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신하인 탕이 천자 걸을 추방했고, 신하인 무왕이 천자 주를 토벌했다고 하던데 그런 일이 있습니까?”라며 제나라 선왕이 물으니 맹자가 “옛 문헌에 그렇게 쓰여는 있지요.” 라고 답한다. 그러자 선왕이 의아해 하며 이렇게 말한다.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여기서 맹자는 군주필부론을 펴는데 인을 해치는 사람을 적賊이라 하고, 의를 해치는 사람을 잔殘이라 하는데 잔적한 자를 일개 필부라 말하지요. 일개 필부인 주를 주살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임금을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지요.” 양혜왕장구하8문장의 이 기록은 군주라도 군주 노릇 제대로 못하면 필부로 죽어갈 수 있다는 그 옛날 호랑이 담배 물던 시대에도 그 정도는 했다는 말인 셈이다. 불과 몇 해 전 우리는 국민의 힘으로 현직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그 이면에는 국민을 위해 써달라고 부여한 권리를 올바로 사용하지 못한 결과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인 것이다. 임금과 신하 위 아래가 각각 자기의 직분을 다하는 것이 올바른 정치의 출발점이라고 맹자는 명토박는다. 어떤 정치인이 있었다. 맹자가 “지역구를 돌봐야하는데 지역구는 버려둔 채 중앙 정치판에 가서
[용인신문]촛불 광장 정치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집권 반환점을 돈 지금의 시점에서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서울대학교 교수이던 조국이라는 인물을 등용하면서부터이다. 훤칠한 키의 서울대 법대 출신에, 서울대 법학교수의 신분인 그는 기성세대에 대한 약자의 편에서 그야말로 약자가 듣고 싶어 하는 대목만 때로는 칼럼으로, 때로는 강연장에서의 현란한 수식어로 아픈 청춘의 상처들을 시원하게 도려내주었다. 물론 그때 했던 그의 말과 행동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비수가 되어 자신의 인생에 발목을 잡는 단초를 제공하게 되는 조적조, 즉 “조국의 적은 조국이다.”라는 신조어까지 낳게 된다. 어쨌거나 그는 지식인이 갖기 쉽지 않은 행보로 인해 수감까지 되는데 속칭 사노맹 사건이 그것이다. 그야말로 저쪽 반대편에서 보면 억 소리 하고도 남을, 온몸으로 실천해가는 그의 삶은 그가 주는 중량감이 결코 녹녹치 않았음을 반증해준다. 그런 그에게도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으니 전하는 말에 따르면 학내에서 영문과에 재학 중인 정경심 교수를 만나고 부터였고, 여자 쪽에서 더 적극적이었다고 하니 열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있으랴. 조국의 첫사랑은 그렇게 결실을 맺는다. 남자의 삶에서 첫사랑
[용인신문]계씨 집안의 7대 영주였던 계환자의 아들 계강자는 정치 입문 10년이 흐른 어느 날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아버지의 정치 동지인 60세에 이른 공자에게 정치를 물었다. 공자는 “정치란 바름이다<政者 正也>. 네가 바름正으로 솔선한다면<자솔이정子帥以正. 솔帥은 ‘장수 수’로 읽지만 때론 ‘본보기 솔’로 읽는다.>누가 감히 바르게 행하지 않으랴<숙감부정孰敢不正. 논어 안연편顔淵篇17>”고 말했다. 계강자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공자는 사족을 단다. “네가 바르면 백성들은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행하고, 네가 바르지 않으면 백성들은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자왈子曰 기신정其身正 불령이행不令而行 기신부정其身不正 수령부종雖令不從논어子路6>. 그러면서 천하에 위衛나라 영공靈公처럼 쓰레기 같은 자가 또 있으랴”라며 분개하니<논어 헌문편> 계강자가 대꾸하기를 “그럼에도 위 영공은 임금 자리는 잘도 유지하지 않습니까?”하니 공자가 말한다. “중숙어는 외교를 잘해 무역이 흥하고, 축타는 종묘를 제대로 이끌어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고, 왕손가는 군대를 잘 다스려 국가가 평안한데 임금 자리를 누
[용인신문]예수님이 목수였다고 번역된 헬라어 원문 테크톤(tekton)은 실제로는 돌을 다루는 석수에 가까운 단어다. 이스라엘 산에는 나무가 없다. 당시 건축물도 대부분 돌로 된 것을 미루어볼 때 예수의 공생 이전 직업은 나무를 다루기는 하지만 나무만 다루는 전문적인 목수가 아니라 나무와 돌을 모두 다루는 석공이었다는 말이 더 설득력을 갖는다. 추측하건데 돌을 다루는 예수의 삶은 꽤나 힘겨웠으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마태복음 11장 28절의 말씀은 그래서 더욱더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동감과 공감을 이끌어 냈는지도 모른다. 무거운 삶에 지친 배고프고 가난한 저들은 그런 예수의 말에 마음을 열고 따르기에 이른다. 어떤 이는 이런 예수를 메시아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 여기에 위기를 느낀 자들이 있었으니 하나님을 믿는 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를 밤중에 끌고가 심문을 한다. 주범은 전직 대제사장 안나스와 그의 사위 현 대제사장이며, 산헤드린 공회의장 가야바이다. 산헤드린 공회 법규에는 해가 뜨기 전에는 공회를 소집할 수도 없으며, 어떤 종교적인 죄인도 밤중에 심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밤
[용인신문]인정하기 싫겠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늘 알 수 없는 슬픔이 존재한다. 오죽하면 가난한 사람은 여름도 춥다고들 말하지 않는가. 누구에게나 삶이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한 사람이 타인의 삶을 독점할 수 없는 것이다. 먼 길 가는 나그네가 길바닥에 발자국을 남기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는 길이 험해서가 아니라 힘겹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삶이 흘러가는 대로 몸만 맡겨두면 되겠지만 저들에게 흘러가는 그것이 내게도 있었다면 우린 절대로 이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묻는다. 엄마는 왜 그렇게 사냐고. 엄마가 답한다.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이렇게 사는 거라고. 대한민국에는 두 개의 숟가락이 존재한다. 금수저와 흙수저가 그것이다. 누구는 부모 잘 만나 그냥 살기만 하면 되지만 누구는 살다 못해 견디고 버텨 봐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금수저들이 서로 잘났다고 머리 터지게 싸우는 중에도 흙수저들은 먹고사느라 슬퍼할 틈도 없다. “군자도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까?”하고 자공이 묻자, 공자가 “당연히 있지. 다른 사람의 나쁜 점을 말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아래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헐뜯는 사람을 미워하며, 용맹
[용인신문]조국 발 문재인 정권 퇴진을 외치며 제1야당의 당수 황교안 대표가 삭발이란 이름으로 반 삭발을 했다. 본래 삭발은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는 인생의 바닥에서 몸부림치는 사람들에게서나 가능한 마지막 저항이다. 그 저항 끝에는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만큼 절박했기에 거기에는 국민적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거다. 그런데 무소속 이언주 의원으로 시작된 박인숙 의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로 이어지는 릴레이식 삭발이 주는 국민적 동의어는 쇼!쇼!쇼!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안이 절박한 투쟁일수록 거기에 걸 맞는 선행 조건이 요구된다. 예를 든다면 존비속 친가 외가 양쪽 모두 3대에 걸쳐 모은 전 재산을 문재인 정권 퇴진 운동에 내 놓는다는 전제하에 삭발을 감행 했다면 국민적 감동은 ‘아. 저건 진짜구나’ 에 방점이 찍힐 수 있다. 그런데 내 돈은 아까우니까 단돈 100원도 안 내놓으면서 돈 한 푼 손해나지 않는 삭발을 한다는 것은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더군다나 맨살이 훤히 드러나는 완전 삭발도 아닌 그냥 삭발 흉내만 내는 정치적 의도가 물씬 풍기는 반 삭발에 공감할 국민이 과연 몇이나 있으랴. 국민은 당
[용인신문]춘추시대 진(晉)나라 영공(靈公)은 7세 나이에 제위에 올랐으나 실권은 조(趙)씨 집안에 있었다. 20세가 되었음에도 조 씨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방탕이 고작이다. 자신을 권좌에 앉혀준 1등 공신 조돈은 상국의 지위에 있으면서 간언을 넘어 통제 하려고만 했다. 분노한 영공은 조돈을 죽이고자하나 번번이 실패한다. 영공의 끊임없는 살해 음모에 위기를 느낀 조돈은 마침내 국경까지 도망하는데 성공한다. 국경만 넘으면 더 이상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으리라 하고 넘으려는 순간 병권을 쥐고 있던 사촌 조카인 종제(從弟) 조천(趙穿)의 역모로 영공을 복숭아밭에서 살해 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국경을 넘을 이유가 없어진 조돈은 궁궐로 돌아와 상국으로서 업무를 보는데 태사(太史) 동호(董狐)가 국가 기록 문서에 이렇게 필주(筆誅)<붓으로써 벌을 내림>한다. 조돈(趙盾) 도원(桃園)에서 주군 진영공 이고(夷皐)를 시해하다. 조돈이 기겁하며 삭필을 요구하자 동호 왈, “대감께서 직접 영공을 시해하지는 않았지만 대감은 상국의 지위에 있었고, 국경 안에서 있었으며 영공이 살해 됐다는 소식을 듣고 궁에 와서는 범인도 처벌하지 않
[용인신문]국민이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 한데는 국가경제 부흥의 수혜자로 국민에게 있을 일정량 마음의 빚이 어느 정도 작용했으리라. 이러한 국민적 정서는 박근혜를 대통령에 오를 수 있도록 한 표를 줌으로써 대한민국 국민은 그에 대한 마음의 빚은 청산된 거다. 그 이 후에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선 예쁨도 제게서 나고 미움도 제 할 탓이다. 문제는 국민이 부여해준 권리와 의무를 성실히 임하지 못했고, 과정에서 국민은 촛불을 들었으며 결과는 국민으로부터의 외면이 탄핵이라는 경천동지할 사태로 이어졌다. 지금은 법정에서 검찰의 꾸지람과 재판장의 판결문을 들어야 하는 옹색한 처지가 됐다. 그 중심에 촛불 최대의 수혜자 문재인 현 대통령이 있다. 작금의 문재인 대통령은 그야말로 초나라의 노래로 가득 찬 사면초가다. 그중 하나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에 대한 도덕적 갈등의 냄새다. 거짓말로 얻은 진심은 언젠가는 진실 앞에 드러나게 되어있다. 조국이 법무부장관 후보자로 내정되자 그의 첫 일성은 서해맹산(誓海盟山)이다. 이 말은 듣기에 따라서 무척이나 날선 말이다. 전쟁을 앞둔 장수에게서는 사기진작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말이지만 법무부장관으로
[용인신문]공도자가 인간에 대하여 스승 맹자에게 묻는다. 사람은 다 똑같은데 누구는 대인이 되고, 누구는 소인이 되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 (공도자문왈公都子問曰/ 균시인야鈞是人也/혹위대인或爲大人/ 혹위소인或爲小人/하야何也) 맹자의 답은 간단하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선한 본성을 가지고,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그 사람은 소인이다. 쉽게 말해서 예가 아닌 예와 의가 아닌 의는 대인은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이 말에 대하여 직하궁의 철인 순자는 이렇게 주를 단다. 소인은 얻지 못했을 때는 얻지 못할까를 걱정하고, 이미 얻고 나서는 그것을 잃을 까봐 걱정한다. 이 말의 원문은 논어 양화(陽貨)편 공자의 말에서 시작된다. 비루한 사람과 함께 임금을 섬기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비부가여사군야여재鄙夫可與事君也與哉). 벼슬을 얻지 못했을 때는(기미득지야其未得之也) 얻으려고 걱정하고(환득지患得之), 이미 얻었으면(기득지旣得之)잃을까 걱정한다(환실지患失之). 벼슬을 잃을 걱정에 골몰(苟)하게 되면(구환실지苟患失之)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못할 짓도 없게 된다(무소부지의無所不至矣). 여기서 나온 말은 가진 자들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못할 짓도 없고, 없는 자
[용인신문]무오사화 때 김종직의 문도(門徒)라는 이유로 44세 나이에 곤장을 맞는 장형 80대에 처해진 뒤 평안도 희천(熙川)땅에 유배(실록연산4년 1498년 7월19일)되었다가 갑자사화로 유배지에서 참수당한 후 죽은 몸, 즉 시체인 상태로 순천의 저자거리인 철물시(鐵物市)로 이거(移居)된 후 다시 사지가 찢겨 효수된 인물이 한훤당(寒暄堂) 김굉필이다<실록연산10년 1504년 10월 7일>. (김굉필은 아호가 없으며 한원당은 그가 공부하던 처가 옆에 지은 글방의 당호다.) 그야말로 멸문지화 정도가 아니라 집안이 멸절된 것이다. 그런데 106년 후 멸문의 극형을 당하고도 스승 김종직도 성취하지 못한 반전을 했는데 1610년 광해2년 9월 4일에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등과 함께 이조오현(五賢)으로 수현 되면서 동방18현으로 동배향 제3위문경공(文敬公)으로 문묘에 종사된 것이다. 세조8년 1462년 무과로 등과한 무인 김유는 쌍둥이 김굉필 형제를 포함 13명의 자녀를 뒀으나 모두 어려서 단명(?)하고 김굉필만 독자로 자란 탓에 천지분간 못하는 안하무인격이다. 그를 잡아준 인물이 21세 때 만난 스승 김종직이다
[용인신문]중국 남북조시대 송나라 유의경이 쓴 세설신어(世說新語)에는 61개 항목에 달하는 조롱과 조소를 통해 세상을 풍자해 놓은 배조(排調)편에 맹인할마(盲人瞎馬)의 고사가 있다. 하루는 죽림칠현을 흠모한다는 세명의 녹림처사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게 뭘까”라며 저들끼리 되도 안 되는 말을 해대며 박장대소하고 있는 것이다. 환현군(桓玄君)이 “창끝으로 쌀을 일어 칼끝으로 불을 때는 것”이라며 낄낄거리니, 은중감(殷仲堪)이 말을 되받으며 “백세가 된 노인이 고목나무 가지에 오르는 것이야 말로 더 위험하다”한다. 고개지(顧愷之)가 손사래를 치면서 “다 틀렸어. 우물 난간 두레박 위에 갓난아기가 누워있는 것보다 더 위험하랴” 순간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다물고 있으니 은종감의 시종이 끼어들면서 한다는 말이 “고수가(장님) 한밤중에애꾸눈말을타고깊은못가를지나가는 것이 더 위험합니다.”라고. 맹인할마(盲人瞎馬)가 주는 교훈은 하나다. 능력이 안 되는 자가 높은 자리 꿰차고 앉는 그것이 위험하다는 말이다. 일찍이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정유길은 근사록을 진강하면서 말한다. 학술이 있으면서도 물러간 사람이란 이황(李滉)을 가리키고<有學術而退去者 指李滉>,
[용인신문] 정대재는 덕선(德先), 욱선(勖先), 각선(覺先), 혁선(赫先) 등 네 아들을 두었다. 그 셋째 아들이 소릉야로의 두보를 존경하여 호를 두릉(杜陵)으로 했다는 정각선(鄭覺先)이다. 그는 42세에 등과한 것으로 보아 그리 현달한 인물은 아닌듯하다. 그는 66세 나주목사(羅州牧使)를 끝으로 고향인 홍성(洪城) 오서산 자락에 초막을 짓고 두릉만필(杜陵漫筆) 제하의 필기잡록을 쓰면서 생을 마감한 인물인데 그에게 가끔 찾아오는 오서산(烏棲山) 승려들 중에 설오(雪悟)가 있었다. 하루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슬며시 묻는다. 스님께서는 집안 걱정이나 자식 걱정 따위는 없겠구려? 설오 답하길, 저는 올해 일흔 셋입니다. 눈은 어둡고 귀는 먹었고, 몸뚱이는 토목형상의 뼈다귀뿐이니 내 몸이지만 이미 내 것이 아닌 지경입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대감께서는 전생의 덕을 받은 탓에 금세에 복과 녹을 누리고 계십니다. 정각선필기잡록 두릉만필<杜陵漫筆 卷2>두릉이 제일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30년 가까이 나라의 녹을 먹으면서 혹여라도 백성들에게 패악을 저지르지나 않았나를 근심 했다한다. 지금 서울 장안은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청문회로 뚫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