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작가, 길위의 풍경 한낮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 카페 안은 이야기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곳에는 열심히 스마트폰을 하는 사람과 무심히 창밖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 중 유일하게 혼자 책을 보는 한 외국인에게 내 시선이 멈추었다. 책을 바라보는 눈빛, 책 위로 내리는 빛은 어수선한 카페 안에서 그의 머리카락만큼 눈부시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외국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책 밖에 더 있겠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만지며 책 읽는 횟수가 점점 줄어든 내 자신과, 디지털시대 속에서 책이라는 감성에 대해, 그리고 정말 내가 스마트해져 가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으며 카페를 나왔다.
▲ 안준섭 사진작가 많은 집과 건물들이 펼쳐져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 있다 또 그 사람들만큼 많은 마음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 내가 보는 이 곳에는 무수히 많은 마음과 사람과 집과 건물들이 있다 원래 나쁜 마음, 어쩔 수 없이 나쁜 마음 원래 선한 마음, 나쁘지만 목적있는 선한 마음 그런 수 없는 많은 마음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며 나를 조종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생각하는 마음은 진정한 내 마음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렇게 멀리서 보면 보이지도 않는 마음 그리고 보이지도 않는 사람인데 새해가 밝은지 벌써 열흘이 지났고 계속 춥다 이 세상 속에서 따뜻한 사람, 나로 인해 따뜻해지는 그런 한 해이고 싶다
▲ 안작가, 길위의 풍경 진보와 보수, 2030세대와 5060세대 무언가를 잃었던 사람 무언가를 지키고 싶은 사람 많은 사람이 좌절했고 또 많은 사람이 안도했습니다 저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사람들 참 힘듭니다 5060세대분들, 무언가 지킬 것이 있는 분들이여 우리 젊은이들을 여러분께서 먼저 손 내밀고 따뜻하고 가슴 깊이 안아주세요 그래야 되지 않겠습니까
전시장에 그림을 걸고 많은 술을 마셨다.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나질 않는 시간들 그러나 카메라엔 75컷의 사진이 저장돼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 속 사진은 온전히 어제의 기억을 깨우지 못했다. 의식이 무너진 눈으로 바라본 사물과 사람들 흐릿한 흔들림 사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안타깝고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안작가 길위의 풍경 오랜만에 찾은 미술관 작품을 보다 숨막힐 듯한 고요가 나를 응시한다. 끝없는 욕망과 지난한 희생 그것의 산물들 갑자기 작품 앞에서 현기증이 났다. 미술관을 나오며 겨울 찬 공기와 노란 햇빛이 나를 감싸주었다.
▲ 안작가 어느 대선 후보의 찬조 연설은 느닷없이 사원 절반이 해고된 쌍용차 해고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정신적 상처와 고통의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정신과 의사로서 현장에서 겪는 가슴 아픈 토로는 현 정부의 책임을 떠나 막다르게 다다른 자본주의의 어두운 모습을 목격하는듯했고 보는 내내 불편하고 가슴 아팠다.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이라는 기치아래 자본주의의 광폭한 속도에 맞추지 못하면 한순간에 낙오되는 이 곳.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도 하기 전에 빚에 허덕이게 되는 이 곳. 상위 1%가 전체 부의 40%를 차지하는 이 곳에서 과연 우리는 서로 함께 공존할 수는 없는 것일까? 같이 나누고 같이 협동하여 이 사회를 꾸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그런 세상을 기대하는 나는 빨갱이일까?
어느 오후 아직 오지 않는 너 눈 덮인 앞은 보이지 않고 구부러진 길, 그 끝 또한 보이지 않았다 내리는 눈처럼 오랫동안 아득한 미소를 들고 서있다 기다림은 너에 대한 이해, 너를 그리는 데생 같은 시간 익숙한 뒷모습은 나를 안타깝게만 보고 내리는 눈은 발등 위에 녹다가 조금씩 조금씩 쌓여만갔다
갑자기 아저씨는 늦둥이 딸에게 큰소리로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했다. 언니 오빠와 스무해 넘게 차이난다는 막내딸은 쑥스러운지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하고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그러나 취하신 아저씨는 소리가 조그맣다며 더 크게 부르라 하고 가게는 어느덧 아이의 크고 예쁜 목소리로 가득 찼다. 아저씨는 흐뭇하게 웃으시고 고개를 떨구셨다. 우리는 서둘러 아이가 멋쩍지 않게 박수를 아주 오랫동안 쳤다.
▲ 안작가 길위의 풍경 주방 뒤 내가 안보이는 곳에서 쪼그리고 앉아 사장님은 짜장면을 드시고 계셨다. 목이 메이셨는지 내가 볼까 벽을 보고 서서 드신다. 짜장면 3000원, 짬뽕 3500원 도저히 이문이 남을까 생각되는 시장 안 중국집에서, 늦은 점심을 드시는 사장님을 보고 마음이 어릿해진다. 나는 이런 마음 씀을 아프게 사랑한다. 이렇게 긴 불황속을 의연히 맞서는 모든 분들께 파이팅을 보낸다.
▲ 좋아zz 지난 11월 8일은 수능 시험일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험장 앞은 떠들썩했다. 수험표를 두고 와 엄마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학생의 발 구르는 소리, 손난로와 음료수를 주며 출신고를 연호하는 후배들의 힘찬 파이팅 소리, 몇 번이고 침착하게 잘하라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목소리, 패트롤카 타고 바삐 올라가는 오토바이의 경쾌한 소리, 고개 숙이고 말없이 걸어 올라가는 수험생들의 떨리는 소리들이 그 곳에 있었다. 그동안 모든 수험생들 수고 많았고 수능 고득점을 기원해본다.
요즘 누가 강냉이를 사먹을까 생각했다. 잠복중인 킬러 차림의 아저씨는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듯 총 대신 강냉이를 들이밀었다. 나에게는 내밀지도 않던 강냉이. 주전부리를 좋아할만한 마땅한 사람을 찾은듯했다. 애기를 들쳐안은 엄마는 귀찮다는듯 한 두개 먹어보고 마지못한척 한 바구니를 샀다. 대상에 대한 분석과 선택, 그리고 집중을 강냉이아저씨가 내게 보여준 것이다.
▲ 안작가 길위의 풍경 내 마음을 볕에 말린다. 그 설익은 마음을 볕에 말린다. 천위에 쏟아진 옹색한 조각들, 깨져 조각난 마음들, 큰 돌 하나 얹고 눈이 부셔 부끄러운 햇볕에 말린다. 꿈과 멀어져 가는 가슴 바람이 쓸어내고 나로 인해 추운 마음 햇볕은 따뜻하게 감싸준다. 가을은 어느덧 그렇게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