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2025년의 대한민국 정치는 분명 위기이자 기회였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질서의 충격과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은 국가 운영의 근본을 다시 묻는 계기가 됐다. 통치의 정당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권력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느냐는 질문은 더 이상 추상적 담론에 머물 수 없게 되었다. 이 시기 국가는 단순한 관리자를 넘어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주체로 소환됐다. 탄핵 이후의 정치는 ‘속도’와 ‘결단’을 지도력의 핵심 덕목으로 다시 부각했다. 혼란의 국면에서 지체 없는 판단과 신속한 실행은 국가 운영의 안정성을 회복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위기 상황에서 주저하지 않는 선택은 책임 정치의 출발점이자 지도력의 존재를 증명하는 최소 조건이기도 하다. 다만 그러한 선택은 분명한 방향과 사회적 맥락 위에서 작동할 때만 신뢰로 축적된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말한 ‘도전과 응전’의 법칙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명의 운명은 도전의 크기보다 그 도전에 어떻게 대응했는가로 결정된다는 통찰이다. 위기는 피할 수 없지만, 대응의 방식은 선택의 영역이다. 탄핵 이후의 대한민국 정치는 바로 그 선택의 장 위에 놓여 있다. 정치는 언제나 욕망을 품는
용인신문 |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것은 오직 백성뿐이다. 서슬 퍼런 임금님이 주인이던 시대, 허균이 한 말이다. 진나라가 망했고 한나라가 혼란스러웠으며 당나라가 쇠한 데는 단 하나의 이유만 존재한다. 권력자가 백성을 괴롭힌 까닭이다. 백성 눈 밖에 나서 끝이 좋았던 임금은 없었다. 맹자는 『맹자』 「진심장구」 하편에서 백성은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고 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임금은 가볍고 백성은 귀하다’는 군경귀민론(君輕貴民論)이다. 순자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이라고 했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으나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을 가볍게 알고 제멋대로 굴다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권력이 한둘이 아니다. 권력을 쥔 자가 권력을 빙자하여 하면 안 될 짓을 했을 때, 본인 생각으로는 ‘아무도 모르게 했으니 누구도 모르겠거니’ 하겠지만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이미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리고 자신이 안다. 벌써 이렇게 셋이 알거늘 저리도 어리석고 모자라서야 되겠는가. 하늘이 임금을 세우고 또 사람을 들어 벼슬아치로 앉히며 권력을 주는 것은, 백성을 돌아보고 건강하게 길러내며 편안
용인신문 | 12.3 내란이 일어난 지 어느덧 1주년이 되었다. 2025년 12월 3일 윤석열 내란 1주년에 이르기까지 지난 1년은 길고도 길었다.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벌어진 2024년 12월 3일 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자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라고 5200만 국민을 상대로 선언했다. 그로부터 12월 14일 국회에서 (대통령) 윤석열이 탄핵 소추되고 2025년 4월 4일 헌재에서 파면되기까지 국민은 가슴 졸이며 지켜봐야 했다. 윤석열이 파면되고 6월 3일 실시된 대통령 보궐선거에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어 6월 4일 제21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이재명 국민주권 정부는 내란 극복을 국정의 제1과제로 삼고 3대 특검을 실시했고 윤석열 내란 수괴는 현재 1심 재판 중이다. 내란 특검은 윤석열 내란과 함께 외환유치죄도 수사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윤석열은 평양에 무려 18차례나 무인기를 보내 전쟁을 유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내란을 일으킨 것도 모자라 북한을 자극하여 전쟁을 유도하려고 혈안이 되었던 것이다. 백번을 양보한다 해도 대통령이라는 자가 국민을 전쟁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으
용인신문 | “종로 4가에서 만나자.” “종묘 앞에서 만나자.” 같은 장소를 지칭하면서도, 이를 부르는 말 속에는 화자의 무의식적인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종로 4가는 흔히 ‘세운상가’로 통한다. 그 바로 곁에 있는 종묘 안으로 발걸음을 옮겨본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여전히 종묘의 위치조차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고, 그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무엇을 상징하는 공간인지에 대한 인식도 희미하다. 종묘는 유교 예제에 따라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제례 시설이다. 한국인의 전통적 가치관과 유교의 조상 숭배 사상이 독특하게 결합한 한국의 사묘(祠廟) 건축 유형이다. 혼령을 위한 공간답게 건물의 배치와 구성, 재료 하나하나에서 절제와 단아함, 그리고 범접할 수 없는 엄숙함과 영속성을 느낄 수 있다. 조선 왕조는 이곳에서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위해 문무백관과 함께 정기적으로 제사를 올렸다. 종묘는 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신성 불가침의 공간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급박한 피난길에 오르면서도 종묘의 위패를 가장 먼저 챙겼을 정도다. 종묘는 조선시대의 원형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으며, 지금도 ‘종묘제례’라는 의례
용인신문 | “여기가 좋아//떼굴떼굴 뒹굴고 싶어라//뒹굴어/뒹굴어//저 비탈 아래 숯내 이르러/홀짝홀짝 울고 싶어라//뒷산 잔등에 올라” 고은 시인이 최근에 쓴 시 「세상의 시 578」이다. 집 뒷산에 올라 탄천 숯내를 내려다보며 즉흥적으로 터져 나온 듯한 시, 참 천진스럽다. 모든 것이 텅 비어가며 깊어가는 이 가을날 어린애로 돌아가고 있다. 탄천 깨끗한 물로 숯 검댕이 같이 더러워진 몸을 씻으면 혼이 자유스러워진다는 숯내 전설을 떠올리게 하며 기쁨과 슬픔, 어림과 늙음, 이승과 저승 등 우리네 삶을 재단하는 2분법을 단박에 뛰어넘는 시다. 세계 최고 시인으로 대우받다 나락으로 유폐된 시인의 심사도 보일듯하다. 며칠 전 고은 시인을 탄천 앞 식당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스페인에서 세계적인 문학상인 레테오상을 ‘국제적인 시의 모범’이란 이유로 받고 돌아왔고 또 위 시가 실린 신작 시집 『세상의 시』 4, 5권을 잇달아 펴내 후배 문인들이 마련한 축하 자리였다. 그런 모임은 극구 사양하면서도 92년 생애 전 체험에서 진심으로 우러난 말들을 들려줬다. “이제 나, 자연의 인간인 나로 돌아온 것 같아 좋아. 사회에 얽매인 나를 내려놓으니 말이야”라며 털어놓은 한마
용인신문 | “언론의 자유가 사라지는 날, 나머지 자유들도 함께 사라진다.”라는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언론은 사회의 도덕적 심장이다. 지난 33년 동안 용인신문은 ‘언론은 사회의 심장’이라는 철학을 뿌리로 삼아,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전선에서 지역의 진실을 비추는 창(窓)이 되어왔다. 시민의 삶을 기록하고, 도시의 성장과 고민을 함께 걸어온 발자취는 지역사회의 역사 자체였다. 용인의 성장과 변화는 눈부시다. 110만 인구의 거대 도시로 성장하며, 대한민국 특례시 시대를 선도하는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 길목마다 용인신문이 있었다. 대규모 도시개발의 현장을 살피고, 주민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때로는 따뜻한 시선으로 지역의 그늘을 비춰왔다. “기록이 곧 지역의 기억”이라는 언론의 철학을, 용인신문은 가장 성실하게 실천해왔다. 용인신문 기록의 무게만큼, 용인의 오늘은 단단해졌다. 역사를 돌아보면, 조선시대 언론기관인 사헌부와 사간원은 왕과 대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며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해 헌신했다. 권력 앞에서도 바른말을 아끼지 않았던 언관들의 존재야말로, 조선이 오백 년의 세월을 이어올 수 있었던 근간이었다. 오늘의 언론 또한 그 정신을 잊지 말아야 한다. 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