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생각한다, 태아도 생각한다 태교는 평생을 살아가는 나침반을 태아의 기억에 새기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태아는 생각하는 존재일까. 엄마는 생각한다. 고로 태아도 생각한다. 태아와 엄마는 일심동체이다. 태아는 태중에서 열 달 동안 한 몸으로 지내는 엄마의 마음을 비껴갈 수가 없다. 태아의 맑은 심성을 지켜주는 것은 엄마이다. 또 엄마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태아는 아빠의 영향도 받을 수밖에 없다. 태아 고유의 마음에 엄마와 아빠의 마음이 얹혀져 태아의 인성이 형성 된다. 결국, 아기는 부모를 닮은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 부모의 마음이 맑고 깨끗하면 아기의 마음도 그러하다. 부모의 마음이 오염돼 있으면 아기의 마음도 그러하다. 막 태어난 아기들은 모두 사랑스럽고 예쁘다. 그런데 자라면서 못된 행동도 하고 심술도 부린다. 태어난 이후의 환경적 영향도 있겠지만 우선 태아를 임신했던 부모의 탓이 클 듯싶다. 아이를 태중에 품고 어떠한 일상을 보냈는가를 돌이켜보자. 아니 그보다 앞서 정자를 품고 있던 아빠, 난자를 품고 있던 엄마의 평소 품성이 어떠했는가를 생각해보자. 태아를 품은 엄마는 열 달 동안 혹
박숙현의 태교칼럼 태교는 국가와 지자체에서 보급해야 얼마 전 용인에서 있었던 태교음악회에 나이 지긋한 여성단체 임원들을 초청했더니 강당을 가득 메운 임신부들을 보며 매우 놀라워했다. 그들은 음악회를 함께 해보자는 제안에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었다. 그들 세대에는 태교라는 말이 낯설었을 것이다. 혼자서만 임신했냐는 시어머니의 말에 주눅이 들어 배 불러오는 것조차 부담스러웠었지 우리 사회가 여전히 태교 보급에 미온적인 것은 여성지도층 인사들의 쓰라린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젊은 시어머니 세대가 등장하면서 빠른 속도로 태교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필자가 태교 교실을 운영할 때 태명이 딸기였던 임신부가 시부모님으로부터 축하 카드를 받았다며 행복해 했다. 물론 예전보다야 태교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게 사실이지만, 우리 사회의 그늘진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아직도 태교를 제대로 못하는 임신부들이 수두룩하다. 태교는 태아를 위해 좋은 것을 해주고, 나쁜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상적인 행위다. 그런데 이런 상식조차 모르는 임신부들이 많아 안타깝다. 특히 다문화 가족과 미혼모들의 태교 문제는 국가 차원의 관심이 절실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태교에 무지한 국가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27일 오전, 태교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이사주당묘역을 찾았다. 유성관 할미성대동굿보존회 회장의 안내로 시청 공원관리과 양병길 과장과 직원들, 박종화 모현면 동림리 이장, 그리고 김종경 용인신문사 사장이 함께 했다. 포곡에 있는 용인자연휴양림을 관리하고 있는 양과장은 휴양림부터 모현면 이사주당 묘역까지 가칭 태교의 길을 이을 수 있는 지 여부를 검토하기 위해 참석했다. 번번히 길 안내에 나서주는 유 회장은 묘역에 한가득 자라있을 풀을 베기 위해 낫을 들고 오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풀을 깎은 것은 동림리 이장인 박종화씨였다. 박씨는 과거 풀베기 대회에서 일들을 한 경력의 소유자임을 자랑했는데 실제 시원스런 낫질에 묘역이 금새 환해졌다. 우리는 준비해 간 막걸리와 포를 차려놓고 간단하게 예를 올렸다. ▲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27일 오전, 박숙현(좌에서 세번째) 이사주당기념사업회 이사장이 태교의 성지라 할 수 있는 이사주당묘역을 찾았다. 외대 뒷산에 있는 묘역을 찾아 오르는 길은 험하거나 힘들지 않다. 그저 어머니의 품처럼 푸근한 자연스런 능선으로 이어져 있어 임신부라 할지라도 산책 삼아서
파주에는 무수리에서 왕의 어머니가 된 숙빈 최씨의 묘역인 소령원을 비롯해 현모양처로 유명한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한 사람은 천민 출신이고, 한 사람은 귀하게 자라난 양반댁 규수로서 상반된 출신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위대한 아들을 낳은 훌륭한 어머니로 당당하게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최근 용인문화원 역사 기행에서 파주를 찾았을 때 두 곳을 모두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다. 지금은 모두 옛 사람들이 돼 말없이 잠들어 있는 두 여인의 묘역 앞에서 왠지 모를 숙연함이 느껴졌다. 숙빈 최씨는 드라마 동이로 인해 세상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특별하게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알지도 못했던 후궁에 불과하다. 숙빈최씨에 대해서는 최효원의 딸로 7세에 궁에 들어갔다는 외에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간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왕의 얼굴도 쳐다볼 수 없는 천한 신분이었다던 무수리가 한 나라의 왕의 어머니가 되었고, 현재 왕릉 못지않게 잘 꾸며진 명당 소령원에서 그의 곡절 많은 삶을 보상 받듯 곱게 잠들어 있으니 역전의 삶을 살다간 여인임에 틀림없다. 무수리의 아들로서 평생 콤
사주당이씨는 임신부의 잠자는 법까지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듯이 잠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 피곤했던 뇌를 쉬게 해서 에너지를 재충전 시켜주고 면역력을 높여주며 신체의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풀어주어 활기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임신부들의 잠자리는 그다지 편하지가 못한 게 사실이다. 호르몬의 변화로 수면 장애를 겪는 임신부들도 있으며 막달로 갈수록 몸이 무거워짐에 따라 몸을 눕히고 일으키는 자체가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임신부는 잠을 자는 동안에도 태아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사주당이씨는 잠을 잘 때 엎드려 자지 말고, 누워있을 때는 위를 똑바로 쳐다보지 말라고 했다. 또 만삭이 되거든 옷을 쌓아 옆을 지탱하고 밤의 절반은 왼쪽으로 자고, 절반은 오른쪽으로 누워 자는 것을 법도로 삼으라고 했다. 엎드려 자면 배가 눌리기 때문에 당연히 엎드리는 자세는 임신부 스스로 피할 것이다. 그런데 똑바로 위를 쳐다보고 눕지도 말라고 했다. 배가 커지고 무거워지면 똑바로 눕기도 어렵고 요통과 압박감이 크기 때문이었을 테지만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 오면서 똑바로 누워 잘 때 혈액 순환이 어려워져 사산의 원
사주당이씨는 반드시 태교를 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금수도 새끼를 배면 온 정성을 다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태교를 하지 않으면 간혹 금수만도 못한 자식이 태어날 수 있음을 경계하는 것이다. 즉, 사주당이씨는 짐승들도 새끼를 배면 수놈을 멀리 하고, 새들도 알을 품으면 반드시 먹는 것을 절제 한다고 하고 있다. 또 나나니벌이 새끼를 태어나게 함에 있어서 오로지 나 닮으라는 소리를 한다고 하고 있다. 금수도 태교를 한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신선하다. 금수는 인간에 비유할 때 패륜아나 무뢰한 등을 나타내는 말이다. 금수만도 못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인간은 늘 금수에 우위를 점한다. 그렇지만 금수야말로 순수하고 자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능적인 약육강식 등의 행태로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들의 분수를 제대로 알고 분수만큼 행할 뿐이다. 비열하고 탐욕적이고 잔인한 것은 오히려 인간이 금수보다 더 하다. 게다가 금수는 원초적이면서 눈물겨운 부성애와 모성애를 발현한다. 닭의 모성애, 오리너구리의 모성애, 큰가시고기의 부성애 등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금수가 얼마나 많은가.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직접 키우던 암탉 봉혜에 대한 이야기는 실로 눈물겹다
아이들이 왕따로 자살하는 사건들을 접하면서 어머니 뱃속에서의 태교도 중요하지만 태어난 후 사회라는 태중에서의 제2의 태교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평생을 사회라는 태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태중이라 함은 어머니 자궁에 처음 잉태됐듯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는 사회 관계와 조직에 새롭게 잉태된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늘 새로운 만남의 연속인 사회에서의 삶이 어머니 뱃속처럼 아늑하고 인격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평생을 살아가는 사회라는 테두리는 어머니의 자궁속 같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서로 돕고 이해하는 배려와 인정이 있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임신부가 아기의 아름다운 인성을 위해 옳은 생각 하고 옳은 말만 하고,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고 들려줬듯이 사회에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인성을 심어주는 제2의 태교가 이뤄져야 한다. 사주당이씨는 태교신기에서 아이가 성장한 후의 책임은 스승에게 있다고 했다. 유태인들은 교사를 진정으로 나라를 세우고 지키는 자라고 했다. 지식과 지혜를 가르쳐 살아있는 혼으로 민족의 심장을 뛰게 하는 자라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도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단순하게 지식만
최근 서울시에서는 간접흡연 피해를 막기 위해 길거리 금연을 추진하고 있다. 보도와 보행자 전용도로, 어린이들이 학교를 다닐 때 이용하는 어린이 통학 버스가 해당한다. 이미 서울 시내 주요 광장과 공원, 버스정류소, 학교 정화구역, 주유소 등에서 흡연하면 과태료 10만원이 부과된다. 서울청계광화문광장, 남산 등 시내 주요공원 20곳이 이에 해당한다. 버스정류소는 3개월의 계도기간을 거쳐 내년 3월부터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흡연의 피해는 일반인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임신부에게는 위협적이다. 특히 직접 흡연도 나쁘지만 간접 흡연은 더욱 나쁘다고 한다. 박문일 교수의 태교는 과학이다에 보면 간접흡연은 노출 기간이 직접 흡연보다 길어서 그렇다고 한다. 작심을 하지 않고서라면 임신부들이 직접 담배를 피우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몇 년전 라디오에서 어떤 엄마의 후회하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는데, 그녀는 자학적인 임신부였고, 임신 중에 아기를 지우기 위해 음주와 흡연을 일부러 심하게 했다고 고백했던 것이 기억난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하고 듣는 동안 혀를 찼었다. 그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우리 정서에서 흡연을 하던 여성이라도 임신과 동시에 담
이사주당은 아기를 잉태한 집에서 소경이나 무당을 불러 부적을 붙이고 주문을 외우며 푸닥거리를 한다고 지적하면서 미신에 현혹되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다. 또 불사를 하고 시주를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악하고 편벽된 생각이 일어나 거스른 기에 호응하고 거스른 기운이 형상을 이루게 되므로 길한 것이 없다고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아들을 낳아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이 집안 최대의 관심사였다. 여성이 아들을 못낳는 것은 칠거지악의 하나로 득남은 여성에게 주어진 지상 과제였다. 아들을 낳아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서 무슨 일인들 못했을까 싶다. 씨받이라는 영화도 있지만 아들을 못 낳으면 종래에는 씨받이라도 해야 했다. 당시는 의학이 발달하지 못해서 부인들이 아기를 낳다가 죽거나 아기를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죽는 일이 흔했다. 태어난 아기도 몇 년을 못 넘기고 죽는 일이 흔했다. 남자들의 재혼이 많은 이유는 대를 이을 자손을 얻기 위해서인데, 부인이 죽으면 곧바로 재혼에 돌입했다. 가문을 잇는 일에 목숨을 걸고 살았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주당이씨의 남편 유한규도 부인을 세 번 잃고서 네 번째 사주당이씨를 만났다. 손이 귀한 집에서는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절을 찾
사주당이씨는 임신부는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없더라도 베짜기 누에치기 등 힘든 일은 하지 말고 가능한 일만 선택해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가능한 일만 골라 하기가 그렇게 쉬웠을까. 조선시대는 노비 등 하층 여성은 당연하고, 양반가 여성들도 노동을 피해갈 수 없었다. 선비들이 방에 앉아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여성들은 엄동설한이라 할지라도 음식 만들고 제사 모시고 손님 접대하고 물 긷고 절구질하는 등 집안일은 물론이고 길쌈 누에치기 농사일 염색 장사 등 각종 노동을 통해 가족의 먹고 사는 일을 책임져야 했다. 어차피 벼슬을 하지 않는 여성은 공부할 필요가 없었기에 집안을 돌보고 생계까지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잘 사는 양반가에서는 노비 부리기부터 농사에 필요한 도구 제작, 재산 관리, 집짓는 일 등 집안의 크고 작은 관리 감독 역할을 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농사를 직접 짓고, 베를 짜서 팔아 생계를 잇거나 삯바느질도 해야 했다. 여사서 중 내훈은 여성들이 부지런해야 하며, 베 짜는 일에 힘써야 하고, 게으르고 나태함은 죄악이라고 했다. 농부는 밭가는 일에 부지런해야 하고, 선비는 배우는 일에 열심이어야 하며, 여자는 베짜는 일에
사주당이씨는 질투를 참으라고 했다. 질투를 참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사주당이씨는 사심, 즉 도를 닦지 않은 간사스러운 마음을 경계하라고 하면서 임신부가 도의 경지에 이를 것을 주문한다. 사주당은 질투심이 많은 부인은 여러 첩이 자식이 있는 것을 꺼려한다. 혹 한 집안에 임신부가 둘이 있으면 맏동서와 아랫동서 사이라 해도 서로 용납하지 못하니 마음가짐이 이래서야 어찌 자식을 낳아 재주 있고 또 장수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그대의 마음이 하늘이라. 마음이 선하면 하늘의 명령도 선하고, 하늘의 선함이 자손에 미치느니라고 했다. 사주당은 시경의 구절을 인용해 낙을 즐기는 군자는 복을 구하되 복을 구함에는 사악한 마음이 없어야지 하나라도 사악한 마음이 있으면 복을 구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했다. 태교가 이렇듯 어려운 것이다. 첩을 거느린 남편조차 이해하라는 것인즉, 조선시대에 남성은 얼마든지 첩을 거느릴 수 있었던 시절이다. 남편이 첩을 거느리고 있는데 임신한 아내의 심정이 즐겁고 한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칠거지악 중에 투기는 아내를 쫓아낼 수 있는 항목인데, 사람이 목석이 아닌 이상 누구라도 시기 질투 미움이 생겨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성리학이 자리 잡은
사주당이씨는 임신부는 몸을 한쪽으로 기울여 앉지 말고, 벽에 기대어 앉지 말며, 다리를 쭉 뻗고 앉지 말고, 무릎을 세워 웅크리고 앉지 말며, 서서는 땅의 물건을 집지 말고, 왼쪽의 물건을 오른쪽으로 집지 말며, 오른쪽의 물건을 왼손으로 집지 말고, 어깨를 돌려 돌아보지 말고, 만삭에는 머리를 감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이는 각별하게 몸조심에 유의할 것을 당부한 것이다. 임신부는 서있을 때나 앉아있을 때나 항상 조심해야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특히 앉아 있을 때의 행동에 대해 주의점을 이야기 했다. 임신부는 혼자의 몸이 아니라 뱃속에 아기를 키우고 있는 만큼 행동에 주의해야 함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는 엄마만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뱃속의 아기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태아의 몸이 점점 커지면서 엄마의 뱃속이 좁아짐을 느끼게 될 텐데 만일 엄마가 무릎을 세워 웅크리고 앉아 있다면 태아의 몸이 눌리고 오그라져서 태아가 힘든 자세가 될 것이 뻔하다. 서서 땅의 물건을 집을 때도 마찬가지다. 임신부가 허리를 구부려야 하는데 묵직한 물건을 든다고 가정했을 때 엄마도 허리를 비롯해 팔목 등에 무리가 갈 테고 태아도 덩달아 힘든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요즘은 임신부 요가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