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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노인도 마음의 문 열어야...효의 진화 필요"

효(孝)문화캠페인 신삼감행실도-10 조길생 용인문화원장


조길생 인문화원장



노인들 생각이 젊어져야 해요. 젊은이들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그게 느껴져요.”


조길생 용인문화원장은 전통적 효 개념이 점점 희미해져가는 오늘날, 노인들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녀들에게 무조건 효만 강요할 게 아니라 자녀들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전처럼 할아버지, 할머니, 손자, 손녀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효를 계승하는 그런 사회가 아니잖아요. 핵가족이다, 맞벌이다 해서 가족 형태가 변화됨에 따라 자동적으로 파생되는 현상이니 부모 세대가 적응해야 한다고 봐요.”


조 원장은 효가 사라지는 현상은 심각하지만, 그렇다고 효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효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심된 마음이어야지, 마음에도 없는 억지 효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제는 발전된 효가 필요해요.”


인성문제, 이기주의 문제 등 사회문제가 심각한 오늘날 효마저 무너져버리면 안 된다는 그는 효의 맥을 잇기 위해서라도 맹목적 효 개념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효는 상호적이어야 합니다. 내가 자식에게 효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랫사람에게 베푸는 것도 효에 상응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잘못하면서 바라기만 하면 안 되죠.”


그는 고령사회에 접어든 오늘날, 노인 입장에서 각성할 것이 많다고 했다.


대접받고 존경받아야만 한다는 생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해요. 뭐든 요구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나이 먹은 사람도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합니다. 또 돈을 벌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일거리가 있으면 일하고, 사회에 봉사할 수 있으면 봉사를 해서 노인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는 게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자신이 처한 여건 속에서 조금이라도 그런 쪽으로 가야된다고 생각합니다.”


한때 건강보험공단용인지사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조 원장은 노인 기준도 70살로 올려야 할 때라고 말한다.


생활고를 겪는 사람은 선별해서 지원하더라도 연령을 탄력적으로 운영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움직여야 사회가 건전하게 유지됩니다. 절충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정치인들이 해법을 찾아야겠지요.”


조길생 원장 개인적으로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평생토록 극진한 효를 실천했다.


어머니가 파킨슨병을 10년간 앓다가 돌아가셨어요. 형제들이 요양원에 모셔야하지 않겠냐고 하는 것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어요. 내 생각에는 어머니랑 어렵게 살면서 농사짓고 고생하다가 이제 살만해졌는데 어머니를 그런 곳에 모신다고 하면 옛날 고생하던 생각이 나서 이건 안 된다고 했어요. 없는 살림을 일으키기 위해 젊어 고생 고생하시다가 밥 먹게 됐는데 그곳 아니고 다른 곳에서 돌아가시는 것이 용납이 안됐어요. 만약 집에서 아무도 안 모신다고 하면 내가 땅이라도 팔아 사람을 고용해서라도 어머니를 집에서 모실 것이라고 했어요. 어머니가 일궈놓은 집안이니 땅을 팔아서라도 모시겠다고 한 것이죠. 그런데 안식구가 자기가 모시겠다고 하잖아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에 손잡고 진짜 고맙다고 했어요. 눈물 날 정도로 솔직한 심정이었어요. 지금도 그 마음 변함없어요.”


그는 이런 모습이 어쩌면 10, 20년 뒤의 자신의 모습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결국, 내 스스로 그런 곳으로 가야겠다고 말할 것이에요. 그게 현실이에요. 자식한테 의존해서도 안 되고, 내 노후를 내 스스로 책임지는 거죠. 역설적으로 이야기하면 내 자식들도 스스로 책임지는 게 현실이에요. 사회가 그렇게 바뀌었어요.”


조길생 원장은 능원리가 고향이다. 6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 생전에 땅을 사서 2층집도 짓고 슈퍼도 했다.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 진짜 고생 많이 하셨다. 군 제대 후 다른 곳에 나가고 싶어도 어머니가 불쌍해서 못나갔다.


명절 때 뭐가 제일 부러웠냐하면 넥타이 매고 오는 친구들이 부러웠어요. 그 다음엔 작은 차라도 몰고 오는 게 부러웠어요. 그게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나갈 기회가 없던 게 아니었지만, 고생하시는 걸 내 눈으로 보고서 어떻게 나가요. 결국 4H활동, 농촌활동하면서 집에서 농사짓고 고향을 지켰어요. 지나고 보니 이게 더 보람 있는 생활이었다고 생각이 들어요. 나간 것보다 어찌 보면 더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농촌 지도자의 길을 걸었던 조길생 원장은 어머니 추억이 가득 담긴 땅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 없이 결혼 후 늘린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누군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배고픔이라고 그러더군요. 저는 굶어도 봤어요. 저녁에는 죽을 쒀먹고, 낮에는 고구마를 쪄서 먹고 먹을 게 없었으니까요. 겨울에 고구마를 너 댓 가마 캐놓으면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어요. 김장이 반양식이라고 우리 나이 때는 다 겪은 일이이요. 지금 애들은 모르죠. 고구마를 배추김치에 싸서 먹으면 생목이 잘 안 올라 허기를 달래는 양식이었죠. 어머니는 심성이 고우셨어요. 동네 분들에게 좋은 소리를 듣고 사셨죠. 어머니는 동네에서 농사지은 것을 모란장에 내다파셨는데, 요즘 가끔 용인장에서 할머니들이 채소를 파는 모습을 보면 문득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나요.”


젊은 시절 이장, 새마을 지도자, 의용소방대장, 학교체육진흥회장 등 수많은 직책을 맡았다. 어머니가 그런 아들을 자랑으로 아셨고 무척 좋아하셨다. 동네 사람들은 매사 반듯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조 원장을 좋아했다. 바깥일을 많이 맡았어도 농사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조 원장은 생활신조가 있었다. 만일 오늘 회의가 있으면 그 전날 밤이면 그날 할 일을 미리 다 했다. 요즘도 소일로 밭농사를 짓는데 문화원에 출근하기 전 새벽에 일어나 농사일을 다 하고서 출근한다.


어려운 시대를 살면서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만큼 이뤘으니 이제 마음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내 능력 안에서 사회에 환원하면서 살고 싶어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어도 제사 때랑 벌초 때랑 형제들이 다 모이는 게 대견스럽다. 동생들이 저녁에 와서 자고 그 다음날 간다.


요즘은 전날 와서 자는 사람이 흔하지 않잖아요. 동생들과 술 한 잔 하고, 제수씨랑 이야기도 나누고 조카들도 보는 게 좋은 일인데, 이런 문화가 우리사회에서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겠어요. 안식구가 잘해요. 오면 음식과 농사지은 것을 싸서 보내요. 조금 받아도 모두들 좋아해요. 부모님 돌아가시면 멀어지는데 우린 잘해요. 제사를 내 기준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만 모셔요. 가족 묘지를 썼어요. 상돌을 크게 해서 앞으로는 명절 때 묘 앞에서 간단히 합동 제사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해요. 요즘 용인도 할아버지 할머니 중 먼저 돌아가신 분에 맞춰서 한번만 제사를 지내는 식으로 변해가고 있어요. 횟수를 줄이는 게 중요해요.”


조 원장 가족은 여전히 잘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변화를 비판적으로만 볼 수 없다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렇게 가는 게 옳다고 봐요. 조상들은 자손이 잘되기를 바랄 텐데 갈등이 있는 것은 좋지 않잖아요. 기일을 잊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가정교육차원에서 자녀들을 잘못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잊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집에서 자신이 제일 좋은 것을 먹고, 입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가족 관계를 알려주고, 그 가운데서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알게 해주는 교육이 바람직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효와 예절을 익힌다고 본다.


지면을 통한 캠페인도 좋지만 연령과 성별을 골고루 해서 젊은 애들이 효를 어찌 생각하는 지 들어보는 토론회 자리를 열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 저명인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봐요. 농민, 자영업자, 상인 골고루 해서 효 의견을 듣다보면 이 사회가 나갈 효의 방향을 잡을 듯싶어요. 말을 듣는 순간 느낄 수도 있고, 즉석에서 수정도 해주고요.”<용인신문 - 박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