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신문 | 정자은행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 정자은행의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꽤 다르다. 정자은행의 운영 방식은 크게 국가 운영, 공공 운영, 상업 운영으로 나눌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상업적 정자은행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한국은 어떠한가. 남성불임, 특히 무정자증(비폐쇄성) 환자를 대상으로 비배우자 정자공여(이하 비배)를 통한 IVF(시험관아기 시술)를 시행할 경우 난임병원이나 공공정자은행에서 정자를 제공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기증 정자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무정자증(비폐쇄성) 환자 부부가 남편과 같은 혈액형의 정자를 찾기 위해 몇 년씩 기다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왜 한국에서는 정자 기증이 이렇게 부족할까.
서양 사회에서는 정자기증을 하나의 사회적 기여로 보는 시선이 비교적 자연스럽다. 역사적으로 여러 민족이 섞여 국가를 이루고 전쟁과 이주로 혈통이 끊임없이 뒤섞였기 때문이다. 자식을 단지 부부의 아이가 아니라 공동체와 민족의 연속성을 잇는 존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도 있다.
특히 유대인들은 자국민이 무정자증(비폐쇄성)으로 인한 불임 부부일 경우 유대인 기증자의 정자를 이용한 비배를 권하는 분위기가 있다. 정자 기증 또한 유대 민족의 번성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비교적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정자은행은 이미 활성화되어 있다. 미국에는 150여 개의 정자은행이 운영되고 있으며, 유럽 전체로 보면 약 200개 가까운 정자은행이 존재한다. 가까운 중국만 해도 국가 허가를 받은 정자은행이 27곳에 이르고 일본 역시 20~30개 정도의 의료기관에서 정자은행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는 여전히 혈통주의적 사고가 강해서 아들이 비폐쇄성 무정자증(정자 생산 불가)이라고 해도 남의 정자로 임신을 시도한다는 사실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자은행에 기증된 정자를 믿어도 될까? 정자기증은 상당히 엄격한 절차를 거친다. 기증 희망자는 내과적 질환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에서부터 유전질환 검사, 감염성 질환 검사까지 모두 통과해야 한다. 또한 신체적 건강 상태와 가족력까지 확인한다. 이러한 과정을 모두 통과한 남성만이 기증자가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정자은행에 보관된 정자는 의학적 검증을 거친 건강한 생식세포라고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누군지도 모를 부부에게 정자를 기증하는 것은 기피하면서 자신의 정자를 동결 보관하는 일에는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최근 결혼을 미루거나 독신을 선택하는 남성들이 부쩍 많아졌다. 이들은 지금 당장 결혼 계획이 없지만 언젠가 가정을 이루게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정자를 동결 보존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실제로 정자는 나이가 들수록 DNA 손상률이 증가하고 정자 수와 활동성 역시 평균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