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신문 | 남성의 생식력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검사지를 펼치는 순간 생각보다 냉정한 숫자들이 등장한다. 남성 정자검사에서 말하는 ‘정상’이란 막연한 인상이 아니라, 꽤 구체적인 기준을 충족해야 얻을 수 있는 상태다. WHO 기준에 따르면 정액량은 1.5mL 이상, 정자 농도는 mL당 1,500만 이상, 총 정자 수는 3,900만 이상이어야 한다. 여기에 총 운동성 40% 이상, 전진운동성 32% 이상, 정상 형태율 4% 이상이 더해진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했을 때 비로소 ‘정상 범위’라는 도장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이 기준이 나이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는 점이다. 남성은 평생 정자를 생산할 수 있지만, 그 ‘질’은 나이를 비껴가지 않는다. 보통 35세 전후부터 정자 수와 활동성은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하고, 40세를 넘기면 검사 결과에서 변화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45세에서 50세를 지나면 단순한 변동을 넘어,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저하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겉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여도, 숫자는 솔직하다.
여기에 정자 건강을 위협하는 악재가 있다. 업무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만약 매일 돈에 대한 압박과 걱정을 하고 있다면 더 안 좋아진다. 특히 금전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면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높아지는데, 이 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 분비를 억제한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정자 생산과 성기능을 떠받치는 핵심 축이다. 코르티솔이 올라가고 테스토스테론이 눌리면 정자 수는 줄고, 운동성은 떨어지며, 형태도 흐트러진다. 동시에 성욕, 즉 리비도와 성적 반응성도 함께 낮아진다. 피곤해서 그렇다고 넘기기엔, 몸 안에서는 이미 호르몬 지형 자체가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이 변화는 수태율로 이어진다. 50대 남성의 수태율은 개인차가 크지만, 평균적으로 보면 30대 남성에 비해 자연 임신 가능성이 약 40~50% 낮아진다. ‘문지방만 넘을 힘이 있어도 아이를 낳는다’는 말은 의학적으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40대 중반 이후부터는 동갑의 여성과 결혼한 경우 자연임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해진다. 반면 여성이 40세 이전이라면, 남성의 정자 상태에 따라 여전히 임신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정자 건강을 논할 때 전신 건강 문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당뇨, 고혈압, 비만 같은 성인병은 혈관과 호르몬 환경을 동시에 망가뜨린다. 그 결과 정자 수와 운동성은 물론, DNA의 질까지 떨어뜨린다. 여기에 복용 약물의 영향도 크다. 남성호르몬제, 탈모 치료에 흔히 쓰이는 피나스테리드 계열 약물, 일부 항우울제, 항암제, 스테로이드, 장기간 사용하는 진통소염제 등은 정자 수와 운동성, DNA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들이다.
남성의 생식력은 단순히 ‘아직 가능하다’와 ‘이제 끝났다’로 나뉘지 않는다. 나이, 스트레스, 생활습관, 질병, 약물, 그리고 선택의 타이밍이 복합적으로 얽혀 서서히 방향을 바꾼다. 정자검사 수치는 그 흐름을 숫자로 보여주는 지표일 뿐이다.
그나마 시대는 조금 달라졌다. 최근 체외수정술, 즉 IVF(시험관아기 시술)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되면서 비용 부담이 크게 줄었다. 자연임신 가능성이 낮은 상황이라면, 과거처럼 막연히 미루기보다 IVF를 하나의 현실적인 선택지로 고민해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