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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김종경 칼럼
"배 기자! 밀린 원고료는 소주로 사줄게."

1980년대 후반, 나는 한때 문화예술의 불모지였던 용인지역에서 문예운동을 한답시고 단체를 만들어 앞에 나선 적이 있었다. 그때 용인에는 ‘용인문화원’외엔 어떤 문화예술단체도 없었다. 기껏해야 내가 이끌던 문예운동단체와 시동인, 그리고 현 용인미협의 전신격인 미술인 모임 정도였다. 굳이 여기에 하나를 더 낀다면 향토사학 연구모임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 시절 지역사회에 새롭게 나타났던 문화현상은 지역신문 창간이었다. 벌써 20여 년 전 이야기다.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나라 언론사는 미천하다. 일제치하를 거쳐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1979년엔 언론통폐합이 감행됐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1989년에 비로서 언론자유화조치가 발표됐다. 그렇게 지역언론이 창간되기 시작했고, 풀뿌리 민주주의와 정체성 회복을 위한 국민들의 참여와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지역신문들은 창간과 폐간, 또는 휴간과 복간을 되풀이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지금도 초창기 시절 함께했던 지역언론 출신들을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다. 고생 이야기가 주류지만, 되돌아보면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하다. 나 역시 이젠 지역언론인 중에서는 올드 멤버가 돼 버린 셈이다.

90년대 초 전국적으로 지역신문 초창기 구성원들을 보면 소위 운동권 출신들이 주류를 이뤘다. 일각에선 반사회적이란 비판도 있었지만, 꽉 막혀있던 지역사회에 소통과 비판의 공론장을 마련했으니 얼마나 큰일을 했던 것인가.

특히 젊은 기자들은 박봉에도 불구하고 사명감 때문에 희생과 봉사를 해야 했다. 의례 당연히 배가 고파야 된다는 통념이 지배하던 시절,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불과 10년 전으로 만 돌아가도 지금의 편집, 인쇄기술과 인터넷 환경은 상상도 못했으니 이래저래 고생이 심했던 시절이다.

세월이 흘러 이젠 지역 언론을 개척했던 사람들이 지역사회의 주류층이 됐다. 그 중에는 나와 함께 지역사회를 고민했거나 지금까지 뜻을 함께하고 있는 분들이 많다.

오늘은 그 중에서도 오래전부터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조선일보 배한진 기자에게 각별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바쁜 가운데도 햇수로 무려 4년간 용인신문에 매주 ‘노고봉 단상’을 연재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아무런 대가없이 말이다. 원고료 대신 가끔 소주나 한잔 사달라며 시작했던 것이 벌써 4년이라니. 정말 세월한번 빠르다. 사실 이번호가 ‘노고봉 단상’ 연재 마지막이기에 아쉬움과 함께 고마움을 전하고자 함이다.

배 기자는 내 후배이기도 하지만 90년대 초 기자 입문 전부터 나와 함께 용인의 문화를 고민하며 글과 행동으로 함께 했던 동지적 관계였다. 이후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늘 용인을 고민하던 모습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누구보다도 용인에 대한 애정이 앞섰기에 노고봉 단상을 4년이나 써왔다고 생각한다.

배기자는 원래 대학시절부터 소설로 이름을 날렸다. 기자보다는 작가가 더 어울리는 그에 비해 나는 지금까지 어줍잖은 시를 쓴다며 용을 쓰고 있다. 어쨌거나 말은 안해도 그 동안 적잖은 공감대를 형성해 왔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독자들이 더 서운해 할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는 또 올 것이다.

배 기자! 이제 편하게 소주나 한잔 하자구. 그동안 밀린 원고료는 두고두고 소주로 갚아줌세. 그리고 독자들이여! 너무 사적인 이야기를 쓴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때론 이게 ‘김종경의 용인이야기’의 매력 아닌가 싶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