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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태 원장의 의학칼럼

정직한 성적표, 비만 남성의 정자

서주태 서주태비뇨의학과의원 대표원장(연세대 의대 졸업·전 대한생식의학회 회장·전 제일병원 병원장)

 

용인신문 | 비만은 더 이상 외모나 생활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에게 비만은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생식력을 갉아먹는 적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비만은 ‘지방세포의 인해전술’처럼 호르몬과 정자, 성욕과 심리까지 전방위로 침투한다.

 

비만이 무서운 이유는 정자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망가뜨린다는 데 있다. 최근 발표된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비만한 남성일수록 정자의 숫자가 줄고, 헤엄치는 힘은 약해지며, 모양도 흐트러진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정자 속, 즉 DNA의 무결성까지 손상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비만, 당뇨, 대사증후군처럼 몸 전체의 대사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는 정자가 만들어지는 공정 자체가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임신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시험관아기 시술(IVF)이나 인공수정(IUI) 같은 보조생식술에서도 성공률을 끌어내린다. 정자는 생각보다 정직하다. 몸의 상태를 그대로 성적표로 드러낸다.

 

호르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비만 남성의 몸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이 줄어들고, LH와 FSH 같은 생식호르몬도 함께 낮아지는 경향이 반복해서 관찰된다. 반대로 정자 DNA 단편화율은 높아지고, 정자를 단단하게 포장해주는 프로타민은 부족해진다. 쉽게 말해, 정자는 약해지고, 보호막은 허술해지는 셈이다. 이 변화는 단순히 임신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성욕 저하, 무기력, 자신감 상실로 이어지며 삶의 리듬과 질 전체를 흔든다.

 

무엇보다 체지방이 늘어나면 지방 조직이 성호르몬 대사에 깊숙이 개입한다. 남성호르몬은 줄고, 여성호르몬은 상대적으로 늘어난다. 여기에 체온 상승이 더해진다. 정자는 체온보다 1~2도 낮은 환경에서 가장 잘 만들어지는데, 비만으로 인한 고환 온도 상승은 정자 생성 자체를 방해한다. 혈당이 높아지는 경우에는 정자 DNA 손상 위험까지 커진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손상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비만의 영향이 개인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모가 비만일 경우 자녀의 비만 위험은 최대 6배 이상 높아진다. 임신 전 BMI가 높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세포 노화의 지표인 텔로미어 길이가 더 짧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 때마다 닳아 없어지며 노화를 진행시키는데, 삶의 출발선부터 짧아진다면,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비만은 기억력에도 영향을 준다. 체중이 급격히 늘면 과거의 사건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일화기억 능력이 떨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 그 여파는 결국 뇌와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답은 절망일까. 그렇지 않다. 다행히도 생식력은 ‘회복 가능한 기능’이다. 체지방이 줄어들면 호르몬 환경은 빠르게 개선된다. 연구에 따르면 체중의 5%만 감량해도 정자 수와 운동성을 눈에 띄게 끌어올릴 수 있다.

 

최근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역시 지방 축적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독신일수록 코르티솔 수치와 BMI가 높다는 보고도 있다. 외로움이 식욕으로, 식욕이 지방으로 이어지는 익숙하지만 위험한 악순환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분명 무거운 책임을 지는 일이다. 그러나 그 무게를 함께 나눌 가족이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회복의 자원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체중을 줄이는 일은 단순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행복한 일상과 다음 세대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