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이해
권지영
내가 창을 내다보는 줄 모르고
마당으로 내려앉는 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햇빛 속에서
명랑하게 우는 작은 새
귓가로 떨어진 울음 조각
소매 끝에 묻히려 꽁무니를 쫓다가
내 속울음 한달음에
이끌고 가는
담장 너머
가느다란 울음
* 권지영 시인
2015 <리토피아> 등단.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사랑이 아니었다 해도』등
슬픔의 이해
권지영
내가 창을 내다보는 줄 모르고
마당으로 내려앉는 새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햇빛 속에서
명랑하게 우는 작은 새
귓가로 떨어진 울음 조각
소매 끝에 묻히려 꽁무니를 쫓다가
내 속울음 한달음에
이끌고 가는
담장 너머
가느다란 울음
* 권지영 시인
2015 <리토피아> 등단. 『아름다워서 슬픈 말들』『사랑이 아니었다 해도』등
노크 김은령 물 위에 앉은 꽃 무연, 무연히 바라보는데 못 전체가 수런수런 일렁거렸다 깊은 곳에서 수면을 치는 어떤 파동이 있었다 스스로 환한 꽃, 꽃! 둥근 잎 아래 누군가 살고 있어 그가 물 위로 건져 올린 자명등이었던 것 하령지에 와서 수련 구경하다가 찰방찰방 맨발로 걸어 들어가서 부유하며 잠든 연자를 깨운 그 주인공을 불러보았다 한 세계를 보이시는 당신 거기 계세요? 김은령: 경북 고령 출생. 1998년 《불교문예》 등단. 시집 『통조림』, 『차경』, 『잠시 위탁했다』와 불교 장편소설 『일연, 달빛으로 머물다』 등이 있다.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약력: 만해 한용운(1879~1944)은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이자 평생 지조를 지킨 독립운동가, 승려, 저항시인이다. 1926년 한국 문학사의 불후의 명작인 시
탁본 수완 내가 네 안의 나를 볼 때 너는 내 안의 너를 본다 먹지로 탁본을 뜬 너와 나는 팔만대장경을 새긴 경판 전남 신안 출생, 1973년 출가 (해인사 등에서 정진) 1991년 『문학공간』 신인상 등단 현대불교문인협회 결성 계간 『불교문예』 및 『불교와 문학』 발행인 현대불교문학상 제정 및 운영위원장 (1996년~) 시집 『하늘 빈 마음』, 『이내의 끝자리』, 『향기는 아직 찻잔에 남았는데』, 『지리산에는 바다가 있다』, 『유마의 방』
검은 빵 윤희경 그날의 식탁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그늘과 온기 사이, 내가 앉은 자리만 미세하게 움푹했다 나는 식은 국처럼 조용히 가라앉았다 혀끝의 작은 가시들이 들썩이며 마음의 밑바닥을 긁었다 입술을 떠난 말은 빛으로 번질 수 있을가 오래 씹을수록 질감이 돋아나는 검은 빵 목을 잠시 멎게 하는 단단한 결 묻지 않기로 한 울음이 빵 속에 숨어 있었다 먹다 남긴 하루 곁에 빵 한 조각이 굳어 있었다 시집 <말이 사라진 자국> 중에서 약력: 2022년 재외동포문학상 제10회 경북일보문학대전 제9회 동주해외작가상 수상 시집 『대티를 솔티라고 불렀다』
토마토론(論) 김택희 피비린내다 눈앞 번쩍하더니 눈물 솟구친다 급히 베어 문 붉은 문장들 무심코 살지 말라며 한 방 날린다 생살 너덜거린다 방방의 씨앗들 왈칵 아린 말을 쏟아 낸다 김택희 2009년, <유심>으로 등단 시집『바람의 눈썹』 『눈 오는 날의 염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