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명절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몇 년 전까지는 갈비에 잡채, 각종 전을 준비하느라 하루 전부터 할아버지 댁에 갔다. 요즘엔 전은 시장에서 사고, 한두 가지만 직접 부친다. 제사는 아침에 소박하게 지낸다.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던 할아버지도 몇 년간의 끈질긴 설득 끝에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햅쌀로 지은 밥을 먹고, 일 년간 열심히 자란 과일을 먹는다. 설거지는 손녀 손자가 모여 가위바위보로 정한다. 짧은 시간에 희비가 교차한다. 혼자 사는 친구들 몇몇은 모여서 따듯한 저녁을 차려 먹는다고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풍성한 한 끼 먹고 든든하게 남은 몇 달을 지내보자!
[용인신문] 바느질의 좋은 점은 언제든지 실행취소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망하는 건 없고 대처하면 된다. 조금 비뚤어도 괜찮고 밑에 천과 함께 꿰맸어도 괜찮다. 놀라지 말라고 나도 많이 한 실수라고 이야기한다. 실수하면 포기하고 싶어지는데 일단 괜찮다고 한다. 아, 별거 아니예요!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요. 고칠 수 있는 곳은 고치고 다시 해야 하는 부분은 다시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 가장 서러웠던 기억이 그런 기억이다. 난 아직 모르겠는데, 마구 나가던 진도라거나. 왜 저번에 알려줬는데 못하냐 거나, 네가 몇 살인데 아직도 모르냐는 식의 꾸중을 들을 때면 속상하고 분했다. 그걸 알았으면 내가 왜 여기 앉아있겠냐고. 나이랑 내가 못하는 게 무슨 상관이냐고. 난 절대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곤 했다.
[용인신문] “어머~ 넌 왜 이리 까맣니?” 하며 놀랍다는 반응, 너랑 찍으면 사진이 잘 나오겠다는 말, 선크림을 잘 바르라는 말까지. 나는 오랜 시간 까만 내 몸이 싫었다. 하지만 몇년 전부터 나는 까만 나를 그대로 긍정하게 됐다. 어느 학교의 도보여행 스텝으로 여름 내내 학생들과 여행하며 물과 가깝게 지내면서다. 여름에 까만 사람은 그만큼의 시간이 몸에 담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도 이르렀다. 쉽게 까매지고 골고루 예쁘게 타는 내 몸은 그런 몸일 뿐이다. 조금이지만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게 되어서 편해졌다. 사람들은 마르면 말랐다고, 살이 찌면 살쪘다고. 눈이 작다 크다 다리가 길다 짧다. 남의 몸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존재, 그대로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래서 나도 남의 몸에 대한 언급을 점점 조심하게 된다.
[용인신문] 야! 여기 봐 게가 있어!! 물 빠진 갯벌에서 바닷게를 만났다. 게는 자기 집을 만들고 있었다. 제 몸 하나 들어갈 만한 구멍을 팠다. 집게발로 모래를 샥샥 모아 가지고 나와서 구덩이 밖에 쌓는다. 한참을 관찰했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님은 생명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알면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도시에 살며 생물이라곤 개미와 거미 그리고 강아지밖에 보지 못하는 나는 그만큼 다른 무언가를 사랑할 기회를 잃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노래를 틀고 손을 잡고 걸었다. 발에 감기는 갯벌은 부드럽고 물컹했다. 어디는 차갑고 어디는 따듯했다. 뻘에 생긴 물길이 마치 강 같아서 우리가 거인이 된 것 같았다. 빨간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용인신문] 고비(GOBI)는 몽골어로 ‘풀이 자라지 않는 거친 땅’ ‧ ‘건조하고 황량한 초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달리는 내내 보이는 건 대부분 거친 자갈과 암석.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과 낮은 능선들이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이정표 하나 없는 길을 하루 500km씩 이동했다. 운전사 톨가에게 어찌 그리 길을 잘 찾느냐 물으니 몇 번 다녀보면 지형을 보고 길을 외운다고 한다. 포장도 되어있지 않은 오프로드를 어떻게 외운다는 거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소떼, 말떼, 양과 염소가 심심찮게 보인다. 신기해서 저 동물들에게 주인이 있는지 물었고 가이드 언니 파가마는 주변 게르에서 키우는 동물들이라 대답해준다. 그렇게 풍경 구경하다 하루가 간다.
[용인신문] 하와이의 마우이섬과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에서는 큰 산불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산불은 지구곳곳을 휩쓸고 있다. 5월에 시작된 캐나다의 산불은 3개월이 지난 지금도 진화되지 않고 있다. 6개월만에 진화된 호주산불은 10억마리의 야생동물의 숨을 앗아갔다. 예전에도 산불은 종종 났지만 이렇게 오래도록, 자주, 지속되지는 않았다. 예전보다 산불 진화가 어려워진 이유는 기후위기와 깊은 연관이 있다. 지구 기온이 높아지며 눈과 비가 적게 내렸고, 폭염으로 말라붙은 대지는 산불의 규모를 키우기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과연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폭염과 폭우, 이상기후 속에서 새로운 살길을 찾아야겠지. 친구들과 자주 나누는 대화다. 희생된 수많은 생명들에게 애도를 보내며. 이번 여름 모두들 안전하고 무탈하기를.
[용인신문] 아빠는 자기 자리에 물건을 놓아두라고 자주 말하곤 했다. 난 나의 혼돈의 책상에서 나름대로 생활할줄 알았지만 물건을 찾느라 한참을 뒤지는 날도 많았다. 친구 집에 갔는데 물건이 자기자리에 앉아있는 걸 보았다. 여기에 뭐가 있으면 좋겠네~ 하고 보면 거기에 그 물건이 있었다. 청소를 조금 해볼까? 발에 뭐가 밟히네 하고 빗자루를 찾아보니 딱 있고, 머리를 말려볼까 하고 드라이기를 찾으니 드라이기 걸이에 걸려있고. 청소를 해도 금방 흐트러지는 나의 집을 생각했다. 이사하고 나서 제 자리를 정해준 물건은 거의 없는 것 같았다. 물건에게도 사람에게도 자기자리는 중요하구나
[용인신문] 왜인지 오래되고 낡은 것을 좋아한다. 오래도록 써서 손에 익고, 몸에 익혀서 시간을 함께 한 것들. 누군가와 같이 산 양말, 선물받은 양말, 아빠가 대학생때부터 입던 맨투맨, 좋아하는 신발…. 시간을 함께 겪다보면 어느새 이곳저곳 헤지고 구멍나있곤 한다. 더 오래 쓰고 싶은데 버려야 할 때면 속상했다. 용도는 다 하는데, 어딘가 조금씩 아쉬운 모습들. 버리기엔 아깝고 쓰기엔 민망한, 구멍난 양말같은 것들. 그래서 고쳐쓰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을 사는 것은 그 나름의 기쁨이 있지만, 익숙한 물건들을 아끼고 고쳐 사용하는 기쁨도 못지않다. 시간이 차츰차츰 쌓이고 있는 양말을 찍어 보았다. 빵꾸가 날수록 귀여워지는 양말!
[용인신문] 나는 큰 나무를 보면 설렌다. 훌쩍 뛰어 올라가고 싶기도 하고 곁에 누워 자고 싶기도 하다. 적당하게 큰 나무 말고 누가 봐도 수령이 100년은 넘었을 거 같은 나무. 이리저리 휘어있는 나무. 당산나무 같은 나무들을 보면 맘이 편해진다. 그런 나무 앞에 서 있는 어린 나를 그리고 싶었다.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날에 햇빛이 드는 오후. 깊은 숲에 호기심 넘치는 개구진 아이 하나.
[용인신문] 글을 쓰려고 창을 열면 하얗다. 그림을 그리려고 드로잉북을 펼쳐도 하얗다. 하얀 종이가 주는 막막함과 두려움은 그리지도 쓰지도 못하게 만든다. 글에 숫자를 붙이기 시작하면서 그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의식의 흐름 글쓰기를 숫자로 표현해냈달까. 잘하려고 하다가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래서 이제는 그냥 계속하기로 했다. 나이키의 “Just do it”과 작가 오스틴 클레온의 “Keep going”을 번갈아 외치면서 시작하고, 계속한다. 자꾸 하다보면 늘겠지. 완성된 형태로 세상에 등장하고 싶은 건 나의 욕심이다. 쉽게 하고, 작게 하자. 성취를 쌓아서 조금씩 나아지자고 되뇌인다. < @jjin_travel / @jjin_create >
[용인신문] 나는 공책을 만들어 쓴다. 내가 좋아하는 공책의 모양은 A4 용지를 반으로 접은, A5 크기다. 180도로 펼쳐져서 어떤 바닥에서도 평평하게 필기할 수 있고, 줄이 없는 공책이다. 용도를 정해두지 않고 공책을 쓴다. 어떤 날은 필사 노트로, 어떤 날은 드로잉북으로 변신한다. 용도를 정해두고 나면 그 용도에 부합하는 내용만 써내려가야 만 할 것 같아 잘 사용하지 못한다. 이런 나의 공책 취향은 내 성격과도 비슷하다. 마음이 시시각각 변하고 관심사도 자주 옮겨 다닌다. 장점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거침이 없다는 점이고, 단점은 때로는 거침뿐만 아니라 대책도 없다는 점이다. 거침이 없을 때는 대개 신이 나지만 대책이 없을 때는 진땀이 난다. 그 사이를 자주 오가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