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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은 끝났다… 남은 것은 ‘파랑·빨강 지도’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 전쟁과 평화는 양립할 수 없다. 힘과 정의도 붙어 있을 수 없는 단어다. 그런데도 같이 써놓으면 모호해서 그럴듯하다. 가치의 영역이 아니라 주관적이고 경쟁적인 담론에 포함된다. 객관화시킬 수 없는 단어이다.

 

화합과 안정, 평화와 화해를 원하는 사람들은 항상 전쟁을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들의 출발은 희생에서 비롯된다. 약자의 인내가 필요로 하는 분야가 전쟁과 평화이다. 강자의 양보로 평화가 실현되는 때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평화는 존재할 수 없다.

 

“전쟁은 안개와 같다.”라는 클라우제비츠의 말을 인용해서 “선거는 안개와 같다.” 투표함을 개함하기 전까지 불확실하고 부정확한 정보가 난무한다. 그 추이나 결과를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예측이 가능할 리 없는 선거에 마타도어는 출몰한다.

 

“무솔리니가 기차를 정시에 달리게 했다.” 히틀러가 부러워한 무솔리니의 프로파간다였다. 널리 퍼진 이 말은 ‘정의’를 상징하며 ‘능력’을 증명하는 객관적인 가치로 자리를 잡았다. 사회의 안정을 바라는 자들이 원하는 효율성이었다. 무솔리니가 만든 예측 가능한 효율성에 사회적 약자들이 열광했다. 무질서를 혐오하는 자들에게 무솔리니는 ‘힘과 정의’의 상징이었다. 오래전부터 한국인들은 주어를 ‘우리’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정 공간을 울타리로 두르고 그 안에 모여 살았던 흔적의 유산이다. 방의 벽과 집의 담, 마을의 성은 모두 울타리였다. 울타리와 같은 말이 ‘우리’다. ‘나’는 한 우리 안에 모여있어야 안심했다. 우리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남’이다. ‘남은’ 자들이 ‘남’이 된 것이다. ‘남’의 반대말이 ‘나’가 아니라 ‘우리’인 것이다.

 

22대 총선에서 일부 지역에서 나타난 투표 결과는 ‘남은’ 자들이 되지 않기 위해 모두 ‘우리’로 뭉쳤다. 울타리에 갇혀 있는 사람도 ‘우리’라는 사실에 자랑스러워하는지는 모르겠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철학 테제>에 이렇게 썼다. “억눌린 자들의 전통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교훈은 비상사태가 예외가 아니라 상례라는 점이다. (‥‥)진정한 비상사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비상은 정치 행위에서 필연이다. 비대위는 상시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비상과 정상은 인식 자의 처지가 다를 뿐. 같은 말이다. 문제는 비상과 정상의 개념이 아니라 어떤 비상 상황 인가이다. 비상 상황을 유발한 주체자들이 비대위를 구성하는 희극이라면 비상사태는 비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상황이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지만 민주당은 압도적인 원내 제1당이 됐다. 반면 원외 제1당은 ‘무관심 당’이 차지했다. ‘무효표당’은 떠오르고 있는 원외 정당으로 급 성장하고 있다.

 

무관심이 강력한 당파이며 선호 정당이 없다는 말은 논리의 모순이다. 일부일처제 시대에 ‘우리 마누라’의 단어가 살아있는 것처럼 이 또한 살아남았다. 나를 위해, 나라를 위해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 투표장에 나와서까지 무효표를 던지는 사람들. 이들은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의 표시를 한 것이다.

 

레거시 미디어를 멀리해도 선거 소식은 거부할 수 없다. 걱정과 안도가 끊임없이 충돌한 22대 총선은 끝났다. 이성복의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의 <그날>을 되뇌면서 개표 완료된 선거 결과를 들여다봤다.

 

‘우리’와 ‘남’으로 또렷하게 구분된 지도는 공포다. 공포는 가장 강력한 인간의 행위 동기 중에 가장 오래된 통치 수단이었다. 공포는 겁먹은 이들에게 효과가 있다. ‘우리’와 ‘남’에 대한 공포는 반응을 넘어 현실 세계를 강력하게 지배하는 도구다. 나누어진 파랑 지도와 빨강 지도를 보면서 절망할 기력조차 상실했다.

 

사족 하나,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처방하지 않는다.”

사족 둘, “고통이 마비되어 아프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