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당이씨는 질투를 참으라고 했다. 질투를 참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도 사주당이씨는 사심, 즉 도를 닦지 않은 간사스러운 마음을 경계하라고 하면서 임신부가 도의 경지에 이를 것을 주문한다.
사주당은 “질투심이 많은 부인은 여러 첩이 자식이 있는 것을 꺼려한다. 혹 한 집안에 임신부가 둘이 있으면 맏동서와 아랫동서 사이라 해도 서로 용납하지 못하니 마음가짐이 이래서야 어찌 자식을 낳아 재주 있고 또 장수할 수 있겠는가”라면서 “그대의 마음이 하늘이라. 마음이 선하면 하늘의 명령도 선하고, 하늘의 선함이 자손에 미치느니라”고 했다.
사주당은 시경의 구절을 인용해 “낙을 즐기는 군자는 복을 구하되 복을 구함에는 사악한 마음이 없어야지 하나라도 사악한 마음이 있으면 복을 구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했다.
태교가 이렇듯 어려운 것이다. 첩을 거느린 남편조차 이해하라는 것인즉, 조선시대에 남성은 얼마든지 첩을 거느릴 수 있었던 시절이다.
남편이 첩을 거느리고 있는데 임신한 아내의 심정이 즐겁고 한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칠거지악 중에 투기는 아내를 쫓아낼 수 있는 항목인데, 사람이 목석이 아닌 이상 누구라도 시기 질투 미움이 생겨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성리학이 자리 잡은 조선시대 남성들의 욕망에 가려진 여성에게 주어진 순종 이데올로기에 다름 아니다. 노론의 영수였던 우암 송시열이 시집가는 딸에게 준 계녀서에 “남편이 일백명의 첩을 두어도 본체만체 하고 첩을 아무리 사랑하여도 노여워 하는 기색을 보이지 말며 더욱 더 남편을 공경하여라”고 하고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고 할 수 있다.
투기를 금하고 있는 시절이지만 질투하면 떠오르는 여인들이 있으니, 그 가운데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는 여성의 윤리 규범과 법도가 엄중할 대로 엄중한 궁궐에서 성종이 임신한 자신을 멀리하고 후궁을 가까지 하자 왕의 용안에 생채기를 냈을 정도로 질투의 화신이었다. 속 시원한 정면 도전이 아니었겠는가도 싶다.
그렇다면 사주당이 질투를 참으라고 한 것은 남성 중심의 사고에서였을까. 당연히 아니다. 사주당이씨도 질투를 참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심을 경계하라고 할 수밖에 없던 것은 뱃속의 생명을 위해서라는 사실임을 이해해야 한다. 임신부에게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당연히 질투 분노 노여움 같은 감정이 심하게 되면 태아에게 해롭게 되는 것은 뻔하다. 사주당은 임신부가 화가 나면 태아의 혈이 병든다고 했고, 위에서도 투기를 금하지 못하면 어찌 아기가 장수하겠냐고 지적하고 있다.
현대 의학적으로도 스트레스가 술 담배 카페인 보다 태아에게 더욱 해롭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는 부분이다. 조선시대는 남성들의 천국이었다고 해야 할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퇴계 이황도 첩이 있었고, 다산 정약용도 유배지에서 만난 여성과의 사이에서 딸까지 두었다. 박지원은 10대 초반의 어린 기녀를 자신을 찾아온 손님에게 접대했다. 이것이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시대의 남성들의 행태였다.
60이 넘은 노인이 첩을 두자 60이 다된 늙은 부인이 자살 소동까지 펼치면서 질투를 폭발시킨 기록도 남아있다. 질투는 나이를 초월하는 감정이다. 남자의 질투가 더 강하다고 하지 않는가. 입장이 바뀌었다면 과연 어떠했을까 싶다.
조선시대의 여성 지식인인 김호연재는 여성의 투기는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 공동의 것으로 여겼다. 즉 투기를 일으키게 하는 요인인 남편의 잘못을 따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