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ood People이 창간 된지 벌써 1년이 됐다. 그동안 120여명의 인물들이 소개됐다. 참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했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농업, 교육, 연예, 사회, 종교계는 물론 오랜 기간 외길을 걸으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까지 분야도 셀수 없이 다양하게 소개했다. 처음에 제호를 정할 때 많은 고민을 했다. 인물을 중심으로 가야겠다는 방향은 정했지만 막상 제호가 난감했다. 누군가 굿 피플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고, 정말 좋은 제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이 말대로 꼭 무슨 선행을 베푼 사람들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에 사로잡히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런 건 아니다. 자기 분야에서 성실하게 살고 있는 자체만으로 굿 피플의 대상이다. 인터뷰 대상자들 중에는 자신이 배드 피플이어서 나갈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스스로를 낮추고 유머를 보여준 분들도 있다. 이제 1년이 됐다. 굿 피플을 통해 남들의 삶을 보면서 독자들이 스스로를 채찍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얼마나 실현이 되고 있는지 모른다. 남들의 사례는 나의 거울이 돼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막힘없이 하이웨이를 질주하며 승승
곱게 물든 형형색색의 나무들이 가을의 전령사가 되어 캠퍼스를 물들이고 있다. 곳곳에 쌓이기 시작한 알록달록한 낙엽들이 가을이 깊어졌음을 실감케 한다.
이지현의 짧은생각(8)-꽃피는 가을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말이 다가오며 참여정부에 대한 갖가지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대통령, 나라 경제를 어지럽힌 대통령, 독불장군 식 군주 등 유례없이 다양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둘러싼 논란이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비롯해 히틀러, 글래드 스턴 등 세계지도자의 말을 집중분석한 책이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김재일 에세이 ‘희망언어’가 바로 그것. 한국 감사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작가는 코리아타임스와 한국일보를 통해 언론에 입문한 후 시사저널 창간 멤버이자 정치부장을 지냈다. 그 후 정계에 입문해서는 새천년 민주당 외신 부대변인, 16대 대선 열린우리당 경기도 선대본부 대변인을 역임했다. ‘희망언어’에서도 그의 기자 습관이 엿보인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수필이건만 기사체로 대변되는 간결한 문체와 객관적인 시각 등은 그의 경력을 대변해 주는 듯하다. ‘희망언어’는 언론인 출신의 정치인으로, 정치와 말의 관계에 대한 가장 객관적인 시각의 서술로 호평을 받고 있다. “말은 자기표현의 수단임과 동시에 의사소통의 매개체죠. 즉,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말을 믿는
기계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옛날 우리 선조들의 생활은 노동속에서 표출하는 농악의 가락과 장단을 통한 흥겨움이 대중적 놀이의 기반이었을 것이다. 모심기, 논매기, 벼베기, 타작하기 등 각 단계별로 독특한 장단으로 흥에 겨워 춤도 추고 노래를 하면 신바람도 나고 일의 능률도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기계화 시대가 되어 일상생활에서 공동체적 문화의 기반을 둔 놀이문화가 대부분 퇴색되어 버렸다. 우리가 이어갈 민족의 얼이 배인 전통이 무너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전통을 찾아내서 복원하는 일이야 말로 우리 민족에겐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닌 일일 것이다. 그러한 일을 하며 한 평생을 바친 사람이 있으니 한국민속촌 농악단장이며 우리춤보존회 회장인 정인삼(66)씨가 바로 그 사람이다. 이 땅의 풍물재비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그 이름을 들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70년 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전북농악’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그가 지도하고 연출한 종목이 여섯번이나 같은 상을 받았으니 가히 민속놀이의 대통령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다. # ‘농악사관학교’의 비공식 축제 용인
지난 2004년 제17대 총선. 당시 열린우리당 용인(갑)선거구 국회의원이던 남궁석 전 총장이 이른바 부인의 돈 봉투 사건으로 출마가 불투명하게 된다. 남궁 전 총장과 측근들은 한나라당 홍영기 후보의 대항마를 물색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농촌지역 정서가 많은 처인구의 주민 특성 상 지역출신의 능력 있는 인물을 찾아야만 하는 어려운 과정이었다. 그 결과, 당시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에 재직 중이던 우제창 교수를 적임자로 판단, 그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우 의원이 학자에서 정치인으로 인생여정을 전환한 계기다. # 학자에서 정치인으로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영국 런던정경대학 경제학 석사, 영국 옥스퍼드대학 중국경제학 박사. 우 의원의 학력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우 의원은 국내·외에서 명망있는 중국경제학자였다. 특히 중국 경제가 발전하며 국내기업들의 중국진출 등이 한참 진행되고 있던 터라 그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그가 총선 후보로 주목받게 된 큰 이유다. 당시 우 의원은 정동영 당의장의 경제특보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시장경제를 되살려야한다는 생각에서 출마를 결심하게 됐죠.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으로는 국가 발전을
“우리 함종어씨들은 아시다시피 희성입니다. 용인에서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문중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는 이동면 송전리에서는 윤씨, 홍씨, 박씨와 함께 4대 성씨에 드는 큰 가문입니다. 특히 우리 함종어씨는 송전리에서 만큼은 근 460연년간 뿌리박고, 자랑스럽게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물론 시골에서 배운 것 없지만, 정직하게 그리고 효행을 다하여 살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송전리 함종어씨 종친회 회장 어연우씨의 말이다. 이 분들은 정직하고, 효행을 다해 살고 있음을 차 한 잔 마시는 짧은 시간에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총무 현우씨는 90세가 넘은 노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으며, 대부분의 후손들도 불평없이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시골에서 선조들의 묘역을 관리하며, 4대가 한 집안에서 살면서도 불평이 없을 수 있겠는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오히려 자긍심을 갖는 이들의 성심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송전리 함종어씨들의 3세 효정기에 대한 자긍심은 대단하다. 한 지역, 한 가문에서 3대가 효행이 뛰어나 정려의 은전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 이들은 자랑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 어씨들은 자랑할 것이 없어요. 이 효정기 외에는…, 물론 조선시대에는 높은 벼슬을 하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설이 현실적인 위력을 갖춰 눈덩이처럼 커졌고, 여기에 박근혜 전 대표 측과의 불화까지 겹치면서 “좀 더 이 후보가 이 전 총재나 박 전 대표에게 다가서는 모습이 필요하다”(홍준표 의원)는 주문이 늘어났다. 이재오 최고위원의 “좌시하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촉발된 ‘박근혜의 분노’와 ‘이회창 출마설’은 외견상으로는 명백한 연관 고리가 없다. 서청원 전 대표, 정인봉 전 의원 등 박 전 대표측 인사들이 최근 잇따라 이 전 총재와 만나면서 불거진 ‘이회창-박근혜 연대설’도 양측 모두가 부담스러운 눈치다. 그러나 두 가지 현안이 폭발력을 상호 배가시켜 결국 ‘이명박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뇌관으로 등장한 것만은 틀림없다. 당 내분이 이 전 총재의 출마설을 부추기는 게 현재라면, 이 전 총재가 실제로 출마 결심을 할 경우 박근혜계의 이탈이 촉발될 수 있다는 게 미래적 위기다. # 열쇠는 박근혜 손에 이에 따라 이 후보는 ‘조용한 해법’으로 내분 다스리기에 방점을 찍었다. 갈등의 확산이냐 봉합이냐의 키를 박근혜 전 대표가 쥐고 있다는 상황인식에 따른 것. 공석인 지명직 최고
# 희성임에도 불구하고 명현을 많이 배출한 함종어씨 함종어씨의 시조는 어화인(魚化仁)이다. 중국 섬서성 풍익에 거주하며 벼슬하다가 난을 피해 고려 명종 25년(1195)에 강릉(江陵)으로 왔다. 이후 거처를 함종(평안남도 강서군)으로 옮겨 정착하였다가 고려에 귀화하였다. 이후 6세까지 함종에 거주면서 현달하여 가문을 일으키고, 함종을 관향으로 삼았다. 함종어씨는 희귀 성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명현들이 배출된 가문이다. 어씨는 조선시대에 문과급제자 24명을 배출하였는데, 주로 함종어씨에서 많?인물이 나왔다. 함종어씨의 대표적 인물은 세종 때의 명신으로 집현전 대제학에 이른 뒤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 노모(老母)를 봉양한 변갑(變甲)이다. 그의 아들 효첨(孝瞻)은 조선 전기의 거유(巨儒)로서 명망이 높았으며, 효첨의 두 아들 세겸(世謙)과 세공(世恭)도 모두 이름을 떨쳤다. 세겸은 세조~연산군대에 걸쳐 각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고 양관대제학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세공은 이시애(李施愛)의 난을 평정하고 성종 때 호 ·병 ·형 ·공조의 판서를 거쳐 우참찬에 이르렀다. 세공의 9대손 유봉(有鳳)은 함종어씨가 낳은 대표적 학자이며,
“신앙은 한마디로 말해서 타자를 위한 삶, 남을 돕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덕성교회 서달웅(48) 담임목사는 평소 움직임이 편안한 티셔츠 차림으로 교회에 출근하는 날이 많다. 바쁜 와중에도 동네를 돌며 재활용 물건을 분리수거하거나, 장수촌인 이동면 덕성리 동네 어르신들의 힘든 일을 돕기 위해서다. 소탈하고 명쾌한 서달웅 목사. 그는 동네 주민의 90% 이상을 덕성교회 성도로 이끈 강력한 리더십의 주인공. 시간을 아끼고 몸을 돌보지 않는 실천과 작은 일도 소중히 여기며 남을 돕는 일에 솔선하는 모습은 그가 교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리더십과 섬김의 원천이다. #덕성교회 동네 주민 거의 다를 한 교회의 열성 성도로 만들 수 있을까. 아무리 작은 농촌 마을이어도 쉽지 않은 일이고, 믿기지 않는 일이다. 농촌교회의 나갈 방향을 제시하는 덕성교회. 서달웅 목사가 덕성교회에 부임한 것은 1992년이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용인 덕성교회는 63년 전통의 유서 깊은 교회이지만 서 목사 부임 당시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시련기에 놓여 있었다. 새벽예배는 다섯명, 낮 예배는 칠십명 정도 출석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서 목사 부임 후 새 목사 구
■ 달밤에 우리와 눈 맞춤하는 꽃 저녁 날이 선선해지는 해거름 무렵 기찻길 가에 나오면 여러 가지 많은 추억 중에 이곳저곳에서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는 반가운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랬다가 좀 있으면 옷깃을 세우고 달을 보거나, 별을 보며 누군가 기다리던 생각이 아련히 나실 것입니다. 달빛에 비쳐진 그래서 더욱 싱싱해 보이는 달맞이 꽃. 달과 더불어 있어 그 이름 월견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폭폭 하며 신비스런 소리로 망울 터지는 실상을 보셨을 것입니다. 정말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값지고 좋은 자연의 큰 선물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달맞이꽃에 대한 깊은 연구와 가치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않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특히 외래종이라는 인식이 너무나 꽃의 가치보다 앞서기 때문이라는 것 또한 압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다가 온지 얼마 안됐을 뿐 그 가치에 관해서는 많은 연구와 투자가 꼭 필요하다고 매일 이야기해도 부족합니다. 한 가지만 들어 주실래요. 현실적으로 유휴 농경지가 갈피를 못 잡고 있습니다. 농민들이 제때에 주 작목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넓은 대지위에 달맞이꽃을 심어 보십시오. 달빛이
붉은 네온도 스스로 혀를 깨무는 안개의 밤. 회색도시의 침묵까지 삼켜버린 포악한 군단이 몰려온다.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 불법인 줄 알면서도. 위장 전입한 점령군단들은 메마른 안개에 불을 지른다. 안개가 타오를 땐 어느 누가 자위행위를 해도 욕을 하거나 소리 지르지 않는다. 지난밤에도 누군가 안개와 몸을 섞었다는 불온한 소문만이 읍내를 떠돌아 나갔다. 안개는 온몸을 풀어 헤치는 창녀다. 거만하게 어둠을 짓밟고 밀려오는 독재자의 강한 욕구덩어리다. 안개에 섞여 버려진 사람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안개를 고독이라 했던 놈들은 벌써 쓰레기차에 실려 떠났고, 더이상 산업도로의 포악한 안개속으로 뛰어드는 미친놈은 없으니까. 다만, 어젯밤 도둑고양이 몇 마리가 안개에 치여 떠났다는 소식이 안개를 빠져나왔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