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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김종경 칼럼
‘처인성 문화제’ 환영한다

몽고의 침입으로 방어능력이 떨어진 고려정부는 안타깝게도 강화도 천도를 결행한다.

당시로서는 국가위기 상황 모면을 위한 최선책일수도 있었겠지만, 우리 역사상 가장 큰 오점 중에 하나임에 틀림없다.

이 같은 위기상황에서 돋보였던 것은 민중의 힘이었다. 일반 농민과 천민들이 국가를 위해 정부군과 합세해 항몽 세력의 주체가 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농민반란의 폭동군이었던 초적들도 자진해서 전투에 참가”했다. 평북 귀주 부근 마산 초적들은 관군과 함께 황해도 황주 동선역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광주(廣州) 관악산 초적들도 관군과 함께 몽고군을 막아냈다. 그런데 초적들과 합세한 사람들은 바로 노예나 부곡민 등 천민들이었다.

몽고군 제1차 침입시 충주성에서는 양반들로 꾸려진 양반 별초와 노예들로 꾸려진 노군잡류별초(奴軍雜類別秒)라는 두개의 별초 부대가 조직되었다.

하지만 정작 적군이 쳐들어오자 지휘관과 양반 별초들은 싸움은커녕 성을 내팽개치고 도망쳐 버렸고, 노군 잡류 별초들만 끝까지 남아 성을 사수했다고 한다.

특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고종 19년 12월 적장 살리타이를 살해한 처인성 전투다. 현재처인성(處仁城)은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에 위치한다. 당시 처인은 천민들이 모여 살던 곳으로 ‘처인부곡’이라 불렸다.

처인성 전투에서 가장 주목되는 인물은 당연히 승장 김윤후다. 그리고 김윤후의 탁월한 용병술과 리더십을 적극 따랐던 처인부곡민들이다.

김윤후는 관노(官奴)의 명부를 불태워 신분 해방을 약속했고, 몽고군으로부터 빼앗은 소와 말들을 관노에게 나눠 주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것들이 어려운 전투를 승리로 이끈 계기였을 것이다.

처인성 전투를 다시 한번 되새겨본 이유는 용인문화원이 ‘용구문화예술제’를 내년부터 ‘처인성문화제’로 바꿀 계획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행정구역명이 ‘처인구’로 바뀐 마당에 늦은 감도 있지만, 환영한다.

지금까지도 처인성을 기리기 위한 각종 행사가 있었지만, 특색있는 용인의 지역축제로 자리매김시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처인성을 테마로 한 지역축제개발의 필요성이 제기 되었던 터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인근 수원시만 보더라도 그 유명한 화홍문화제가 있다. 오히려 의미를 부여하자면 처인성문화제가 더 크고 의미있는 문화제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다.

용인문화원은 처인성문화제를 통해 처인승첩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항몽 국제교류는 물론 현대적 의미의 축제를 가미할 계획이라고 한다.

더불어 불과 몇 년 안에 문화관광부 지정 전국 30대 우수축제 등재를 목표로 다양한 사업계획을 세우겠다고 하니 박수를 보재지 않을 수 없다.

처인성이야 말로 반만년 역사에서 구국의 역사라는 테마가 있는 곳이기에 축제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아울러 용인시 입장에서는 청소년에 대한 교육적 의미로만 보아도 처인성 만큼 큰 자산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