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사읍 창3리 20개 종중 묘 산재
한글 고전 ‘옥루몽’의 저자 남영로
나비그림 대가 남계우 등 잠들어
산단 개발로 강제 이전·소멸 위기
문학계·미술계 우려 목소리 확산
용인신문ㅣ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조성으로 인해 소멸 위기에 처한 처인구 남사읍 창3리(화곡마을). 지난달 29일 오전, 이곳은 짙푸른 숲과 이앙을 마친 논밭이 어우러진 평화로운 농촌 마을의 정경을 간직하고 있었다. 용인에 아직 이러한 곳이 존재하였는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워 마치 별천지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예로부터 진달래가 많이 피어 ‘꽃골’이라 불리었다는 이곳은 이제 과거의 흔적으로만 남을지도 모른다.
# 남영로·남계우 선생이 잠든 곳
창3리에는 의령남씨 묘역을 비롯해 약 20개 종중의 조상 묘 400여 기가 산재해 있다. 이 묘역들은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개발로 인해 강제 이전되거나 소멸될 운명에 처했다. 특히 의령남씨 묘만 문화재급 8기 등 150기에 달하며,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 조성되기 시작해 600여 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대표 고전소설 ‘옥루몽’의 저자 남영로(1810~1857) 선생과 나비 그림의 대가 남계우((1811~1890, 일명 남나비) 선생과 같은 문화적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남영로 선생의 생가터 또한 묘역 인근에 위치해 문학계와 미술계의 관심이 지대하다.
이날 의령남씨 종중 창리대책위원회 남양희 TF팀장과 군산대 국문과 남기혁 교수의 안내로 묘역을 둘러보았다. 특히 두 사람 모두 의령남씨 종원으로, 남기혁 교수는 이곳 창3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 지역 토박이다.
남 팀장은 “조선 개국 일등공신인 강무공 남은(1354~1398) 선생의 묘를 쓰면서부터 용인에 의령남씨가 입향했다. 이후 약천 남구만 선생이 이곳에 사패지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의령남씨가 세거하게 됐고, 묘역이 조성되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창3리 약 220만㎡(약 68만 평)의 수용 토지 중 의령남씨 종중 및 종원토지 약 70만㎡(약 21만 평)가 수용된다. 달봉산 정상에 약 1만6000㎡(약 5000평)만 잔여지로 남은 상태이다.
# 묘 이장 대책 ‘발등에 불’
남 팀장은 “용인시와 LH공사에 문화재급 묘역 8여기에 대한 제척 및 존치를 요청하고 있지만 거부되고 있다. 용인시는 국가사업이라 권한 밖이라고 하고, LH는 반도체 국가산단 특별법을 내세워 법적 보상을 해줄테니 알아서 이장하라고만 한다”며 답답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우리 종중 땅을 모두 수용하면서 평평한 곳에 이장 및 부속 건물 터와 역사문화관 건립 부지는 마련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개발을 내세우며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니 힘에 밀릴 수밖에 없다. 잔여지는 달봉산 200m 고지로 경사도 45도 이상의 높고 험한 협곡지역이며 이장할 면적조차 부족하다”고 하소연했다.
남 교수는 “지난해 문화재 위원들이 나와서 조사를 한 적이 있다. 남은 묘는 고려 말 조선 초 왕족들이 쓰는 전통적인 묘제 양식으로 희귀 동자석도 그대로 있고, 둘레석만 보완하면 경기도 문화재로 즉시 지정 가능하다고 했다. 조선 중기 묘들도 보존이 잘 돼 있어 문화재급이라 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집안 무덤은 소박하다. 화려한 유물이 나올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함부로 이장할 수 없지 않은가. 학술적 조사와 고증 작업을 거쳐야 하지 않은가”라며 LH공사, 용인시에 이전 및 보존 대책을 요청했다. 또 남영로, 남계우의 묘는 용인의 훌륭한 교육문화, 관광콘텐츠 자원으로 역사문화의 손실이며 종중의 정신적 문화유산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남 팀장은 창3리 다른 종중에도 중요한 인물 묘가 있는 만큼, 향후 다른 종중들과 연합해 대처할 뜻도 내비쳤다.
# 용인의 ‘생태계 보고’ 소멸 위기
한편, 꽃골에는 100여 세대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중 95%가 70세 이상의 고령층이다 보니 대책위 활동조차 역부족인 형편이다.
앞서 지난달 25일에도 창3리 마을을 찾았을 때, 주민대책위원회 노영한 위원장은 “이곳은 맹꽁이, 민물 새우, 가재 등이 서식하는 맑은 골짜기인데 환경영향평가도 형식적으로 진행했다. 우리 마을은 용인의 산소통인데 소멸하게 됐다”라며 “주민은 대부분 70세 이상 노인들로 쫓아내면 이주할 곳 없는 열악한 분들”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민들은 국가산업이라는 미명 아래, 한 마을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유산, 그리고 주민들의 삶이 통째로 사라져가는 현실에 발을 구르고 있다. <글: 박숙현 기자 / 사진: 김종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