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용인시장학재단이 창립 21주년을 맞았다. 지난 9일 용인시청 컨벤션홀에서 열린 창립기념식에는 이상일 용인특례시장을 비롯해 윤원균 용인특례시의회의장, 김춘식 재단 이사장, 재단 이사회, 자문위원회, 장학협의회 등 95명이 참석해 21번째 기념일을 축하했다. 이 시장은 “빌 게이츠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역설하며 기업인들이 기업활동을 통해 일군 부를 청소년을 위한 장학사업과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인류의 미래를 개척하는 일이라고 했다”면서 “시와 장학재단이 함께 노력해 지역 학생들을 지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재단 발전과 장학기금 조성에 기여한 공로로 용인시장 표창(김윤영재단 이사, 김성혁 자문위원회 사무총장, 김경미 장학협의회 이사, 고광일 고영테크놀러지 대표, 화운사 선형스님)과 용인시의장 표창(김명돌 재단 이사, 곽은호 자문위원, 김덕환 장학협의회 부회장, 추상구 장학협의회 부회장, 장경사 정휴스님)을 시상했다. 김종기 자문위원장 등 재단 운영 공로자 4명에게는 김춘식 이사장이 공로패와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어진 기탁식에서 고영테크놀러지, 용인지역건축사회, 공사감리위원회, 거남복지재단, 농협중앙회, 용인농협, 기흥농협, 포곡농협, 진성강건(주), 남호건축사사무소, 재단 이사회 임원 일동, 임갑순 이사, 기흥구장학협의회에서 총 9050만원의 장학기금과 500만원의 장학사업비를 기탁했다. 지난 2001년 설립된 용인시장학재단은 장학사업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영어 교육 제공, 유소년 축구 꿈나무 육성지원, 학자금 대출이자 지원 등 청소년과 대학생을 지원하고 있다. 장학사업은 진학장학금, 우수장학금, 효행장학금, 향토장학금, 보훈장학금, 주거비장학금, 서포터즈장학금, 자립장학금 등 13개 분야로 세분화해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원한 학생만 1만 200여 명으로, 84억 원 규모다. 장학기금 조성에는 지역의 많은 기업과 단체, 개인 등이 함께하고 있으며 현재 총 221억 8500만 원의 기금이 조성돼 있다.
[용인신문] 용인문화재단 제6대 대표이사로 김혁수 전 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이 취임했다. 용인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로, 지난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문화재단을 이끌었던 김 신임대표는 4년 만에 제자리로 돌아오게 됐다. 시에 따르면 김 신임대표는 지난 12일 용인시장실에서 임명장을 수여받고 업무에 돌입했다. 이상일 시장은 이날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용인특례시 문화예술 분야에서 질적 변화를 이뤄 도시의 경쟁력과 시민 삶의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표는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사업단장을 거쳐 용인문화재단 초대 대표를 맡았다. 재임 초기 포은아트홀 개관작으로 브로드웨이 뮤지컬 ‘레미제라블’ 한국어 초연을 유치해 국내 공연예술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또 전국 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과 강원 춘천문화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 지난 1993년 극단 ‘금병의숙’ 창단을 계기로 공연예술계에 본격 투신해 50여 편의 연극·국악 등을 연출한 김 대표는 30여 편의 희곡을 창작·각색하는 등 왕성한 극작 활동을 벌였다. 김 대표는 다양한 문화예술 공공기관에서 활동하며 문화재단 경영에 대한 역량과 경험을 고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시정 비전인 ‘함께 만드는 미래, 용인 르네상스’ 구현에 일조하도록 용인문화재단 임직원과 함께 용인특례시 문화예술의 더 큰 변화와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용인신문] 용인동부경찰서 경찰발전협의회장으로 이경주 전 용인청년회의소 회장이 취임했다. 동부서 경찰발전협의회는 지난 15일 처인구 유림동에 위치한 페이지 웨딩홀에서 회장 이취임식 및 송년회를 열었다. 이 신임회장은 취임사에서 “동부서 경찰발전위원회는 경찰의 협조자로서 본연의 목적에 부합되도록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고 생각한다”며 “저 또한 신임회장으로서 보다 적극적이고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경찰행정 발전과 우리 위원회의 위상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고 말했다. 경찰발전위원회는 전국적인 경찰 자문기구로 경찰행정에 대해 지역 주민을 대표하며 민·경간 소통의 창구로 협력치안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동부서 경찰발전위원회는 매년 불우이웃돕기는 물론, 합리적인 치안정책 수립을 위한 자문역할과 여성·아동 등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정책 제언 등의 역할을 해 왔다. 유제열 용인동부경찰서장(사진 왼쪽)과 이경주 신임 경찰발전협의회장이 취임식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노작 홍사용 묘지기 능참봉 자처 ‘나는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헌시 [용인신문] 손택수 시인의 시집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가 문학동네시인선 180번으로 출간됐다. 노작문학관 관장으로 있는 손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이다. 현재 손 시인은 노작 홍사용 묘를 지키는 능참봉을 자처하면서 노작을 기리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이번 시집에 능참봉으로서 몇 개의 시를 선보이고 있다. “…화성도 동탄 돌모루 왕릉으로 왔다 왕릉은 왕릉인데 눈물의 왕을 모신 누릉(淚陵)인지라 낯선 타지에서 눈물깨나 쏟을 것이라고 다들 고개를 흔들었으나 죽음을 마주하는 청직을 어찌 사양할 수 있을까 미관말직이긴 해도… 눈물을 봉분으로 섬기는 일에 어찌 소홀함이 있을까 오호라 종구품 음직인들 어떠랴 눈물을 고배율 렌즈처럼 닦아 하늘을 보자꾸나 경술년 중추절 앞 벌초를 하고 내려오는 잠시…”(시 ‘눈물 봉분-동탄 5’에서) 손 시인은 시 ‘나는 눈물의 왕이로소이다’를 쓴 눈물의 왕 홍사용에게 능참봉 시인으로서 눈물의 헌시를 바치고 있다. 원래 홍사용은 용인 기흥구 태생이며 현재 화성에 잠들어 있다. 화성 통탄에 소재한 노작문학관 손 관장이 노작 공원에 옥매화를 심고서 귀한 소리까지 챙기고자 마음을 쓰는 모습 또한 능참봉의 정성이 아니겠는가. “…/ 옥매를 좋아하는 새라면 좋겠는데/ 기다리는 새는 쉬 오지 않는다/ 취향이 까다로운 새라면/ 듣기 힘든 귀한 소리를 공으로 들을 수도 있으련만/ 나무는 땅에만 심는 것이 아니라서/ 가지는 가지대로 낯선 공기들과 입주 인사를 나눠야 한다/ 뿌리하고 땅하고 한몸이 되려면/ 개미들이 바지런을 떨어야겠고/ … / 새 한 마리가 나무에 앉기 위해선/ 참으로 많은 궁리와 일들이 있고 난 뒤다” (시 ‘노작(露雀)공원에 옥매를 심고서-동탄 3’ 에서) 손 시인은 이번 시집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할 수 없는 어떤 슬픔을 간직한 존재임을 슬프게 보여주고 있다. “…어떤 슬픔은 도무지 함께할 수 없는 것이다/ 혼자서 중얼거리는 사람이 사라지자 혼자서/ 중얼거리는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찼다”(시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에서) 손 시인은 가슴 절절한 아픈 슬픔마저 모조품 같고 고통의 느낌마저 가공된 것만 같은 우리네 삶을 가공의 쇳가루 눈물 흘리는 나사렛에게 묻고 있다. 어떤 슬픔을 함께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모든 슬픔은 함께할 수 없는 것을 손 시인은 이야기 하는 것인지 모른다. “…용산에서 망루에 오른 사람들이/ 화형을 당하고 있었을 때/ 세월호 침몰을 실시간으로 시청하고 있었을 때/ 삘딩과 삘딩 사이를 뱅글뱅글/ 그 어디에서 나는 밥벌이를 했지/… /고해성사 끝에 발을 뻗고 안식에 들던 날들/ 왜 이 고통의 느낌마저 가공된 것만 같은 것인지,/ 재주라곤 슬퍼하는 능력밖에 없건만/ 이 슬픔마저 왜 모조품 같은 것인지/ …/ 쇳가루 눈물이 흘러나오던 나사렛/ 광화문 제단 너머 천국의 문까지” (시 ‘광화문 네거리에서’ 중) 손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보여주고 있는 수많은 시는 우리의 모든 삶과 슬픔의 본질에 한발짝 다가서게 한다. 어렵기만 한 추상의 시어가 아닌 형체가 잡히는 시어를 통해 깊은 사색의 길에서 낯선 이면 세계를 맞닥뜨리게 한다. 손 시인은 1998년 한국일보(시)와 국제신문(동시)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실천문학 대표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호랑이 발자국’, ‘목련전차’ 등이 있으며 청소년 시집 ‘나의 첫소년’과 동시집 ‘한눈 파는 아이’가 있다. 신동엽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노작문학상, 조태일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용인신문] 용인문화재단은 오는 24~25일 용인시문예회관 처인홀에서 서울발레시어터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무대에 올린다.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이번 공연은 차이코프스키 세계 3대 발레 명작에 서울발레시어터만의 색채를 입혔으며, 서울발레시어터 최진수단장의 해설이 더해져 공연의 이해도를 높인다. 가족발레 ‘호두까기 인형’은 용인문화재단 10주년 기념 공연으로 진행되며, 독일의 낭만파 작가 호프만의 동화 ‘호두까기 인형과 생쥐왕’을 바탕으로 2막으로 구성되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 받은 소녀 클라라가 꿈속에서 왕자로 변한 호두까기 인형과 사탕 나라를 여행한다는 내용으로 화려한 의상과 무대, 차이코프스키의 아름다운 음악이 함께 어우러져 감동을 자아낸다. 이번 공연은 한국적인 안무와 연출로 기존 의 작품과의 차별성을 가진 안무가 ‘제임스 전’의 재안무 버전으로 2막을 각 나라의 전통 춤으로 이어가는 일반 버전과 달리 한복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안무와 한국 춤이 추가된 서울발레시어터의 버전으로 선보여 관객들에게 새로움을 전달할 예정이다. 호두까기 인형은 24일 오후 4시와 오후 7시 30분, 25일 오후 2시 총 3회 진행한다. 48개월 이상 관람 가능하며, 용인문화재단 홈페이지(www.yicf.or.kr)에서 예매 가능하다. 전화(031-260-3355)로 문의하면 된다.
[용인신문] 용인문화재단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하여 오는 24일부터 25일까지 이틀간 총 6회에 걸쳐 용인포은아트홀에서 뮤지컬 ‘장수탕 선녀님’을 선보인다. 뮤지컬 ‘장수탕 선녀님’은 2020년 한국인 최초로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문학상을 수상한 백희나 작가의 동명 그림책 ‘장수탕 선녀님’을 원작으로 한 공연으로, 2022년 인터파크 티켓 아동, 가족 부문 연간 랭킹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인기 뮤지컬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에서는 오래된 목욕탕에서 펼쳐지는 선녀 할머니와 덕지의 가슴 따뜻하고 웃음 가득한 판타지를 통해 온 가족이 함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을 선보이며 관객들에게 사랑 가득한 연말을 선사할 예정이다. 뮤지컬 ‘장수탕 선녀님’은 24개월 이상 관람가로 공연은 총 60분간 진행된다.
모든 안식일 유혜빈 모든 안식일의 나 자는 할머니 코에 손가락을 대보기도 한다 얻어온 햄스터의 이름을 지으며 울기도 한다 강아지를 처음 데려온 날 강아지의 죽음을 계산해보기도 한다 나는 매일 안식을 취한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분할된 고통 속이다 유혜빈은 2020년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모든 안식일」은 무료한 화자의 일상에 관한 시다. 날이면 날마다 안식일이니 무료할 것이다. 자는 할머니의 코에 손가락을 대보기도 하고 얻어온 햄스터의 이름을 지으며 울기도 한다. 매일 안식을 취하지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분할된 고통 속이다. 창비 간 『밤새도록 이마를 쓰다듬는 꿈속에서』 중에서. 김윤배/시인
[용인신문] F&B 기업이 운영하는 ‘GFFG’는 브랜드만 6개, 매장이 31개로 지난해 총매출액이 700억 원에 정직원이 600여 명이다. 그중에도 ‘노티드’라는 도넛은 하루에 3만 개 정도가 팔리고 ‘줄서서 먹는 도넛’으로 유명하다. 단순히 도넛이 맛있어서라기보다 음식을 일종의 지식재산권(IP)으로 활용했다는 점이 대박의 요인이다. 국내 대기업(삼성전자, 카카오, 롯데제과 등)과 협업 중이며 인형이나 식기 등과 같은 굿즈를 선보인다. 새로운 트렌드를 발굴해 나가고 라이프 스타일을 선도하는 것이 살아남는 비법이다. <글·사진: 황윤미 본지 객원 사진기자>
[용인신문] 내가 용인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지 어느덧 50여 년이 훌쩍 넘었다. 젊은 시절 용인 인구가 10만여명 남짓일 때 용인사람이 되었으니 우리 고장이 변화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한 셈이다. 50년 전 용인의 명실상부한 중심지는 김량장동 사거리 일대였다. 서울로 말하자면 광화문 사거리와도 같았다. 지방자치제가 전면적으로 실시된 이후 여덟 명의 민선 단체장이 선출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다수의 민선 시장이 각종 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단 한 차례도 재선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 용인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 나는 여덟 번째 민선 단체장인 이상일 특례시장이 첫 재선 시장이 되어 우리 용인을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발전시켜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달 용인신문이 이상일 특례시장을 인터뷰한 내용을 보았다. 시장이 지난 10월 28일 대통령께도 용인시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는 기사에 마음이 든든했다. 특히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시장실을 방문했을때 국토부에 용인시 발전과 도시혁신, 도로와 철도 등 교통망 확충을 요청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지면을 빌어 이상일 특례시장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나의 소견 역시 우선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경강선 건설을 재추진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울러 마평동에서 멈춰 오랫동안 중단 상태인 57번 국지도 연결공사를 조속히 마무리해주기를 기대한다. 지난번 시장은 경강선 공사를 광주부터 안성까지 계획에 포함하지 않았다 하여 광주에서 포곡읍까지 건설하는 계획마저 무산시켰던 것으로 알고 있다. 국가사업은 첫 삽을 뜨는 것이 중요하다. 우선 광주에서 포곡읍까지라도 공사를 시작하면 안성까지도 머지않아 연결되게 되어 있다. 국회의원도 3선 의원은 되어야 국정의 전반을 파악하는데, 하물며 인구 110만 명의 용인시장이 4년의 임기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용인시 도시개발이 시장이 바뀌면 백지화하고 전면적으로 다시 시작되는 일을 또다시 반복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상일 특례시장은 다방면으로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정치인이다. 중견 언론인 출신으로 국회의원 경력까지 갖춘 뛰어난 인재다. 나는 이상일 특례시장이 용인을 잘 가꾸어서 최초의 재선 시장이 되고 그 공적을 발판삼아 경기도지사도 하고 중앙정치의 거목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처인구 면적의 80%에 달하는 임야(야산)를 활용하여 자연공원을 조성하고 전원주택단지로 개발하는 방안도 검토하여 살기 쾌적한 도시를 조성하면 좋을 것이다. 급격한 고령화 시대를 대비하여 노인들이 여가활동을 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복지시설을 많이 마련하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처인구 신청사는 부지가 어디가 되었든 적당한 곳에 조속히 건립하여 문화복지센터 기능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도서관과 여가시설이 적절하게 조화된 개발이 이루어진다면 젊은이들의 문화공간을 어느 정도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다. 용인사거리 주변의 구도심 지역도 도시 재생의 차원에서 밑그림을 그리고 전면적인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병행하여 쾌적한 환경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처인구 구도심 지구는 시가 공영개발을 주도하는 방식으로 사업이 추진되었으면 한다. 이를 위해 이상일 특례시장이 세계 각국의 모범적인 도시 재개발의 성공적인 사례를 직접 살펴보고 용인 발전의 원대한 구상을 하나둘 차근차근 추진했으면 한다. 세월이 유수와 같아 내 나이도 어느덧 유종의 미를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상일 특례시장과 우리 용인이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나의 말년이 행복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용인신문] 느티나무도서관(관장 박영숙)이 11~27일까지 ’우리가 재난을 마주할 때’라는 제목으로 열두 번째 컬렉션 버스킹을 연다. ‘컬렉션 버스킹’은 느티나무도서관 사서들이 주제 컬렉션을 엮어 삶터를 찾아가 시민을 만나는 여행이다. 이번 버스킹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도서관에서 연다. 이태원 10·29 참사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생각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트라우마를 헤쳐 나가는 공동체의 힘과 기록이 필요한 이유를 담은 컬렉션 ‘재난을 살다’ ‘세월호’를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컬렉션으로 ‘너무 무서웠겠다’ 등을 전시한다. 안전대응 매뉴얼, 다양한 측면을 이야기해줄 기사, 논문, 조례 등도 함께 만날 수 있다. 도서관 곳곳에 사서가 머물며 필요한 자료를 함께 찾는 즉석 참고 서비스를 진행한다. 방문한 시민들은 질문과 제안을 남길 수 있다. 11일에는 ‘홀: 어느 세월호 생존자 이야기’(창비) 북토크를 연다. ‘세월호 파란 바지 의인’으로 알려진 김동수 씨와 그의 아내 김형숙 씨,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김홍모 만화가와 만난다. (전)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사무처장 오지원 변호사가 패널로 참가한다. 버스킹 기간 동안 심폐소생술과 응급 처치 교육도 16,17, 20, 21일 총 4회 진행한다. 연령별로 다른 심폐소생술 및 심장충격기 사용법, 응급 상황에 따른 조치 등을 시민들이 도서관에서 함께 배운다. ‘컬렉션 버스킹’은 2022년 용인 지역을 찾아 다니며 다양한 활동을 응원했다. 용담호수에서 열리는 제로웨이스트 마켓 ‘한다 뚝마켓’, 건축문화공간 ‘카페 비건드&인문랩’, 청소년 기후 행동가들의 ‘환경교육포럼’, 지역 서점 ‘동백문고’에서 전시를 열었다. 지난달에는 ‘강남대학교’에서 대학생들과 사서의 컬래버레이션을 펼치기도 했다. 문의 느티나무도서관 031-262-3494
[용인신문] 용인문화재단은 지난 3월부터 11월까지 추진한 지역 활동가 성장지원 사업을 통해 도시기록가 15명과 커뮤니티 디자이너 10명 등 총 25명의 시민 활동가를 발굴 및 양성했다. 이번 사업은 인구 107만인 용인특례시에 맞게 시민과 지역을 매개하는 활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운영됐으며, 활동가들이 자발적인 학습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전문 교육과정과 개별 활동 코칭 등을 지원했다. 올해 ‘도시기록가’ 양성 사업은 상반기 일반과정과 하반기 심화 과정으로 나누어 총 12회의 교육 및 워크숍, 274회의 개별 기록 활동을 진행했다. 상반기 일반과정에서는 용인 원도심인 김량장동을 기록하면서 잊혀가는 지역의 문화 자원을 시민들의 관점으로 기록하는 활동을 수행했다. 하반기 심화 과정에서는 일반 주거 지역이면서 다수의 역사 문화 자원이 밀집해 있는 구성·마북 지역을 기록하였다. 도시기록가는 팀 활동과 인터뷰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의 접점을 만들어내며 마북천 24시, 크고 오래된 나무들, 용인향교와 사람들, 구성·마북의 오래된 가게들, 누구에게나 열린, 생활 문화공간, 두근두근 구성·마북, 마구마구 도보여행과 같이 다양한 기록물을 만들어냈다. ‘커뮤니티 디자이너’ 양성 사업은 지난 8월부터 총 6회의 교육 및 워크숍으로 교육과정은 자신의 관심사로 커뮤니티를 조직할 수 있도록 디자인 씽킹(Design Thinking)을 활용한 커뮤니티 기획 방법과 시민들과의 다양한 만남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배울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과정 수료자는 클래식 음악 이야기, 연기 경험하기, 독서 모임 등 각자의 주제로 용인 곳곳에서 소셜살롱 ‘문화살롱y’를 운영 중이다. 사업에 참여했던 한 도시기록가는 “용인문화재단에서 도시기록이라는 새로운 기록문화를 용인 지역의 특색에 맞게 시민 활동으로 잘 풀어낸 것 같다.”라 말했다.
[용인신문] <영화 이야기-4> 여왕 마고(La Reine Margot) 여왕 마고는 나바로 왕 앙리 4세와 정략결혼하였던 프랑스의 왕비다. 마고 퀸 마그리타는 국왕 샤를 9세의 여동생이다. 마고는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와 개신교 국가인 나바로의 왕 ‘앙리 드 부르봉’과의 정략결혼으로 프랑스를 통일하려는 희생양으로 선택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발루아 왕조의 12번째 국왕 샤를 9세의 치하였다. 샤를 9세는 프랑수아 1세의 아들인 친형 앙리 2세가 사망하고 그의 장남인 프랑수아 2세가 급서하자 뒤를 이어 왕위를 물려받았다. 샤를 9세는 어린 나이로 인해 어머니인 ‘카트린 드 메디시스’에게 섭정을 맡겼다. 카트린 왕비는 메디치 가문의 일원이었지만 본가가 몰락하여 교황 클레멘스 7세의 후견을 받아 프랑수아 2세의 차남인 앙리와 결혼했다. 차남으로 왕위와 거리가 멀었던 앙리는 황태자 프랑수아가 사망하자 왕위를 계승했다. 앙리 2세와 결혼한 카트린 왕비는 여왕(왕비)이 되었으나 결혼 초 10년간 후사가 없어 지위가 불안했다. 폐위될 위기에 처했던 카트린은 1544년 프랑수아 2세를 낳아 위기에서 벗어났다. 이후 카트린은 샤를 9세 앙리 3세를 연달아 낳았고 마고로 유명한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와 발랑송 공 등 10명의 자식을 낳았다. 섭정 카트린은 궁중의 실세 중의 실세였다. 12년간 왕비로 있었고 이후 30년간 대비로 군림하며 2명의 아들을 왕위에 앉혔다. 당시로서는 70세 직전까지 69년 9개월을 살아 장수했다. 정치적으로는 카트린의 시대였지만 우리의 주인공은 마고다. 그래서 마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고는 1553년생으로 샤를 9세와 3살 터울, 앙리 3세와는 2살 터울의 연년생으로 태어났다. 밑으로 ‘에르퀼 프랑수아’가 태어났다. 마고는 영화에서 그려진 대로 두 오빠와 남동생을 비롯한 기즈 가문의 앙리 공작 등 궁중의 근친들에게 성적 노리개가 되어 문란한 생활을 해왔고 프랑스의 창녀로 불리울 정도로 평판이 좋지 않았다. 마고는 정부(情夫)이자 오빠인 샤를 9세의 강권으로 나바로의 왕 ‘앙리케’와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다. 영화를 보면 마고는 그야말로 형제와 4촌들의 배설구 역할만 하는 주체성 없는 여인으로 나온다. 당시의 기록을 보면 마고의 존재는 영화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못하지 않을 만큼 저속하고 문란한 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고를 창녀라고 욕할 수 없는 것은 그녀야말로 당시 프랑스 귀족 특히 왕족사회의 문란했던 성 풍습의 희생물이라는 것 때문이다. 당시의 유럽사회는 근친상간(近親相姦)이 공공연했다. 16세기 유럽은 남매간의 성관계는 필수코스이고 모자간 부녀간 성관계도 흔했던 시절이었다. 로마 교황 보르지아를 보면 자신의 딸을 성적 노리개로 삼아 권력 강화의 수단으로 삼는 것을 볼 수 있다. 개신교가 가톨릭의 부패상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종교전쟁의 중요한 동력으로 부상하는 당시의 풍토를 보면 성적인 면에서 그야말로 종말에 가까운 풍속이 만연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가 여왕 마고 역을 맡은 것이 (그나마 영화적으로는 그녀에게 동정심을 품도록 배려한 것이) 영화의 충격을 다소 완화시켰다. 하지만 당시 실제 벌어졌던 궁중의 문란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결혼식 날 밤 애인이자 4촌인 기즈와 첫날밤을 보내려던 마고는 기즈가 오지 앉자 검은 눈가리개를 하고 직접 ‘길거리 헌팅’에 나선다. 타겟은 나바로 왕, ‘앙리케 부르봉’의 신행(新行)길을 수행하여 파리에 온 ‘라 몰로’라는 개신교 청년 장교, 둘은 눈길을 주고받기가 무섭게 엉겨 붙는다. 즉석에서 선 채로 격렬한 성관계를 마친 두 사람은 헤어진다. 청년은 자스민 향기로 여자를 기억한다. 결혼식 날 밤 일면식도 없던 남자와 살을 섞은 마고는 루브르 궁으로 돌아온다. 카트린 대비는 결혼식 날 밤에 신교도를 급습, 체포하여 가톨릭으로 개종시키려는 음모를 진행하고 신교도 학살은 허수아비 왕 샤를 9세에 의해 내려진 문서에 의해 왕명으로 벌어진다. 물론 국왕은 자신이 서명한 문서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 한밤중에 벌어진 가톨릭교도의 신교도 학살은 무려 6천여 명에 이르렀다. 나바로 왕 앙리케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마고와 타협한다. 다른 남자(4촌 기즈)를 사랑하는 마고는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결혼을 받아들인다. 앙리케는 마고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샤를 9세의 호감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 샤를 9세는 마고가 앙리케를 따라 나바로에 가는 것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거절한다. 샤를 9세는 오로지 마고를 정부로 더 오랫동안 잡아두기 위해서 앙리케를 보호한다. 카트린 대비에게 무속 점성술사는 불길한 예언을 한다. 앙리케가 살아 있으면 카트린 대비의 세 아들이 죽고 앙리케가 프랑스 왕위를 잇는다는 기분 나쁜 예언이다. 불길한 예언에 매몰된 카트린 대비는 앙리케를 암살할 기회를 집요하게 노린다. 당시 프랑스의 신구 교도 간의 종교전쟁은 결국 교회의 재산을 두고 벌어지는 전쟁이었다. 영국왕 헨리 8세가 가톨릭을 버리고 영국성공회(국교회)를 세운 것은 표면상 앤 왕비와 결혼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영국 세금의 40%를 가톨릭이 징수하는 것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재산이 얽혀있는 종교분쟁에서 상공업 종사자들이 주요 신도인 개신교의 교세는 점점 커졌다. 본질적으로는 봉건제와 자본주의의 충돌이 종교전쟁의 원인이었던 것이다. 영화와는 다르게 실제 역사에서 마고는 샤를 9세가 죽고 앙리 3세가 즉위하자 동생이자 왕위계승자인 알랑상 공 ‘에르퀼 프랑수아’를 지지하였다. 알랑송은 개신교와 온건 가톨릭교회의 지지를 업고 반란군의 지도자가 되었다. 마고가 친동생인 알랑송과도 육체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아 밝혀지지 않았다. 그저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마고는 동생이 반란군의 수장이 되자 그들과 협상 창구가 필요했던 앙리 3세와 카트린 대비는 마고의 정치적 지위를 인정해주었다. 앙리 3세는 알랑송을 회유하기 위해 자신이 갖고 있던 앙주공의 지위와 영지를 양도했다. 영화에서는 비중있는 역할로 나오는 라 몰로는 앙리케 3세의 탈출을 도왔다는 죄목으로 사형에 처해지고 마고는 자유분방한 연애를 즐겼다. 마고와 결혼한 앙리케 3세도 자유로운 연애를 하였는데 이는 두 부부가 합의한 사항이었다. 두 사람은 적통의 후계자를 세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다시 합쳐 3~4년간 동거하였으나 후사를 보지 못했다. 이후 마고가 나바로의 왕비, 프랑스의 왕녀 신분과 생활비 일체를 보장받는다는 것을 조건으로 사실상 이혼에 합의하고 별거를 공식화했다. 마고는 알랑송을 돕는 것이 발각되어 앙리 3세로부터 파리에서 추방되었고 앙리케와 재결합을 원했으나 이것마저도 거부되었다. 마고에게 끝까지 충실했던 알랑송은 1584년 사망했다. 알랑송의 사망으로 프랑스 왕위계승권자는 앙리케 3세가 되었다. 동생의 죽음으로 앙리 3세와 앙리케 3세 양쪽에서 용도 폐기된 마고는 1585년 3월19일 아키텐 지방의 아쟁으로 물러나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마고의 은둔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마고는 그녀에 반기를 든 아쟁 시민의 반란으로 상트랄로 쫓겨났고 1586년 앙리 3세의 포로가 되어 ‘오베르뉴 위송’에 감금되었다. 1588년 마고는 연인이자 후원자였던 기즈 공 앙리가 오빠 앙리 3세에게 암살되자 완전히 권력을 잃고 말았다. 1589년 건장했던 앙리 3세가 ‘자크 클래맹’에게 암살되자 프랑스의 왕위는 나바로의 앙리케 3세에게 돌아갔다. 이로써 앙리케 3세가 앙리 4세로 즉위하여 프랑스와 나바로는 통일되었다. 앙리 4세는 즉위 후 1593년 가톨릭으로 자진하여 개종하여 1594년 3월 22일 파리에 입성하였고 1598년 개신교에 대한 차별을 해소한 낭트칙령을 발표하여 프랑스 종교전쟁은 막을 내렸다. 앙리 4세는 마고에게 정식으로 카톨릭 교회법에 의한 이혼을 요구하였고 1599년 그들의 결혼은 무효화 되었다. 앙리 3세를 끝으로 발루아 왕조는 13대로 막을 내리고 ‘앙리케’에 의해 부르봉 왕조가 시작된다. 부르봉 정통 왕가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단절되었다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몰락으로 부활하여 1830년 막을 내렸다. 방계 왕조인 스페인 왕가는 후안 카를로스 1세(1975~2014)의 아들인 펠리페 6세에 의해 입헌군주제로 이어지고 있다. 마고, ‘마고그리트 드 발루아’는 1615년 5월 27일 사망하였다.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비롯한 인문학에 능통했던 그녀는 참회록(懺悔錄)을 남겨 사후 더욱 유명해졌다. 참회록의 주요 내용은 샤를 9세와 앙주 공, 즉 앙리 3세와의 근친상간(近親相姦)을 밝히고 참회하는 내용이었다. 그녀가 앙리 4세와의 사이에서 소생이 있었다면 루이 13세를 비롯한 부르봉 왕조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녀는 여인의 최대 무기인 미모와 육체를 무기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러면서도 권력자들에게 이용만 당하는 불쌍한 일생을 살았다. 영화에서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이자벨 아자니가 마고 역할을 맡아 실존했던 마고그리트가 실제 이자벨 아자니와 같은 미모를 지닌 여인으로 착각할 수 있다. 당시의 초상화를 보면 마고는 이자벨 아자니와 같은 미인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능통하고 지식이 풍부한 인텔리 여성이었다. 그녀가 남긴 참회록은 당시의 궁중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1994년 발표된 여왕 마고는 웬만한 것에는 놀라지 않는 필자에게도 충격적이었다. 필자는 당시 유럽 상류사회의 성 풍속도가 그렇게 하드코어 한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여왕 마고를 계기로 영국과 유럽 귀족사회의 성 풍속도를 나름대로 연구한 결과 종교적 절제는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여성은 그냥 전리품이고 노리개였다. 재산을 늘려줄 대상이었다. 마고의 참회록은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 16세기 유럽은 여전히 중세시대와 같은 야만의 시대였다. 후일 이들에게 동양이 지배를 받아야 했다는 사실이 기분 나쁠 뿐이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