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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

책장 펼치면 친근한 요괴들의 천국

강벼리 시인의 첫 동시집 ‘요괴 전시회’

 

 

좀비·구미호·늑대 인간·드라큘라의 대변신
상상과 현실 경계를 넘나들며 요술 같은 동시

 

용인신문 | 지난 2020년 계간 ‘어린이와 문학’에서 동시를 추천 받아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강벼리 시인의 첫 동시집 ‘요괴 전시회’(상상 간)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강 시인은 ‘요괴 전시회’에서 좀비, 구미호, 늑대 인간, 드라큘라까지 온갖 요괴들을 무해하면서도 친근한 존재로 변신시키고 있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일상을 새롭게 만들어 주는 요술 같은 동시집이다.

 

이렇게 다양한 요괴들이 등장하는 동시집이 또 있을까. ‘요괴 전시회’에는 말 그대로 온갖 요괴들이 와글와글 숨어 산다. 그런데 어딘가 소탈하고 허술하다. 구미호는 구슬치기를 좋아하고, 드라큘라는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잠만 잔다. 사람을 해치고 위협할 것 같았던 요괴들이 순진무구한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그려져 있다.

 

요괴들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환상적인 공간이 바로 이 동시집의 고유한 매력이다. 시인이 마련한 공간에서 아이들은 친구를 지렁이로 변신시킬 수도 있고, 피노키오와 성냥팔이 소녀를 만나며 모험을 떠날 수도 있다.

 

낯설고 기이한 요괴들과 함께하는 일상적 장면은 아이들이 자유로운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시인이 두루마리 휴지를 ‘바퀴 달린 손님’으로 변신시킨 것처럼 아이들도 저마다 일상의 사물들을 요괴로 변신시키며 자신만의 ‘요괴 전시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구름이 말을 걸어/ 땅에 내려가고 싶다고/ 말을 걸어/ 뛰어놀고 싶다고/ 자꾸 말을 걸어// 돌멩이가 말을 걸어/ 데굴데굴 굴러가고 싶다고/ 말을 걸어/ 두 발로 걷고 싶다고/ 자꾸 말을 걸어// 바람이 말을 걸어/ 옷깃에 떨어진 나뭇잎한테/ 말을 걸어/ 살랑살랑 떠다니고 싶다고/ 슬며시 말을 걸어// 나도 말을 걸어/ 하늘에 올라가고 싶다고/ 말을 걸어/ 무지개 구름 타고 싶다고/ 혼자 말을 걸어”(‘말을 걸어’ 전문)

 

구름과 돌멩이와 바람이 말을 걸어오는 마치 마법 같은 동시. 강 시인은 동그란 컵이 되고, 외눈박이 거인의 눈이 되고, 수염 난 돌맹이가 되어 마법 가루를 사정없이 뿌리고 있다.

 

이재복 아동문학평론가는 “낯설고 기이한 것들을 상징하는 요괴들이 고정관념을 허물어뜨린 새로 열린 공간에 새로운 상상력을 가진 아이들이 숨어들어 새로운 언어의 씨를 뿌리고 놀이 공간과 쉼터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강 시인의 동시집에는 친구의 놀림이나 자신의 실수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나가거나 일상의 난제를 극복하는 동시들이 많다. 시인이 만들어낸 요괴들이 아이들을 도우며 상상과 현실을 넘나들지만 마지막에 다시 현실에 뿌리를 내리면서 아이들의 일상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