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의 이야기다. 아성 맹자는 군주에 대해서 점수가 후하지 않았다. 맹자가 존경하고 후한 점수를 주는 인물은 오직 공자 한 사람뿐이었다. 그러나 성인 공자는 각 나라의 군주에 대해서는 평가가 후하고 깍듯했다. 그런데 유독 직설적으로 사실을 적시한 군주가 있으니 논어 헌문 편에서 그 기록을 살펴볼 수가 있다. 공자께서 “위나라 군주 영공은 무능하다.”라고 말하니, 듣고 있던 노나라 유력 정치인이자 실세 중에 실세인 계강자는 이렇게 되묻는다. “군주가 그렇게 무능한데도 어찌하여 나라가 망하지 않습니까?” 그러자 공자께서 말씀하신다. “훌륭한 신하 세 명이 있어서 그렇다. 외국에서 사신이 오면 중숙어 라는 신하가 그 일을 처리했으며, 나라 안 종묘 제사를 지낼 때는 축타 라는 신하가 그 일을 처리했으며, 나라 간에 전쟁이 나려 하면 늘 왕손가 라는 신하가 그 일을 처리했노라. 이러하거늘 어찌 망하겠는가.” 사실 위나라는 군주 영공은 정말로 무능하기 짝이 없는 그런 군주였다. 더군다나 아내한테 꽉 잡혀서 정사에 관하여 제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찾아볼 건더기조차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는 게 없어
용인신문 | “전하 역모(逆謀)이옵니다.” 사극에서 가장 무서운 말이다. 조작과 정치보복이라 할지라도, 역모의 누명을 쓰면 살아남지 못했다. ‘역모’에 합의란 있을 수 없다. 2024년. 누군가, “세상이 어수선하다.”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갈수록 태산이다.”라며 탄식한다.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근심·걱정은 대한민국의 안보에 대한 불안감에서 나온다. 안보는 대외 관계용이지만, 우리에겐 내부 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안보가 대외용이든, 국내용이든 그 대상은 분명하다. 대외용이면 국가이고, 대내용이면 국민이어야 한다. 대다수 사람의 바람과 달리 ‘전쟁과 평화’는 동시성이며 동일선상에서 마주 보고 있다. ‘전쟁과 평화’가 붙어 다니는 이유는 선과 악의 양면적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가치가 아닌, 경쟁적인 담론이다. 평화는 자신의 옳음을 증명하지 않지만, 전쟁은 자신의 옳음을 끊임없이 증명하려고 한다. 최근 일본 자민당은 자위대의 존재 근거를 명문화하고자 개헌을 준비 중이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기시다 총리의 주도로 평화헌법 9조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2차대전의 전범국인 일본은 평화헌법 9조에 전쟁
용인신문 | 학창 시절 뉴스에 나오는 기자를 보면서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위험할 수도 있는 현장에서 생생한 뉴스를 전하기 위해 전쟁터도 마다하지 않던 그녀의 모습은 내게 기자를 꿈꾸게 했다. 대단한 인물들 앞에서도 결코 주눅이 든 기색없이 당당하게 질문을 하던 그녀의 매력은 여고생이던 내게 끝까지 보기 힘들던 뉴스를 끝날 때까지 보게 만들었다. 그녀 덕분에 뉴스를 기다렸다 보게 되었고 기자가 될 수 있는 학과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누군가의 꿈이 될 만큼 멋진 모습의 방송 기자였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대학생이던 내게 시사 프로그램 현장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혹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결국 만나지는 못했다. 그날 내가 참여했던 프로그램은 일제시대 강제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가 방송을 통해 자신이 겪었던 일을 증언하는 시간이었다. 할머니로서는 가족들에게도 숨겼던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는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던 순간이었다. 국민들에게 그 방송은 나라를 빼앗긴 아픈 역사 속에 참혹했던 민족의 삶을 적나라게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동경했던 기자를 만나고 싶었던 목적은 어느새 희미해졌고 기억조차 하기 싫은 과거를 끄집어내야 했던
용인신문 | 유튜브가 맹위를 떨치며 기존 미디어를 뉴스의 주변부로 몰아내고 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KBS, YTN의 영향력을 능가한다. 윤석열 정부가 야당과 방송관계자들이 극우라고 비판하는 이진숙 씨를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했지만 염원하던 공영방송(MBC) 장악의 길은 험난해 보인다. 현재 다수 국민이 뉴스를 접하는 통로는 MBC를 제외한 공중파 방송보다 JTBC와 명망 있는 유튜브 방송, CBS라디오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 이러한 기현상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미디어가 시청자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8.15 광복절 새벽 0시에 벌어진 KBS 기미가요 사건은 공영방송의 본분을 망각한 것으로 대표적인 예다. KBS 사장은 온 국민의 지탄받아 마땅하다. 요즈음 언론보도를 보면 일제강점기에 대한 무지(無知)가 판을 친다. 야당과 광복회에서 뉴라이트로 지목하고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채용심사에서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국적은 일본이었다‘고 해괴한 소리를 하고 1등으로 심사를 통과했다고 한다. 김형석씨는 독립운동사는 물론이고 일제강점기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는 사람이다.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이후 대한제국 신민이었던
용인신문 | 당나라 문장가 한유는 불평즉명을 말했다. 기울면 운다는 말로 인조 때 판서를 지낸 문인 상촌 신흠은 이를 이렇게 풀어낸다. 사물이 우는 것은 그 모두가 부득이함에서 말미암은 평평하지 않음이 있어서이니 곧 불평이 있기 때문이다. 옛날 고리짝 시절에나 있었던 이 말을 다시 되살려낸 단초를 제공한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시다. 내용은 간단하다. 독립기념관장 임명으로 촉발된 부적격 인사 논란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온 국민이 하나로 똘똘 뭉치는 합일의 날이어야 할 8·15 광복절 행사가 사분오열의 행사로 치러졌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우리는 좌우로 나뉘어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던 시절도 있었다. 작금의 사태를 동시 비교하기는 좀 무리는 있다고 해도 유사한 상황인 것만은 부인 못 하리라. 이에 대한 첫 번째 책임은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하려 해도 임명권자에게 있다고 밖에 달리 생각이 안든다. 야당과 광복회 그리고 독립단체들이 불참한 가운데 치러진 광복절 행사는 그야말로 반쪽 행사에 그치고 말았다. 이는 정부가 국가의 위상을 높이고 온 국민이 염원하는 광복절 행사로서는 그야말로 초유의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단합의 장이 되어야 할 국가 최대의 기념일인 광복절
용인신문 | 토지공사가 사업시행자가 되어 2006년 12월 31일까지 98만 평 규모의 동백지구를 조성하였다. 용인특례시 기흥구의 동백동이 ‘동백신도시’가 아닌 ‘동백지구’인 것은 그 규모가 ‘98만 평’이기 때문이다. 택지개발지구가 신도시라고 지칭하려면 100만 평 이상이어야 한다. 신도시를 건설하려면 광역교통대책 수립 기준이 강화돼야 하는데 한국토지공사가 이를 피하기 위해 2만 평을 줄여 98만 평 규모로 택지개발을 했던 것이다. 동백지구는 엄밀히 말하면 동백1동과 동백2동만 해당한다. 동백3동은 이른바 ‘신동백’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동백지구가 조성되자, 민간사업자들이 동백지구 동백죽전대로 건너편에 있는 녹지의 도시숲을 헐어낸 뒤 야산을 불도저로 밀어내고 아파트 단지를 조성한 곳이다. 민간사업자들이 택지개발을 한 동백3동은 전주와 송전선로 및 통신선로가 지중화 되어 있지 않는 등 도시 인프라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이 있다. 출발이 달랐지만 동백1동과 동백2동, 그리고 동백3동은 같은 배를 탄 운명공동체가 되었다. 이제 동백지구는 동백3동을 품고 8만 명의 시민이 살고 있는 ‘동백신도시’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동백지구가 ‘동백신도시’로 거듭나게 되려면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