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한때 영화관은 사랑을 배우는 곳이었다. 1980~90년대 스크린에는 늘 애틋한 사랑이 있었다. 멜로물은 물론 액션 영화조차 사랑이 빠지면 성립되지 않았다. 첫사랑을 꿈꾸게 했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는 삶을 동경하게 했으며, 사랑 하나로 세상을 견디는 힘이 영화 속에 있었다. 그 시절 젊은이들의 로망은 세속적인 성공보다 사랑이었다. 하지만 지금 스크린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요즘 화제가 되는 영화와 드라마를 떠올려 보라. 마약, 도박, 사기, 조직 폭력, 복수…. 그 중심에는 예외 없이 살인이 있다. 평범한 죽음이 아니라 연쇄살인, 사이코패스, 시체 훼손 같은 잔혹범죄가 흥행 공식처럼 반복된다. 재미와 몰입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문제는 끔찍함에 대한 ‘익숙함’이다. 처음엔 눈을 돌렸던 장면이 두 번째엔 덜 충격적이고, 다섯 번째엔 아무 감정 없이 지나간다. 반복되는 자극에 적응하는 심리학적 ‘둔감화’ 현상이다. 어느 순간 우리는 사람의 죽음을 비극이 아닌 오락으로 소비하기 시작했다. 현실은 어떠한가. 최근 우리 사회는 상상조차 어렵던 흉악범죄를 잇달아 겪었다. 도심 흉기 난동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남겼고, 안전지대라 믿
용인신문 | 남아프리카공화국에 0대1로 졌다. 답답했고, 실망스러웠고, 화가 나는 경기였다. 누구도 이번 경기력을 잘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감독의 전술도, 선수들의 움직임도, 결과도 모두 아쉬웠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경기 내용이 아니라 인터넷이었다. 포털과 SNS, 유튜브를 가득 메운 댓글들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선수들과 감독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었다. "역대 최악이다", "32강에 가도 창피하다", "감독은 당장 나가라", "국가대표 자격이 없다." 비판을 넘어 조롱과 인신공격이 넘쳐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이 이 댓글들을 하나하나 읽게 된다면 과연 어떤 마음이 들까. 국가대표 선수들은 로봇이 아니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누구보다 이기고 싶었을 것이고, 누구보다 패배가 괴로웠을 것이다. 월드컵이라는 무대는 평생 한두 번 설 수 있을까 말까 한 꿈의 무대다. 그곳에서 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스스로를 가장 크게 자책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경기장을 빠져나오자마자 수십만 개의 비난이 쏟아진다면 과연 다음 경기에서 자신 있게 뛰어다닐 수 있을까. 사람은 격려를 받을 때 자신감을 얻지만, 끊임없이 부정당하
용인신문 | 세계 인공지능(AI) 산업을 이끄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방한 일정을 마치고 떠났다. 국내 산업계는 그가 호평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망 역할에 환호하고 있다. 하지만 냉정히 돌아볼 때다. 우리는 과거 하드웨어 제조 강국이었음에도 인터넷과 스마트폰 생태계의 주도권을 번번이 후발주자로 내주었던 뼈아픈 역사가 있다. AI 시대에 이를 반복할 수는 없다. 공급망을 쥐는 것과 생태계의 주인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피처폰 시대의 강자가 스마트폰 시대의 패권을 자동으로 보장받지 못했듯, 반도체 제조 역량이 AI 시대의 승리를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젠슨 황의 시선은 이미 다음 단계인 ‘피지컬 AI’, 즉 로보틱스로 향해 있다. AI가 화면을 벗어나 자동차, 공장, 물류 등 물리적 세계와 직접 결합하는 시대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AI 플랫폼과 로봇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할 기업을 아직 찾지 못했다. AI 시대의 삽과 곡괭이는 만들고 있지만, 정작 금광의 주인은 가려지지 않은 셈이다. 결국 그 해답을 가장 먼저 증명해야 할 곳은 세계 최대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되고 있는 바로 이곳
용인신문 | 군 개혁은 언제나 매력적인 구호다. 낡은 것을 바꾸고 비효율을 제거하며 미래를 준비한다는 명분 앞에서 반대의 목소리는 쉽게 시대착오적인 주장으로 몰리곤 한다. 그러나 개혁이라는 단어가 붙었다고 해서 모든 변화가 발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가안보와 직결된 군 조직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한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육군사관학교·해군사관학교·공군사관학교 통합 논의 역시 그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통합을 주장하는 측은 합동성 강화를 내세운다. 현대전은 더 이상 육군만의 전쟁도, 해군만의 전쟁도, 공군만의 전쟁도 아니기 때문이다. 우주와 사이버 공간까지 포함한 다영역 전장이 등장한 오늘날, 군종 간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합동성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사관학교를 통합해야 한다는 결론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합동성은 서로 다른 조직이 전문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협력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반면 통합은 서로 다른 조직을 하나의 틀 안으로 묶는 것이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다르다. 협력과 획일화는 같은 단어가 아니다. 육군은 땅에서 싸우는 법을 배운다. 해군은 바다를 이해해야 한다. 공군은 하늘을 지배하는 방법을
용인신문 | 제10대 용인특례시의회 개원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새롭게 구성된 34명의 시의원 중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18명, 국민의힘 소속이 16명이다.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독주보다는, 여야가 서로 존중하고 타협하며 의정 활동을 하라는 시민들의 균형 잡힌 선택이 담긴 결과일 것이다. 기초의회의 원구성은 사실상 국회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이미 여야 모두 대표의원을 뽑기 시작했고, 국회의원 보좌관제와 같은 정책지원관들을 배치한 지 오래다. 그러니 국회처럼 의석수에 따라 다수당인 민주당이 의장을, 소수당인 국민의힘이 부의장을 맡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흐름이 된 셈이다. 그래서 여야 모두 의정 경험이 풍부한 다선 의원을 의장이나 부의장에 추대하는 것이 오랜 관례이자 순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개원을 앞두고 벌써부터 들려오는 파열음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다. 순리에 따른 자연스러운 합의보다는, 저마다의 인물론이나 정치적 도의를 앞세운 경쟁이 과열되는 모양새다. 고작 34명이라는 작은 조직 안에서도 양보보다는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한 이른바 ‘패거리 정치’의 그림자가 엿보인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온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의장단 선출의 오랜 관행인 ‘교황식
용인신문 | 1992년 12월 ‘주간 성산신문’으로 첫 호를 발행했던 용인신문이 2026년 현재 지령 1500호를 맞이했다. 필자가 처음부터 이 신문의 발행인은 아니었다. 창간 후 1년이 지났을 무렵, 지역에서 문화운동을 하던 중 취재기자로 입사했다. 이후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며 경영을 떠맡게 되었고, 현재 발행인이자 편집인, 대표이사로서 오늘에 이르렀다. 지역 주간 신문이 중단 없이 1500호를 이어왔다는 것은 객관적으로도 이례적인 기록이다. 인구 20만의 도농복합시가 110만의 거대 특례시로 급변하는 과정에서, 용인신문은 그 격변의 현장을 가감 없이 기록하는 공적 장치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1500호라는 기점은 자축에 머물기보다 냉정하게 현실을 진단해야 하는 시점이다. 현재 지역 언론이 마주한 미디어 생태계는 극도로 불안정하다. 인터넷 시대의 고착화 속에서 거대 포털사이트의 뉴스 독점 구조는 심화되었고, 텍스트보다 영상에 치우친 미디어 소비 경향은 심각한 이중고를 안겨주고 있다. 생존을 담보하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 속에서 지역 언론은 매 순간 도태의 위기를 겪는다. 이러한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용인신문은 활자 매체의 한계를 넘어 본격적인 유
용인신문 | 6·3 지방선거를 앞둔 용인 지역 정가 분위기가 들썩이고 있다. 이번 선거는 4대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출이 겹친 대규모 선거인 만큼 지역의 향방을 가를 중차대한 변곡점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보들의 면면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드러난 여야의 엇갈린 행보와 공천 잡음 등은 유권자들에게 기대보다 깊은 우려를 안겨준 게 사실이다. 이번 공천 과정에서 나타난 특징은 '기울어진 운동장'과도 비유되는 여야의 엇갈린 처지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후보군이 넘쳐나며 (가)번과 (나)번 등 내부 기호 배정을 둘러싼 과다 경쟁이 벌어진 반면, 야당인 국민의힘은 일부 선거구에서 마땅한 대항마를 찾지 못해 고심하는 인물난을 겪었다. 특히 여당 내에서는 컷오프가 되거나 치열한 경쟁 끝에 탈락한 이들의 반발과 해당 행위로 진통이 적지 않았다. 화려하게 짜인 여야 대진표 뒤편에 도사린 공천 불복과 비방전의 그림자가 자칫 이번 선거를 ‘정치 혐오의 장’으로 변질시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용인시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용인시장 선거다. 현재 용인시장 선거는 국민의힘 소속 이상일 시장의 재선 도전과 더불어민주당 현근택 후보의 대결로 압축되며 전국적인 격전지로 부상
용인신문 | 제9대 용인특례시의회 유진선 의장이 지난 4월 15일, 마지막 임시회를 마침과 동시에 오는 6월 3일 지방선거 불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3선 의원이자 용인시의회 역사상 첫 여성 의장으로서의 임기를 사실상 마무리한 것이다. 권력의 연장이 당연시되는 지방 정치권에서 기득권을 내려놓고 퇴진을 선택한 것은 그 배경과 상관없이 지역 정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유 의장이 NGO 활동가 출신으로서 제도권에 진입해 쌓아온 ‘현장형 정치인’의 자산을 스스로 정리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유 의장의 지난 의정 활동은 ‘최초’라는 상징성과 ‘현실’이라는 장벽 사이에서 부단한 갈등의 연속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자치 30년 역사 동안 남성 위주로 공고하게 다져진 용인시의회에서 첫 여성 수장으로서 조직을 이끄는 일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정치력의 한계가 노출되기도 했고, 주변의 견제와 시기가 맞물리며 9대 의회에 대해 혹독한 비판이 제기된 게 사실이다. 이는 유 의장 개인이 짊어져야 했던 구조적 무게이자, 향후 역사적 평가를 통해 규명되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불출마 선언 이후 유 의장이 보여주고
용인신문 |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따른 인프라 과부하와 그에 따른 지역 주민들의 불편이 가중되면서, 당초 제기되었던 우려가 점차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원삼면 SK하이닉스 부지의 공정률이 높아짐에 따라 주차난과 주거비 상승 문제가 임계점에 도달했고, 현장 인근 상인들과 시민들 사이에서는 실질적인 피해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본지 보도에 따르면 건설 근로자 차량들의 도로 점령 문제가 가장 시급한 현안 문제다. 처인구 이동읍 천리와 양지, 백암 일대 가변도로와 상가 주변을 잠식한 근로자 차량은 지역 상권의 접근성을 저해하고 있다. 현장 내 주차 공간 부족으로 인해 통근버스 정류장 인근에 차량을 방치하는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정작 상가를 이용하려는 시민들이 발길을 돌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역 상인들이 영업권 보호를 위해 보다 체계적인 주차 관리와 실효성 있는 단속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거 시장의 불안정성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숙소 부족으로 인한 임대료의 가파른 상승은 기존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는 지역 공동체의 인구 구조를 왜곡할 우려를 낳기 때문이다. 급격한 변화의 과정에
용인신문 | 용인 처인구 남사읍 창3리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곳을 ‘꽃골(화곡)’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렀다. 이 마을은 지금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반도체 업계의 이목이 쏠리는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국내 최대 규모로 조성될 삼성반도체 국가첨단산업단지의 핵심 시설인 팹(Fab) 1기 예정지가 바로 이곳이기 때문이다. 최첨단 산업의 심장이 용인에 들어선다는 사실은 분명 가슴 벅찬 일이다. 그런데 거대한 개발로 인해 무려 600년의 세월 동안 꽃골을 지켜온 의령남씨(宜寧南氏) 세장지(世葬地)는 이제 사라질 처지가 됐다. 용인신문사 주최로 열린 학술대회를 통해서도 확인되었지만 이곳은 단순한 문중의 선산이 아니다. 조선 개국공신 남은(南誾, 1354~1398)을 비롯해 당대 정치를 이끌었던 인물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나아가 섬세한 필치로 조선 제일의 나비 그림을 남긴 남계우(南啓宇, 1811~1888)의 예술혼이 잠들어 있으며, 한국 고전소설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남영로(南永魯, 1810~1857)의 『옥루몽(玉樓夢)』이 잉태된 인문학적 토양이기도 하다. 14세기부터 17세기에 이르는 묘제 양식과 당대 최고 수준의 석물 조각이 고스란
용인신문 |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당의 공천 검증이 본격화됐다. 각 정당은 공천 기준을 강화하고 엄격한 도덕성 검증을 천명했으나, 정작 현장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비현실적인 당규도 문제지만, 곳곳에서 ‘정무적 판단’이라는 이름의 불투명한 장벽이 공천 검증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용인지역 정가에서는 인물에 대한 실제 평가와는 별개로, 정당의 공천 기준에 따른 과거의 오점을 빌미로 경선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를 두고 자칫 공천 경쟁 상대자의 투서와 음해에 기반한 ‘정치적 제거’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여야 공천 기준의 핵심 잣대 중 하나는 2018년 12월 시행된 이른바 ‘윤창호법’이다. 양당 모두 법 시행 이후의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단 1회만으로도 부적격 판정을 내리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문제는 법 시행 이전 기록에 대한 처리 방식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통상 ‘15년 이내 3회(혹은 10년 이내 2회)’ 이상의 전력을 부적격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음주운전을 두둔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법리적으로 볼 때, 행위 시점을 기준으로 죄의 경중이나 면제 여부를 결정한다는
용인신문 | 최근 필자를 포함한 여섯 명의 동화 작가가 전쟁 동화 앤솔러지 『총소리가 들리는 언덕』(별꽃어린이)을 출간했다. 이 책은 총성이 울리는 순간 일상이 파괴되고, 폭격 속으로 내몰린 ‘아이들의 시간’에 주목하고 있다. 전쟁이라는 폭력 앞에서 무방비로 노출되었던, 그리고 총성이 멎은 뒤에도 상실과 단절의 유산을 짊어져야 하는 참전 지역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자 기성세대의 반성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현실은 책 속 이야기보다 더 참혹한 상황을 연출했다. 지난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의 기습 공격 과정에서 이란 남부 미나브시의 한 초등학교가 폭격당했다. 3월 3일 치러진 장례식에서는 무려 175명의 어린 여학생들이 차가운 땅에 묻혔다. 30분 간격으로 발사된 두 발의 토마호크 미사일은 평범한 교실을 한순간에 무덤으로 바꾸었다.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폭격을 주도한 자들의 민낯은 악랄했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등 주요 언론에 의해 미군의 소행임이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이란의 자작극’이라며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발뺌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역시 수천 명의 민간인 희생 앞에서도 전과(戰果)로 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