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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장려 캠페인 - 서주태원장의 의학칼럼

정자가 혼란에 빠지는 이유, 환경호르몬의 정체

서주태 서주태비뇨의학과의원 대표원장(연세대 의대 졸업·전 대한생식의학회 회장·전 제일병원 병원장)

 

용인신문 | 요즘 퇴근길에 주변을 둘러보면 묘한 풍경이 펼쳐진다. 식당 안은 손님이 없어 조용한데, 거리에는 오토바이 배달퀵만 분주하다. 집밥을 먹든 배달 음식을 시켜 먹든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다. 다만 임신을 기다리는 남녀라면, 음식보다 먼저 한 번쯤 떠올려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그 음식을 담고 있던 용기다.

 

문제의 이름은 환경호르몬이다. 정확히 말하면 내분비계 교란물질, 이른바 EDC다. 이 물질은 현대사회에 사는 이상 완전히 피하기 어렵다. 플라스틱 용기, 포장재, 영수증, 방향제, 화장품, 장난감까지 일상 전반에 스며들어 있다. 중요한 점은 이 물질이 단순한 ‘독’이 아니라는 데 있다. 환경호르몬의 본질은 호르몬을 흉내 내는 능력, 다시 말해 호르몬 사칭이다.

 

남성의 생식기능은 매우 정교한 호르몬 네트워크 위에 구축돼 있다. 뇌가 신호를 보내고, 고환이 반응하며, 그 결과로 정자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환경호르몬은 이 회로에 끼어들어 여성호르몬인 척 행동한다. 남성의 몸에 가짜 여성호르몬이 넘쳐난다고 상상해보라. 정자를 생산하는 공장인 고환 입장에서는 명령과 지시에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 주변에서 환경호르몬의 영향은 생각보다 깊고 넓다. 페스트푸드를 즐겨 먹고, 배달 음식을 플라스틱 용기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행위는 환경호르몬 노출을 급격히 높이는 대표적인 생활습관이다. 이런 노출이 반복되면 정자 수는 조금씩 줄고, 운동성은 둔해지며, 형태는 흐트러진다. 더 문제 되는 지점은 정자의 DNA 질이다. 환경호르몬 노출과 연관된 정자에서는 DNA 손상과 후성유전적 변화가 관찰된다. 이는 임신 성공률의 문제를 넘어, 다음 세대의 건강과도 연결될 수 있다.

 

요즘 젊고 겉보기에 건강한 남성임에도, 정액검사 수치가 정상과 비정상 사이 어딘가에 걸쳐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뚜렷한 질환도 없다. 그런데 임신은 되지 않는다. 생활습관을 하나씩 짚어보면 공통된 그림이 떠오른다. 잦은 배달 음식, 플라스틱 용기 사용, 전자레인지에 데운 포장 음식, 영수증을 손에 쥐는 직업 환경이다. 어느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요소들이 같은 방향으로 누적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환경호르몬의 진짜 무서움은 즉각적인 증상이 없다는 데 있다. 몸에 들어온 EDC는 지방과 조직에 축적된다. 당장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결과가 드러난다. 정자 수 감소, 생식력 저하, 호르몬 불균형, 대사 이상이다. 그리고 그때는 원인을 하나로 특정하기가 어렵다.

 

환경호르몬은 현대문명의 부산물이다.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피하려 애써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분명하다. 환경호르몬 위험도가 높은 상황부터 줄이는 것이다. 뜨거운 음식과 플라스틱 용기의 조합을 피하고, 포장 용기를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넣지 않으며, 가능한 한 유리나 스테인리스 용기를 사용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노출은 눈에 띄게 줄어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