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밥이 끓는 동안ㅣ백무산

밥이 끓는 동안

                                        백무산

 

밥이 끓는다

배부르지 않다 맛 볼 수도 없다

뚜껑을 열어볼 수도 없다

 

현자들은 현재만을 살라고 충고하지만

현재를 살아볼 도리가 없다

지금은 끓고 있을 뿐이다

 

끓고 있는 지금 내가 먹는 것은

언제나 과거와 미래의 허공이다

허공만이 실재라는 듯이

 

현재는 허기다 주린 배로 사냥에 나선

피에 젖은 발톱이다

둥지로 돌아가지 못한 부러진 날개다

 

지금은 먹을 수 없다 죽을 지경이다

현재는 끓고 있는 창세기다

 

백무산은 1955년 영천에서 태어나 1984년 『민중시』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를 비롯하여 여러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그는 대표적인 노동자 민중시인이었고 리얼리즘의 미학을 추구해 왔다.

이번 시집에서 그는 시간에 대한 사유가 전경화되어 나타난다. 시간에 대한 사유를 통해 그는 시간 혁명을 위한 ’혁명의 시간‘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가 때로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은 혁명의 시간을 위해서다.

「밥이 끓는 동안」에서도 시간의 혁명은 시도 되고 있다. 현자들은 현재만을 살라고 충고하지만 그는 현재를 살아볼 도리가 없다고 고백한다. 현재는 끓고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가 먹은 것은 언제나 과거와 미래의 허공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현재는 허기다. 언제나 궁핍해서 주린 배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재다. 그러므로 현재는 먹이 사냥에 나선 피에 젖은 발톱이다. 그의 현재는 둥지로 돌아가지 못하는 부러진 날개고 끓고 있는 창세기인 것이다. 창비 간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