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9 (월)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임신한 직장 여성에 대한 사회적 배려가 필요하다. 25

사주당이씨는 임신부는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없더라도 베짜기 누에치기 등 힘든 일은 하지 말고 가능한 일만 선택해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가능한 일만 골라 하기가 그렇게 쉬웠을까.

조선시대는 노비 등 하층 여성은 당연하고, 양반가 여성들도 노동을 피해갈 수 없었다.

선비들이 방에 앉아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여성들은 엄동설한이라 할지라도 음식 만들고 제사 모시고 손님 접대하고 물 긷고 절구질하는 등 집안일은 물론이고 길쌈 누에치기 농사일 염색 장사 등 각종 노동을 통해 가족의 먹고 사는 일을 책임져야 했다.

어차피 벼슬을 하지 않는 여성은 공부할 필요가 없었기에 집안을 돌보고 생계까지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잘 사는 양반가에서는 노비 부리기부터 농사에 필요한 도구 제작, 재산 관리, 집짓는 일 등 집안의 크고 작은 관리 감독 역할을 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농사를 직접 짓고, 베를 짜서 팔아 생계를 잇거나 삯바느질도 해야 했다.

‘여사서’ 중 ‘내훈’은 “여성들이 부지런해야 하며, 베 짜는 일에 힘써야 하고, 게으르고 나태함은 죄악”이라고 했다.

“농부는 밭가는 일에 부지런해야 하고, 선비는 배우는 일에 열심이어야 하며, 여자는 베짜는 일에 힘써야 한다.

농부가 게으르면 오곡을 수확할 수 없고, 선비가 게으르면 학문이 이뤄지지 않으며, 여자가 게으르면 베틀이 놀게 돼 가정 살림이 궁핍하게 된다”고 했다.

시경에서는 “부인은 공적인 일이 있는 것이 아니니 베 짜고 옷 짓는 일을 아름답게 여기라”고 했다.

송시열은 시집가는 딸에게 준 글에서 “집을 다스리는 법은 절약밖에 없다. 항상 여분을 두어 급할 때 쓰고 남은 것은 자손을 위해 전답을 장만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여성의 부지런함과 절약만이 집안의 흥망을 결정짓는 시대였다.

사주당의 조카로 규합총서를 지은 빙허각이씨도 집안이 몰락하고 가산이 기울자 손수 차밭을 경영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베짜기의 고달픔을 노래하는 규방가사나 민요가 많은 것은 여성들의 이같은 고된 노동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임신을 했다고 해서 여성이 일을 가려서 할 여유가 있었겠는가 싶다.

사주당이씨는 “몸소 누에치는 일을 하지 말고, 베틀에 오르지 말고, 바느질도 조심히 해서 바늘에 손이 상하지 않게 하며, 찬물에 손을 적시지 말고, 날카로운 칼을 쓰지 말라”고 했다.

이사주당이 당시 여성에게 주어진 상황을 몰라서 그랬을 리가 있겠는가. 임신부가 감당하기에 벅차고 힘든 일임을 알기에 태중의 아기를 위해서 일을 하지 말라고 엄중 강조한 것이리라.

각별히 조심해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집안의 생계가 오간데 없는데 임신을 했다고 해서 일손을 놓을 수 있었겠는가.

바깥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밥 짓고 빨래하는 집안일조차도 남편들이 대신해주는 일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지금이야 남편들이 임신한 아내를 위해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해주지만 옛날에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양반가의 여성도 이와 같았는데 노비나 일반 여성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싶다.

여성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시절, 노비가 임신을 해서 산달이 되면 천하고 더럽다며 집 밖으로 내쫓았다고도 하니 그 설움과 당혹스러움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싶다.

요즘은 메스콤에서 캠페인을 벌이는 등 임신부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져서 좀 나아지고 있지만 한때는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임신을 하면 눈치꾸러기가 됐다.

그래서 직장과 결혼 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요즘은 그나마 직장과 결혼 생활을 병행할 수 있다지만 벅찬 게 사실이다. 사회적으로 임신부에 대한 각별한 배려가 필요한 부분이다.

여성 노동이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조선시대에 여성에게 주어졌던 노동의 무게와 책임과 거기에 더해 임신과 출산은 실로 초인간적인 인내와 의지를 필요로 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