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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구호 정치꾼 아닌 실천적 행정가 ‘옥석 가리기’

오룡(조광조 역사연구원 원장/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 선거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을 시험대 위에 올린다. 어떤 이는 지지 정당을 향해 뜨겁게 열광하고, 누군가는 냉소와 분노를 삭인다. 혹자는 최악만은 피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투표소에 들어선다.

 

거리마다 내걸린 공약은 화려한 수식어로 치장돼 있지만, 그 이면에서 무엇이 실질적으로 다른지는 좀처럼 또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결국 유권자의 고민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그래서, 누가 내 삶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 것인가.”

 

용인 수지구는 이 질문이 가장 치밀하게 반복되는 공간이다. 에드먼드 버크가 말했듯 국가는 세대 간의 유기적 계약이지만, 그 계약이 일상의 안정으로 체감되지 않을 때 유권자는 언제든 파기를 선택한다.

 

지난 10년간 수지의 투표 궤적은 특정 이념에 고착된 지형이 아니었다. 민심은 시대적 조건과 자산 환경의 변화에 따라 기민하게 움직이며, 삶의 질이라는 기준 위에서 끊임없이 재편돼 왔다.

 

변화의 출발점은 2017년 대통령 선거였다. 전통적 보수 강세 지역이던 수지에서 나타난 선택은 단순한 정권 교체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헌정 질서의 회복과 국가 운영의 정상화라는 ‘상식의 복구’에 대한 열망이 표심에 투영된 것이다. 보수의 본질이 기득권 수호가 아니라 질서와 안정에 있음을, 수지의 유권자들은 표로써 확인하고자 했다.

 

이러한 실용적 심판은 이후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도 이어졌다. 2020년과 2024년 총선에서 수지는 어느 한 정당의 구조적 우위를 허용하지 않는 접전지로 기능했다. 유권자들은 표를 고정된 충성의 대상으로 두지 않고, 정치가 삶의 조건을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유동적으로 배치했다.

 

교통과 교육, 주거 환경이라는 생활 행정의 성패가 이념의 외피를 압도했고, 민심은 구호보다 체감되는 효용 앞에서 더 정직하게 반응했다.

 

동 단위의 미시적 변화는 이를 더욱 분명히 보여준다. 보수 지형이 견고한 성복동에서는 법치와 제도의 가치가 흔들릴 때마다 표심의 미세한 균열이 나타난다. 이는 진영 이동이라기보다 ‘품격 있는 질서’에 대한 보수적 성찰에 가깝다.

 

반면 풍덕천동은 재건축과 리모델링이 핵심 의제로 부상하며 자산 가치에 민감한 실리적 우경화라는 역설을 보여준다. 중산층 정치가 이념이 아닌 현실의 조건 위에 서 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정치사회학자 리프셋의 지적처럼, 중산층은 자신의 지위와 자산이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을 정교하게 조정한다. 수지의 유권자는 대선에서 국가의 방향을, 총선에서 권력의 균형을, 지방선거에서 행정의 능력을 분리해 심판해 왔다.

 

이제 이곳에서 정치는 선악을 가르는 신념의 전쟁이 아니다. 이념의 수사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의 문법이다. 누가 삶의 기반을 지키고, 출근길의 고통을 덜어내며, 교육의 불안을 현실적인 정책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가 선택의 기준이 됐다.

 

여전히 일부 유권자들 사이에는 정당에 대한 관성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수지의 민심 전체로 보기는 어렵다. 다수의 유권자들은 정치를 정체성의 표출이 아니라 삶의 조건을 관리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표심은 정당의 이름보다 성과의 무게에, 구호보다 행정의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비스마르크는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 했다. 수지의 유권자들은 불가능한 약속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대안을 요구해 왔다. 2026년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수지는 다시 묻고 있다.“누가 구호가 아니라 행정으로 시민의 삶의 기반을 지켜낼 수 있는가.”그 질문에 가장 설득력 있게 답하는 후보가 결국 수지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