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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는 총보다 강하다

오룡(조광조 역사연구원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 국가는 인간이 만든 가장 복잡하면서도 섬세한 공동체의 형태이다. 그 존재 이유는 단순히 질서를 유지하거나 권력을 집중시키는 데 있지 않다.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과 불안을 나누기 위한 집단적 합의, 연대의 결과물이다. 국가는 인간의 고통을 분산하고, 삶의 무게를 서로에게 기대게 해주는 정치적 울타리로 존재해왔다.

 

우리는 지도자에게 많은 것을 기대한다. 강력하면서도 선하고, 유능하면서도 탐욕이 없기를 바란다. 이 바람은 처음부터 모순을 품고 있다. 유능한 이는 대개 큰 욕망을 지닌다. 중요한 것은 욕망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가이다. 욕망이 능력의 연료가 되어 공동체의 진보를 이끌 때, 지도자는 희망의 이름이 된다. 문제는 무능한 이가 욕망까지 품을 때 발생한다. 대통령의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역할 놀이’에 빠진 이가 권력을 가졌을 때 공동체는 깊은 상처를 입는다. 능력 없는 권력자가 욕망을 발현하면 사회는 균열을 일으킨다. 그 파국의 경험은 단 한 번으로 족하다. 우리는 더 이상 그러한 비극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실패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었고, 이제는 그 교훈을 바탕으로 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할 때이다.

 

‘국민’과 ‘자유’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선거철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때때로 논점을 흐리고, 의미를 분산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종종 개인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가치로 포장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특히 타인을 불쾌하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한 이들이 이러한 단어들을 자주 사용하며, 형식적인 미사어구로 일반화를 시도한다.

 

‘자유’의 반대는 ‘독재’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자유’를 강조하는 것은 저항의 의미보다는 배척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현대사의 독재 정권에 우호적인 사람들이 특정 후보에 대해 독재 운운하는 것이 후안무치(厚顔無恥)에 가까운 이유이다.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태도는 국민의 올바른 판단을 흐리게 하며,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진정한 자유는 모든 시민이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이며,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자유를 외치면서도 타인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이들의 위선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묻고 있다. “당신은 어떤 공동체를 원하는가?” 그 물음 앞에서 더 이상 무기력하게 타협할 수는 없다. 기만과 위선 앞에 침묵해서도 안 된다. 때로는 당파성을 분명히 드러내야 할 순간이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자신의 신념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더 나은 공동체를 향한 용기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깨어 있을 때만 존재한다.”는 토머스 제퍼슨이 말한 깨어 있는 시민의 선택, 그것이 바로 투표이다. 투표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세상을 원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응답이다.

 

그 선명한 선택은 종이 한 장 위에 찍히고, 조용히 투표함 속으로 떨어진다. 그 무게는 총보다 무겁고, 그 선택은 시대를 뒤흔들 수 있다. 이 작은 행위가 모여 거대한 파동을 일으키고,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위대한 힘을 보여준다. 우리의 한 표 한 표가 모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는 사라지는 예술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예술이다.”라고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우리는 계엄령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함께하는 광장 민주주의의 승리를 경험했다.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내란수괴 탄핵’을 외쳤던 함성을 모아 다시 한번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변화는 거창하거나 요란한 일이 아니다. 망가진 세상을 바로잡고,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날이 바로 2025년 6월 3일이다.

 

사족 하나, “사람답게 살지 않으면 어때요. 우린 살아 있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라고 외쳤던 다자이 오사무처럼 살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