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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김종경 칼럼
용인 동부권 관통하는 ‘제2경부고속도로’

19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 전 구간의 개통식이 열린 대구. 개통식 사진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그리고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 등이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어느새 40여 년이 지났다. 처음엔 “부유층 유람로를 만들려느냐”, “1인당 GNP(국민총생산)142달러인 나라에서 그게 왜 필요하냐”는 등 국민들이 반대가 심했다. 야당도 반대했고, 외국에서도 시기상조라며 비아냥거렸던 사업이다.

박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했던 1964년, 1932년 건설된 본~쾰른 간 아우토반(autobahn)을 시속 180km로 달리며 처음 고속도로를 꿈꿨다. 1967년 제6대 대통령 출마 선거공약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발표했고, 그해 11월 건설부 장관에게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지시해 12월엔 ‘국가기간고속도로건설계획조사단’이 출범했다. 박 대통령은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에게 고속도로 건설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사실상 명령이나 다름없었고, 정 회장 역시 박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특유의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공기를 앞당기자. 평생 부르짖은 첫 번째 구호이자 전략이다. 나는 당시로는 천문적이라 할 수 있는 800만 달러어치, 1989대의 중장비를 투입했다. 1965년 말 민간업체가 보유한 총 장비 수가 1647대였던 점을 감안하면 해외에서 사들인 중장비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정 회장은 훗날 자서전에 기록했다.

박 대통령 역시 헬기를 타고 공사현장을 수시로 둘러보았다.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지프를 타고 흙먼지길을 달려가 현장의 ‘전투병사들’을 지휘했다. 그 결과 서울∼수원 간은 착공 11개월 만인 1968년 12월21일에, 수원∼오산 간은 같은 해 12월29일에 개통했다. 1969년에는 오산∼천안 간, 천안∼대전 간, 대구∼부산 구간이 완공됐다.

이렇게 서울∼부산 간 428㎞(현재는 직선화 등으로 416㎞)에 달하는 ‘검은 비단길’이 개통됐다. 행사 세 시간 전까지 도로 도색작업을 할 정도로 밀어붙여 착공 2년 5개월 만에 맺은 결실이다. 요즘 생각하면 기적이나 다름없다.

당초 330억원으로 예상된 공사비는 설계변경과 물가상승 등으로 429억원이 들었다. 연 900만 명이 공사에 동원됐고, 165만대의 장비가 투입됐다. 박 대통령은 개통식 날 1㎞당 1억원이 든 가장 값싼 대(大)예술작품이라며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일일생활권으로 바뀌었고, 경제적 편익 또한 연간 13조 5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자동차 중심의 도로교통을 고착화시키는 부작용도 낳았다. 고유가 시대에 대비한 철도 투자를 많이 늘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경부고속도로의 서울~대전 구간은 이미 고속도로 기능을 상실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제2경부고속도로와 서울 강남권에서 출발하는 고속철도 지선 건설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때마침 국토해양부는 경기부양책의 일환으로 제2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서두르고 있다. 수도권 교통 혼잡을 해소시키고, 행정복합중심도시인 세종시 개발사업 등을 감안한 것이다. 특히 동용인 JCT 등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용인의 동남부 지역은 제2경부고속도로 1구간의 최대 수혜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용인시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온 첫 번째 경부고속도로가 좋은 점도 많았지만, 급속한 도시화로 인한 난개발의 상처도 적지 않았다는 양면의 얼굴을 잊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