든 누구든 자신의 세계로 구성원을 불러온다. 책 속 인물들이 발견한 희망의 꽃은 이동하는 주인공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평안하길 바라는 작가의 바람이기도 하다. 『이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