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白夜)
기형도
눈이 그친다.
인천(仁川)집 흐린 유리창에 불이 꺼지고
낮은 지붕들 사이에 끼인
하늘은 딱딱한 널빤지처럼 떠 있다.
가늠할 수 없는 넓이로 바람은
손쉽게 더러운 담벼락을 포장하고
싸락눈들은 비명을 지르며 튀어오른다.
흠집투성이 흑백의 자막(字幕) 속을
한 사내가 천천히 걷고 있다.
무슨 농구(農具)처럼 굽은 손가락들, 어디선가 빠뜨려버린
몇 병의 취기를 기억해내며 사내는
문 닫힌 상회(商會) 앞에서 마지막 담배와 헤어진다.
빈 골목은 펼쳐진 담요처럼 쓸쓸한데
싸락눈 낮은 촉광 위로 길게 흔들리는
기침 소리 몇. 검게 얼어붙은 간판 밑을 지나
휘적휘적 사내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밤, 빛과 어둠을 분간할 수 없는
꽝꽝 빛나는, 이 무서운 백야(白夜)
밟을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눈길을 만들며
군용(軍用) 파카 속에서 칭얼거리는 어린 아들을 업은 채
기형도 시인. 1989년 3월 7일, 서른 살의 나이로 그가 죽었다. 어둡고 차가운 종로 파고다극장 객석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그 날, 나는 술에 젖어 집에 가지 못했다. 집에 가는 막차를 일부러 놓치고 종로나 명동 어디쯤에서 밤새 마시고, 아침에 학교로 갔다. 그리고 학교 벤치에서 엎드려 자다 그의 부음을 들었다. 죽기 전 그와는 반경 1km 안에 있었던 셈. 내가 돌 던지고 노래 부르며 있는 힘 다해 술 마실 때,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날 이후 그는 전설이 되었다. 암울하고 불안한 시대, 시를 쓰던 한 사내의 생은 자신의 예견대로 ‘흠집투성이 흑백의 자막(字幕) 속’에서 끝났다. 13년이 흐른 지금, 또 다른 사내들이 여전히 가슴 속에 불안과 절망을 안은 채 ‘문 닫힌 상회(商會) 앞에서 마지막 담배와 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