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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술에 미혹되지 말라.26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절

이사주당은 “아기를 잉태한 집에서 소경이나 무당을 불러 부적을 붙이고 주문을 외우며 푸닥거리를 한다”고 지적하면서 미신에 현혹되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다.

또 “불사를 하고 시주를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사악하고 편벽된 생각이 일어나 거스른 기에 호응하고 거스른 기운이 형상을 이루게 되므로 길한 것이 없다”고 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아들을 낳아 가문의 대를 잇는 것이 집안 최대의 관심사였다. 여성이 아들을 못낳는 것은 칠거지악의 하나로 득남은 여성에게 주어진 지상 과제였다. 아들을 낳아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서 무슨 일인들 못했을까 싶다.

씨받이라는 영화도 있지만 아들을 못 낳으면 종래에는 씨받이라도 해야 했다.

당시는 의학이 발달하지 못해서 부인들이 아기를 낳다가 죽거나 아기를 낳고 산후 후유증으로 죽는 일이 흔했다. 태어난 아기도 몇 년을 못 넘기고 죽는 일이 흔했다.

남자들의 재혼이 많은 이유는 대를 이을 자손을 얻기 위해서인데, 부인이 죽으면 곧바로 재혼에 돌입했다. 가문을 잇는 일에 목숨을 걸고 살았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주당이씨의 남편 유한규도 부인을 세 번 잃고서 네 번째 사주당이씨를 만났다.

손이 귀한 집에서는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절을 찾아가 100일 기도를 올리면서 온갖 정성을 쏟는가 하면 여성들은 새벽에 정한수를 떠놓고 치성을 드렸다.

최근에 공자의 고향 곡부를 다녀왔지만 공자의 아버지 숙량홀은 60이 넘은 상태에서 대를 이을 아들이 귀해 안씨 집안의 셋째딸을 맞아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

17세에 공자를 낳은 어머니 안징재는 무속인이며 이들은 정상적인 결합이 아닌 야합을 했다고 전해지기도 하지만, 공자의 집안이 대를 이을 아들을 갈망했기에 어머니는 니구산에 올라 아들을 점지해 줄 것을 빌어 공자를 낳았다고 한다.

요즘은 아이를 못가지면 불임시술을 하거나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기도 하지만 과거에는 보이지 않는 신에게 비는 일밖에 할 일이 없었을 듯 싶다.

뿐만 아니라 손이 귀한 집에서 잉태를 하게 되면 아기가 아무 탈 없이 잘 태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절에 시주도 하고 부적도 지녔다. 태어나서도 매일 아침 정한수를 떠 놓고 잘 자라기를 바라며 치성을 드렸다.

심지어는 아들을 원하는 집에서는 딸을 아들로 바꾸는 부적 등을 지녔을 듯도 싶다.

동의보감에도 이같은 류의 비법이 나온다. 이런 일은 잉태하자마자 이뤄졌을 것이며, 한가닥 희망을 가져보는 일이었을 것이다.

동의보감에 전녀위남법이라고 하여 임신한 여성이 활줄 한 개를 비단 주머니에 넣어 왼팔에 차고 있다든가, 임신부가 원추리꽃을 차고 있거나, 수탉의 긴 꼬리를 3개 뽑아 임신한 여성의 자리에 넣고 알려주지 않는다든가 하면 딸이 아들로 바뀐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아무리 딸이라도 양의 기운을 많이 받게 하면 아들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당시의 민간에 비법으로 떠돌던 이야기를 수록한 것으로 여겨진다.

요즘은 딸을 가졌다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한숨을 쉬는 일은 없어졌다. 한때 아들 선호사상 때문에 남녀 구성비가 심하게 깨져 남성들이 혼인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하면서 해외에서 짝을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졌다.

사주당이씨는 성리학의 입장에서 볼 때 무속이나 불교의 행위가 비 합리적으로 여겨졌을 테지만 당시 간절했던 남아에 대한 염원은 막을 수가 없었을 것 같다. 약보다도 소경이나 무속인의 점술이 더욱 효험이 있다고 여겼던 시절이다.

신소설인 이해조의 구마검에 함진해가 자손복이 없어 낳는 아이마다 기르지 못하다가 셋째 부인 최씨를 얻어 아들을 낳았는데, 부인 최씨는 아들이 감기만 앓아도 무당을 불러들이고, 천연두를 앓자 약은 쏟아버리고 굿에 치성을 드리다 아들이 죽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를 또 얻기 위해 조상의 산소를 옮기는 이야기가 나오듯 당시는 의학이 발달하지 못해 보이지 않는 힘에 의존하려는 행위가 많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