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이번 일본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도시는 후쿠오카였다. 공항에서 내려 시내로 들어가는데, 눈에 띄는 게 다양한 경차들이었다. 박스형태의 경차가 정말 종류가 많았다. 작은 도시가 아님에도 다니는 내내 쾌적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다. 작지만 자기 역할을 잘 하는 자동차들. 가끔 서울의 꽉 막힌 도로 위에 앉아 있을 때, 한명씩 타고 있을텐데 이렇게 많은 공간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자기 공간을 많이 갖기를 원한다. 큰차를 선호한다. 그렇게 커진 자기 공간이 결국 전체의 공간을 줄이는 게 아닐까. 자기 것을 조금씩 줄이니 도시가 전반적으로 쾌적해지고, 오히려 공공의 공간을 많이 갖게된 게 아닐까 싶었다. 한국에도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소형차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 이후 방문한 도쿄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후쿠오카의 특수성이었을까?
용인신문 | 한 달여 동안 이 작은 짐을 들고 여행했다. 웬만한 책가방보다도 작다. 내 짐은 원피스, 수영복 한 벌, 천 하나, 나시(민소매), 셔츠, 긴바지와 반바지가 전부였다. 칫솔과 치약, 선크림과 노트 한 권, 그리고 충전기와 수저도 들어있다. 총 옷 세벌으로 한 달을 보낸 셈인데, 거의 매일 빨래를 했다. 차곡차곡 넣지 않으면 모두 들어가지 않아서 제 자리에 넣어야만 했다. 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 생각은 필요하면 현지에서 사자! 였다. 사람 사는 곳이니 필요한 건 그곳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을 거야! 실제로 여행 중간에 추운 지역으로 이동할 때는 중고 물품점에 들려 따듯한 옷을 샀다. 이 정도로 짐을 줄여본 것은 처음이다. 몸에 전혀 무리가 되지 않는 건 물론, 어떤 옷을 입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더우면 나시를 입고, 추우면 셔츠를 입었다. 그렇게 짐을 따라서 단순해진 생활이 꽤 마음에 들었다. 다음에 여행을 가더라도 적은 짐으로 가게 되겠지.
용인신문 | 3년간 기른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가벼운 마음으로 가고 싶었다. 자른 머리는 기부하기로 했다. 여름엔 질끈 묶는 게 더 시원할 때도 있지만, 긴 머리는 무겁기도 하고 말리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매년 여름마다 고민하다가 이번 여름엔 마음을 잡았다. 자르자! 그래도 자르기 전에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 사진 찍는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초여름의 굴포천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사진을 찍었다. 따로 약속을 잡고 사진을 찍는 건 생에 처음이었다. 쑥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담긴 사진. 사진은 참 신기하다. 지난 시간을 그대로 보게 해주니까. 긴 머리 이제 안녕!
용인신문 | 최근에 읽은 책에서 ‘우주적 사고’라는 단어를 발견했다. 그렇게 떠오른 이미지 우주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생각하면 어려운 일도 쉬워진다. 그래봤자 모래 알갱이만한 지구에서 70억 명 중 하나일 뿐인데. 너무 걱정할 거 없다고.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생각은 접어두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하면 명료해진다. 여행 와서 느낀 건,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외국에도 있다는 것. 더 범위를 넓혀서 찾아볼 필요가 있다. 같은 어려움을 느끼고 같은 시도를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
용인신문 | 일본의 마츠리에 왔다. 네팔의 기도깃발인 룽따가 걸려있는 이곳. 전파도 터지지 않는 오지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에 왔다. 캠핑하며 지낸다. 밥을 해먹고,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잼에 참여하고, 새로 오는 사람을 맞는다. 저녁에는 공연을 보고 모닥불가에서 맥주 한잔. 하루에 한 번씩은 꼭 계곡에 몸을 담근다. 시골집에 놀러간 기분. 여름방학이구나~ 싶은 여행이다. 새로운 단어를 배우고, 수다를 떤다. 언어가 중요하지만 또 중요하지 않았다. 몸짓 발짓 손짓으로 보이는 마음들. 같이 밥을 먹고 낮잠을 자고 궁금해하고, 들어주고. 어딜 가도 서로 환영해서 좋았다. 차 마시는데 옆에 앉으면 나눠주고, 밤에는 작은 모닥불들을 사이에 두고 인사를 나눴다.
용인신문 | 침묵. 빈 공간. 머릿속에서도 끊임없는 소리가 들린다. 외부에서도, 내부에서도. 내가 편안한게 중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필요한 것은 사실 물건이 아니라 침묵일지도, 이곳에 존재하고 지금 나의 상태를 확인하기. 필요한 것을 하고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기.
용인신문 | 이번 여름에는 제철 식재료들로 자주 밥을 해먹기로 했다. 팽이버섯 4개에 천원, 방울토마토 한팩에 3천 원 정도니 친구들이랑 한 상 차려 먹어도 만원이면 충분하다. 매일매일 요리를 하면서, 조금씩 늘어간다. 요리는 귀찮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즐겁다. 몇 가지 필승소스 레시피를 알고 있으면 후다닥 밥 해 먹는데 20분이면 된다. 볶거나 굽거나 끓이기 중 하나만 결정해서 한가지 요리랑 같이 먹는다. 조금의 도전이 있으면 더 즐겁다. 리조또를 할 때 우유 대신 두유를 넣어본다거나 토마토 절임을 만들 때 복숭아를 같이 넣는다거나 해본다. 요리하는 여름, 새로워.
용인신문 | 요즘은 “뭐 하는 분이세요?”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게 어렵다. “이거저거 하는 사람입니다~” 하고 슬쩍 넘어간다. 다들 서른이 되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나는 삼십 대가 기대된다. 스무 살 초반엔 불안정하고 알고 있는 게 너무 부족하고,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못 하고 그냥 주저앉아서 울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은 훨씬 낫다. 불안은 언제나 있겠지만, 그때는 경험이 많이 쌓였을 테니까. 내가 대처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졌을 테니까. 점점 나아지고 있을 거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한걸음!
용인신문 | 기간이 짧기도 했지만, 매 여행 때면 가서 글도 쓰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고, 매듭도 하고 싶을 것 같아 조금씩이라도 바리바리 챙기곤 했다. 이번엔 아이패드 하나로 모든 걸 해보자! 하고 가져간 아이패드. 그리고 일기장. 어딜 가든 그림을 그렸다. 요즘은 그림의 밀도에 대해 생각한다. 다 끝난 것 같을 때 한 번 더 보고. 곳곳에 시간을 쌓아 놓는 것. 에잇! 끝났다 하는 게 아니라 꼼꼼히 마지막까지 챙기는 태도를 갖고 싶다고 생각한다.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한 번의 터치보다는 시간차를 둔 두세 번의 손길.
용인신문 | 학교 다닐 때는 길게 이야기 나눠본 적 없던 선생님이 차를 태워 주셨다.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는데 이 대화가 정말 흥미롭고 재밌었다. 선생님은 그사이 6권의 책을 쓰셨고, 주 5일 새벽수영을 하고 첼로를 켜며 살고 계셨다. “내가 있을 장소를 많이 만들어 둘수록 삶이 다채로워진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한 곳에서만 자신을 표현하기엔 우린 다양한 모습을 가졌으니까. 뭐든 한 사람, 한 공간을 통해서만 나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이 친구랑은 그림 이야기를 할 때 재밌어. 저 친구랑은 경제·돈이야기 할 때 말이 통해. 돈은 이걸로 벌고 저걸로 쓰자! 등등…. 무엇보다 다양한 이야기가 통하는 사람을 만날 때 가장 기쁘긴 하지만.
용인신문 | 나 학교 다닐 적, 우리학교에는 멋진 시인 교장선생님이 있었다. 오래전에 못들었던 시창작수업을 늦게 들었다. “너는 신념이 뭐냐” 물으셨다. ‘그런 게 있나..?’ 싶다가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일부러 하지는 않는 거. 행동을 하다가 해를 끼칠수는 있어도요”라는 대답이 나왔다. 너는 ‘선을 행하겠다’는 마음. 쟤는 뭘 하든 그걸 가지고 있으면 되는거야. 어떤 일을 하든 그런 나만의 마음이 먼저라고 하셨다. 그 걸 가지고 문서를 작성하든, 카페를 하든 하는 것이라고. “오늘 겪은 일들 속에서 행복을 찾고 내일 겪을 일들 사이에서 행복을 찾고 밥벌이를 하면서 생긴 일 속에서 행복을 찾는 거야. 대단한 거 없다. 멀리 두고 한 번씩 ‘나 이걸 왜 했지?’ 되물어보면 되는 거지. 그렇게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계속 가는 거지.” 이상이라는 게 명확한 무엇이 아니라 가끔씩 꺼내 보면 되는 무언가라고.
용인신문 | 나 학교 다닐 적, 우리 학교에는 멋진 시인 교장 선생님이 있었다. 오래 전에 못들었던 시창작 수업을 늦게 들었다. “너는 신념이 뭐냐” 물으셨다. ‘그런 게 있나…?’ 싶다가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을 일부러 하지는 않는 거. 행동을 하다가 해를 끼칠 수는 있어도요”라는 대답이 나왔다. 너는 ‘선을 행하겠다’는 마음. 쟤는 뭘 하든 그걸 가지고 있으면 되는거야. 어떤 일을 하든 그런 나만의 마음이 먼저라고 하셨다. 그 걸 가지고 문서를 작성하든, 카페를 하든 하는 것이라고. “오늘 겪은 일들 속에서 행복을 찾고, 내일 겪을 일들 사이에서 행복을 찾고, 밥벌이를 하면서 생긴 일 속에서 행복을 찾는 거야. 대단한 거 없다. 멀리 두고 한 번씩 ‘나 이걸 왜 했지?’ 되물어보면 되는거지. 그렇게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계속 가는 거지.” 이상이라는 게 명확한 무엇이 아니라 가끔씩 꺼내보면 되는 무언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