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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가는 러시아 기행 8 사할린<마지막회>


망향의 언덕에서


글 사진 이상엽/작가

 

사할린섬 남부의 코르사코프시 망향의 언덕앞이다. 오랜 기차 여행 끝에, 비록 바다 건너 섬이지만 이곳은 우리에게 특별한 곳이기에 애써 찾아 왔다. 지금 내가 서있는 곳은 쓸쓸하게 잡초만 무성한 언덕일 뿐 그 어떤 표식도 왜 이곳이 망향이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언덕 아래로 블라디보스토크와 일본 홋카이도를 왕래하는 여객선과 화물선이 정박하는 항구가 보인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이듬해 일본인은 정전협정에 따라 본국으로 송환됐다. 하지만 식민지 조선의 유민으로 남은 카레예츠(고려인)들은 코르사코프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이 언덕에서 귀국선을 기다렸으나 끝내 오지 않았다.


1940년대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된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귀국은 절박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들은 돌아가지 못했다. 일제가 끝까지 마무리 지었어야 했다는 당사자 책임론과 신생 대한민국정부의 민족적 책임이라는 두 논리가 충돌했다.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고, 그들은 사할린에 남겨졌다. 다만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시에도 고국으로 돌아갈 의사가 없었던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19세기 말부터 연해주 일대에서 사할린으로 이주한 조선의 유민들과 일제의 강제동원과 상관없이 자발적으로 흘러든 카레예츠들이다. 이들은 이미 이주 2세대 이상이 흘렀고, 이들에게 이곳이 집이었고 고향이었다. 코르사코프 망향의 언덕에서 만난 카레예츠 한씨의 집 텃밭에서 상추를 봤다. 텃밭에는 온갖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모두 우리가 흔히 보고 먹던 것이다.


농업은 사할린에 이주한 카레예츠의 특기였다. 사할린은 섬의 특성상 자급자족이 어렵다고 했지만 초기 이주민들은 그 것이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싼 중국산 농산물들이 시장을 차지했고 한인들의 협동 노장도 문을 닫은 지 오래됐다. 협동 농장에서 자유로워진 한인들은 도시로 몰려들었고, 지금은 거의 모든 한인들이 도시에서 산다. 그래도 입맛은 어디 걸 수 없는지 김치와 야채류들은 직접 텃밭에서 농사지어 먹는다.


카레예츠 대신 한인이라 불러달라는 진한 경상도 사투리의 한씨에게서 고국에 대한 아쉬움은 찾을 수 없다. 그냥 거친 광야를 개척했던 사할린 사내만을 봤을 뿐이다.<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