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나라 영공의 부인은 자신의 남성 편력 추문을 불식시키기 위해 성인(聖人)공자와의 면담을 성사시켰다. 공자는 기꺼이 추문의 중심에선 영공의 처 절세미녀를 만나고 돌아오자 제자 자로의 추궁이 꽤 사실 적이다. 공자께서 위나라 영공의 처 만나는 것을<자견남자子見南子> 자로는 기뻐하지 않았다<자로부열子路不說>. 공자는 실신하면서까지 변명한다<부자시지왈夫子矢之曰>. 내가 부정한 짓을 했다면<여소부자予所否者> 하늘이 나를 내칠 것이다<천염지天厭之>. 논어 옹야편 6-28문장에 나오는 이 말은 천하의 스승 공자께서 제자에게 하늘까지 들먹이며 변명하는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다. 이 문장 뒤에 나오는 말이 논어 학이편 3문장 교언영색(巧言令色)이다. 자공은 공자사후 3년이 아닌 6년 동안 시묘를 살면서 논어를 편집하는데 교언영색(巧言令色)이란 말을 위 본문과 의도적으로 뚝 떨어뜨려 편집한다. 이런 편집은 자공이 스승 공자를 얼마나 존경했고, 또한 스승 공자와 영공의 부인과의 만남을 얼마나 가리고 싶어 했는가를 말해주는 단초이기도 하다. 이 기록을 빼고 싶었지만 이 사실을 현장에서 기록 해놓은 제자들이 있었기에 그럴 수도
베트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됐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잘못 읽었다. 아니면, 트럼프 스스로 만든 국내용 출구 전략이다. 정상회담 중 미국에서 벌어진 트럼프의 비서출신 마이클 코언 청문회가 결렬의 주된 원인이란 분석이다. 마이클 코언은 트럼프 대통령 옆에서 12년 동안 온갖 뒤치다꺼리를 다 해준 ‘설겆이 전문가’라고 한다. 그런데 청문회에서 트럼프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것이다. 미 언론들도 트럼프 탄핵 운운하며, 북미정상회담을 실컷 조롱했으니 잘될 리가 만무였던 것이리라. 그런데 트럼프가 기자회견장에서 한말을 둘러싸고 북측이 거짓이라며 반박했고, 또 이를 재반박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양측 모두 회담 재개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렬에 대한 변명이 궁색해 보인다. 리용호 외무상이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모두 회담의 무산 배경을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내심 양측 모두 절실함을 의미한다. 다만 결별에 대한 책임 공방에서 양측 모두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일말의 자존심이라도 세우고자 하는 것일 뿐이다. 리용호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 아니고 일부 해제, 그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7세에 진복창전陳復昌傳을 짓고, 8세에 화석정化石亭 시를 지었으며 10세에 경포대에 올라 경포대부鏡浦臺賦를 지은 율곡. 그는 22세 때 방황의 끝에서 58세의 퇴계를 찾아가 만난 12년 후 34세부터 46세까지 장장 12년에 걸쳐 율곡사과栗谷四科라는 불후의 명저를 짓는다. 34세에 정치하문政治何問, 동호문답東湖問答을 40세에 철학절문哲學切問, 성학집요聖學輯要를 42세에 몽학강효蒙學綱效, 격몽요결擊蒙要訣을, 46세에 역사현감歷史縣監, 경연일기經筵日記를 기록한다. 그중 동호문답東湖問答 논군도論君道편에서 말한다. 동호의 객이 주인에게 “고금에 치란이 없는 때가 없는데 어떻게 하면 다스려지고, 어떻게 해서어지러워지는가?”라고 묻자 주인일 말하길 “다스려 지는 데에 두 가지가 있고, 어지러워지는데도 두 가지가 있다…(중략)…”. 다시 손님이 묻자 “그것이 무엇을 말함인가”, 주인이 대답하길 “임금이 똑똑하여 난놈을 잘 부리면 된다. 또 임금이 다소 못났더라도사람만 잘 쓰면 된다.” 이것이다스리는 두 가지다. 정치란 국민들이 균형 잡힌 삶을 살도록 해주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정치가는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자신이 없다면 그만둬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政治란 글자를 파자해보면 바를정正 아비부父 삼수변氵 태풍이台 마늘모 혹은 휘둘릴사厶 입구口로 구성된다. 이를 풀어보면 ‘정치인은 바른 도리를 가진 아버지처럼 백성들이 물과 태풍에 휘둘려 삶이 곤고해도 먹을 것은 꼭 챙겨줘야 한다’ 쯤 된다. 공자가 위나라로 갈 때 염유가 수레를 몰았는데 공자는 “백성이 많구나”라고 하니 “염유가 백성이 이미 많은데 무엇을 더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그들을 부유하게 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염유가 “이미 부유하게 되었다면 무엇을 더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의 목적은 백성을 부유하게 또 바른 길로 가도록 모범을 보이는 행위다. 논어 계씨季氏편에서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인에 대해 말하길 백성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저들의 삶이 서로 균등하지 않을까를 걱정하라(불환과이환불균不患寡而患不均)고 했다. 대학大學에서 정치인의 자격요건을 에둘러 표현하기를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했다.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국가를 다스리면 천하는 기울어짐이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사의 비극은 수신이나 제가가 덜된 것들이 누군가를 다스리겠다고 나서는데 그 심각성
강태공姜太公 귀곡자鬼谷子 장량張良 사마의司馬懿를 일러 중국 4대 ‘모성謀聖’이라 한다. 그리고 귀곡자鬼谷子 장량張良 사마의司馬懿를 일러 한 시대의 으뜸가는 스승이란 뜻으로 ‘일대종사一代宗師’라 부른다. 강태공姜太公에 대한 후세의 칭호는 일대종사一代宗師를 뛰어넘는 ‘백가종사百家宗師’다. 백가종사인 강태공이 말한다. 부유하지 않으면 인의를 베풀 수 없으며<불부무이위인不富無以爲仁> 베풀지 않으면 백성을 모을 수 없다<불시무이합친不施無以合親. 육도六韜수사守士>. 하루는 무왕이 태공망 여상에게 물었다. 똑똑하다는 이를 들어 썼음에도 나라가 여전히 가난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강태공 왈, 답은 간단합니다. 그 사람이 현자라는 명분만 있지 실제로는 똑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유향劉向설원說苑>. 아. 쾌도난마와 같은 이 한마디는 정곡을 찌르는 정수일침頂首一針이다. 떠벌이 아웃사이더에서 권력을 잡은 민정수석 조국 전 서울대교수를 두고 한말이다. 중국 진秦나라 때 여불위가 일자천금으로 집대성 했다는 논설집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망국의 군주에게는 직언을 할 수 없다<망국군주亡國君主불가이직언不可以直言>는 말이 실려 있다. 지금 여기서 이 말의
문역일이박씨야文亦李朴氏也 문재인대통령도 이명박근혜처럼 될 수도…… 바람을 심은 자 광풍을 거두리라. 기독교 경전인 구약성서 호세아 8장 7절 말씀을 시대적 단말마(斷末魔)로 보여주는 것이 사도바울의 “심은 대로 거두리라<신약성서 갈라디아서6장7절>”는 말일 것이다. 이 말은 치자와 관료를 싸잡아 아우르는 말로 지면관계상 부안설은 다음 지면을 기약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길은 두 개다. 군주가 되어 백성을 이끄는 길<爲己之學>과 신하가 되어 군주를 이끄는 길<爲人之學>이다. 전자인 위기지학은 문재인 대통령이 될 것이고, 후자인 위인지학은 백면서생 출신 조국 민정수석일 것이다. 뭐가 됐던 국민의 눈높이에서 둘의 관심사는 국민의 넉넉한 삶이 되어야 한다. “가난은 임금도 구제 못한다.”는 말로 핑계 삼아서는 안된다. 국민을 잘 먹고 잘살게 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민의 입장에 서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서 국민의 정서를 외면하지 말고, 국민이 모르면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국민이 하소연 하면 마치 나의 피붙이가 말하는 것처럼 여기고……. 제나라 환공이 사냥을 갔는데(석자제환공출유어야昔者齊桓公出遊於野) 폐허가 된 성터를(견
지방의 어느 고을. 민원을 대변한다는 의원님 무리가 연수를 빌미로 외유 중 그중 한 명의 의원님이 가이드 면상을 구타한 사건이 붉어졌다. 본인이야 무슨 말끝에 손을 올린 것이 가이드 얼굴에 슬쩍 스쳐서 생긴 일이라지만 피투성이가 된 상대방의 입장은 다르다. 밝혀진 사실하나 카메라에 찍힌 그의 행동은 국민정서를 넘는 경악 그 자체다. 여기서 더 놀라운 사실은 다른 동료 의원님들 그 누구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보도 내용은 보는 이로 하여금 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것은 의원이냐 아니냐를 떠나 인간으로서 그래서는 안 되는 일이다. 맹자는 사람이 아닌 것을 이렇게 구분한다. 측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무측은지심無惻隱之心) 사람이 아니다(비인야非人也).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무수오지심無羞惡之心) 사람이 아니다(비인야非人也). 사양하는 마음이 없다면(무사양지심無辭讓之心) 사람이 아니다(비인야非人也).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마음이 없다면(무시비지심無是非之心) 사람이 아니다(비인야非人也. 孟子公孫丑上6). 맹자 기준으로 본다면 문제의 의원 또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아니기에 참석한 의원 모두다 의원직 사표 냄이 옳다. 그게 아니고, 그 한
자왈(子曰), 민가사유지(民可使由之) 불가사지지(不可使知之). 논어 태백편에서 공자는 말한다. 백성은 말미암게 할 수는 있으나 알게 할 필요까지는 없다. 이 문장은 실로 많은 해석이 가능하고, 또 그만큼 많은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문장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식음을 전폐해 가면서 만큼의 따질 일도 아니다. 백성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냥 잘사는 것. 그게 전부다. 잘살고 못사는 것에 대한 철학적이거나 사변적 이유를 아는 것은 필요치 않다는 말이다. 논어에서 드물게 보는 도가적 자연주의의 논조 속에서 해석 될 수 있는 유일한 문장이다. 여기서 저 유명한 소이연(所以然)이 나온다. 백성은 당연한 도리(道理)에 따르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이치의 소이연(所以然) ‘까닭’을 알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소이연에 관한 논쟁은 기명언과 퇴계의 사칠논변(四七論辨)으로 압축되는데 하서 김인후(金麟厚)를 만나는데서 시작된다. 기명언(奇明彦) ‘기대승(奇大升)’은 1558년 문과에 응시하기 위하여 서울로 가던 중 하서를 만나 태극설(太極說)을 논하다가 퇴계에 까지 불똥이 튀어 1559년부터 1566년까지 장장 8년에 걸친 논쟁으로 조선 유학사에 획을 긋는다. 그렇
동서고금을 무론(毋論)하고 권력에는 늘 보복이 따른다. 물론 권력을 잡은 쪽에서는 “정치적 보복은 없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당하는 쪽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다. 권력을 이보다 더 명징하게 정곡을 찌른 말이 또 있을까. 권력에도 유통기한은 있다는 말이다. 본래 정치란 국민을 보호하고 잘먹고 잘살게 하며 더 나아가 맘 편하게 해주는 행위이다. 옛날 고리짝 아마도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쯤에 땅을 때리며 노는 늙은이들의 세월 좋은 노랫가락이 있었다. 이 모습을 본 후대 사람이 이를 그대로 적어 전하길 격양가(擊壤歌)라 했다. 해 뜨면 일하고(일출이작日出而作), 해 지면 잠자고(일입이식日入而息), 목마르면 우물파고(착정이음鑿井而飮), 배고프면 밭 갈아 먹으니(경전이식耕田而食) 임금의 힘인들(제력우帝力于) 내게 쓸모가 있으랴(아하유재我何有哉). 내 집에서 우물 파는데 허가 받을 일도 없고, 농사를 지은들 세금 낼 것도 없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이른바 함포고복(含哺鼓腹)의 삶이다. 길바닥에 드러누워 한 손으로는 배를 두드리며 다른 한 손으로는 땅바닥을 토닥이며 흥얼거리는 일이다
애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묻자 공자는 답한다.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정치는 ‘문무지정(文武之政)’기록에 모두 있습니다. 적임자가 있어 그 사람을 들어 정치하면 되지만, 마땅한 인물이 없으면 그런 정치는 못하게 됩니다. 중용 20장에 나오는 이 말을 훗날 순자는 자신의 책 순자군도(君道)편에서 이를 주석하기를 나라를 어지럽히는 군주는 있어도(유난군有亂君) 본래부터 어지러운 나라는 없나니(무난국無亂國)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은 군주의 몫이지(유치인有治人)나라를 잘 다스리는 특별한 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무치법無治法). 다만(지只) 그 인재를 얻으면 사는 거고(득기인즉존得其人則存) 그 인재를 못 얻으면 망하는 거다(실기인즉망失其人則亡). 춘추전국시대 이전에는 종법제(從法制)다. 누구든 윗자리에 연결된 끄나풀만 있으면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가 되면서 출세할 수 있는 오직 하나 뿐인 길이 백 갈래 천 갈래로 나눠진 그야말로 실력만 있으면 재상도 할 수 있고 심지어 군주도 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부지언不知言 무이지인야無以知人也)는 지인知人이다. 군주는 사람을
반백의 노인들이 길에서 짐을 지거나 이고 다니지 아니하며, 비단옷을 입으며, 고기를 먹으며, 백성들이 굶주리거나 추위에 떨지 않게 하고서도 왕 노릇을 제대로 못한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맹자가 위나라 군주 양혜왕에게 한 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존엄할 권리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인 최저 임금 만원의 약속이 ‘죄송’이란 말과 함께 8350원으로 그치는 순간 방정맞게도 최저생계 보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의식주(衣食住)는 사람의 품격을 결정짓는 가장 기본 단위다. 그중에 ‘밥’보다 더 절실하고 이보다 더 간절한 게 또 있을까. 세상에 춥고 배고픈 설움보다 더한 게 있을까마는 백성이 못 먹고 배고픈 것은 모두 임금 책임이라는 게 맹자의 생각이다. 맹자는 또 말한다. 옛날, 어진 임금은 백성을 위해 생업을 마련할 때(시고명군제민지산是故明君制民之産) 반드시 위로는 부모 섬김에 풍족히 하고(필사앙족이사부모必使仰足以事父母) 아래로는 처자를 먹여 살리기에 풍족하게 한다(부족이축처자俯足以畜妻子). 그렇기 때문에 백성들은 이런 지도자를 따르는 게 수월하다(고민지종지야경故民之從之也輕.孟子梁惠王章句上1-7)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 ‘백성’들
소학서제(小學書題)에는 전엔 좋은 글이었지만, 요즘 시각으로 보면 다소 껄끄러운 글이 많다. 그중 하나가 이렇다. 옛날 소학교에서(고자소학古者小學) 사람을 가르치되(교인이敎人以) 물 뿌리고 쓸며(쇄소灑掃), 응하고 답하며(응대應對), 나아가고 물러나는(진퇴進退) 예절(지절之節)과 어버이를 사랑하고(애친愛親), 어른을 공경하며(경장敬長), 스승을 높이고(융사隆師), 벗을 친히 하는(친우親友) 도로써 하였으니(지도之道) 이 모두는 대학에서 가르치는(개소이위皆所以爲) 몸을 닦고(수신修身),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제가齊家), 나라를 다스리고(치국治國), 천하를 평안히 하는(평천하平天下)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지본之本). 태어 난지 8세가 되면 배우는 글이 소학이다. 소학을 일러 어린이 공부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어려서 반드시 몸으로 습관을 들여야 할 공부가 소학인 셈이다. 소학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더 보탤 것도, 더 뺄 것도 없는 꼭 필요한 글만 모아 기록한 책이다. 습관이 좋은 버릇으로 몸에 익혀 가고자함에 대한 부모의 바램이 오롯이 담겨있는 글인 셈이다. 그래서 이를 흔히 소학(小學)의 삼절 사도라 부르는데 삼절(三節)은 쇄소(灑掃), 응대(應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