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8·8 내각 내정자 3명이 자진사퇴를 하자 청와대측이 고육지책으로 ‘모의 청문회’등을 실시할 수 있는 ‘고위공직자 인사검증시스템’을 새롭게 내놓았다. 이번 개선안에는 ‘인사청문면담제’ 도입과 ‘자기검증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검증절차를 거치게 하는 제도로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하는 장치다. 공직에 지명된 사람이 공직수행에 적합한 업무능력이나 인간적 자질여부를 검증하는 시스템이니 꼭 필요한 제도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가 인사청문회를 도입한 것은 2000년 6월, 제16대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법을 제정하면서 시작됐다.
이제 10년이 지났다. 시간과 경험만큼 청문회 수준도 높아졌다. 그 이면엔 언론과 수준 높은 국민의식이 한몫했다.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내각 진출이 어렵다는 게 중론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으니 성과 또한 크다 하겠다.
여하튼 청와대가 시행착오 끝에 도입한 인사검증시스템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인사추천회의를 구성해 유력 후보자들을 뽑아 청문회에 준하는 면담으로 도덕성과 자질, 그리고 역량 등을 최종 검증한다. 그리고 공직후보자 본인 스스로 설문에 응답하는 ‘자기검증서’ 도 항목을 대폭 늘려 종전 150여개에서 200여개로 확대했다. 뿐만 아니라 질적 검증 강화를 위해 자기검증서와 서류검증 사항에 대해서는 현장 확인은 물론 주변 탐문까지 실시할 계획이다.
청와대의 현행 인사시스템도 인사청문회의 단골 메뉴인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탈세, 위장 전입 등을 모두 검증 항목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개선안은 고위직 인사 때마다 문제가 생긴 것은 검증의 범위가 아닌 질과 강도에 있었음을 자인한 셈이다. 이에 야당도 위증처벌 인사청문회 개정안을 제출하기로 하는 등 인사청문회는 점점 좁은 문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정작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고 있다. 전국 대다수의 지방자치단체들은 사실상 정무기능직을 수행하는 산하단체장들을 맘대로 임명하는 꼴이다. 아주 기본적인 법적 인사검증시스템이 작동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야 공개모집 형식으로 채용하고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사 철저하게 공개모집을 했다 해도 인사위원회에서 최종 인사권자에게 복수 추천을 하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그래서 산하단체장들이 순기능보다 정무기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단체장을 비롯한 정치권 인사들이 내 사람 심기에 혈안이 되어 인사권 싸움을 벌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문제는 정치적으로 임명된 산하단체장들은 반드시 도덕성이나 자격, 또는 업무능력 때문에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는데 있다. 산하단체장에 임명된 퇴직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단체장들이 언론과 여론의 뭇매를 감수하면서까지 그들을 챙기는 이유는 행정능력보다는 자신의 재선, 삼선을 위한 충성도를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부의 낯선 전문 인력들을 채용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단체장들마다 경영전문가 영입을 운운하지만, 결과는 항상 아니었다. 이미 후보가 내정되었기 때문에 공채 자격조건부터 까다롭다. 혹시 통과해도 최종 인사권자의 낙점을 받기란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러니 이참에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가 앞장서서 산하단체장들에 대한 인사검증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유명환 전 외교통산부 장관의 낙마를 거울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