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신문 | ‘말을 잘하는 것’은 언제나 사회적 힘이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수사학이 학문으로 성립되었듯, 말은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권력, 그리고 공동체를 움직이는 도구였다. 그러나 말의 힘이 클수록, 그 말이 가벼워질 때의 위험도 커진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말 속에서 오히려 신뢰를 잃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말이 많으면 존재감이 커지고, 정치인이나 권력자의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일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말이 많아질수록 모순도 함께 늘어나고, 그 말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신뢰는 깎여 나간다. 현명한 사람은 말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말을 통해 질서를 세운다.
더 조심해야 할 것은, 말 그 자체보다도 ‘속내를 추측하여 말하는 행위’다. 누군가의 의도를 짐작하고 그것을 공적으로 해석해 유포하는 순간, 말은 설명이 아니라 권력이 된다. 그리고 그 권력은 공동체를 안정시키기보다 흔드는 쪽으로 작동하기 쉽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삼국지 속 조조와 ‘계륵’의 고사를 떠올리게 된다. 한중을 둘러싸고 진퇴양난에 빠진 조조는 군호로 ‘계륵’을 택했다. 이는 포기하기에는 아깝지만, 더 큰 희생을 치르며 지킬 만큼의 전략적 가치도 아니라는 복합적 판단이었다. 말하자면 조조의 군호는 명령이 아니라 ‘속마음’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읽어낸 장수 양수는 조조가 철수를 고려하고 있다고 판단해 군을 움직이려 했다. 결과는 비극이었다. 조조는 자신의 속내가 노출되었다는 불안과 군령이 흔들렸다는 분노 속에서 양수를 처형한다. 계륵이라는 말 한마디가 군대를 흔들고, 한 사람의 목숨을 끊은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국가산업단지 논란 역시 이 ‘계륵’의 그림자를 닮아 있다. 용인의 반도체 국가 산단은 단순한 지역 개발 사업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산업 구조의 중심축이자,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속에서 국가 생존과 직결된 전략 사업이다. 반도체는 지금의 석유와도 같다. 이 산업의 생산 능력과 공급망 안정성, 연구·개발 생태계는 국가 안보와 직결되어 있다.
용인 산단은 수년간 정부와 지자체, 기업, 지역 주민들이 얽혀 준비해 온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다. 이미 부지수용이 진행되었고, 민간 투자는 공정률 70%를 넘긴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산단의 위치나 존속 여부를 암시적으로라도 흔드는 발언은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수조 원의 투자와 국가 신뢰를 흔드는 신호가 된다.
그런데 최근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이 산단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오면서 용인과 전북 모두에서 민심이 요동쳤다. 용인에서는 “이제 와서 이게 무슨 말이냐”는 분노가 터졌고, 전북에서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했다. 이후 청와대가 “확정된 것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말은 현실을 바꿔놓았다.
문제의 본질은 균형발전이냐 산업 경쟁력이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두 가지 모두 국가에 반드시 필요하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방을 살리는 일은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핵심 과제다. 그러나 그 방법이 이미 진행 중인 국가 핵심 산업 프로젝트를 흔드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균형발전은 ‘기존 축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축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지역균형을 위한다면 그 지역에 맞는 새로운 국가 전략 산업과 첨단 클러스터를 설계해야 한다. 이것이 지속 가능한 균형이다.
정책은 예산과 법률로 이루어지지만, 현실은 말로 먼저 움직인다. 대통령과 장관의 말은 곧 시장의 신호이며, 지역 주민에게는 삶의 계획을 바꾸는 명령과 같다. 그래서 국가 지도자의 말은 개인의 발언이 아니라 공적 권력이다.
조조의 ‘계륵’이 군대를 흔들었듯, 정부의 모호한 말 한마디는 민심과 시장, 지역사회를 동시에 흔든다. 말이 많아질수록 정책은 가벼워지고, 가벼운 말은 결국 국가의 무게를 갉아먹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발언이 아니라, 더 일관된 언어다. 더 많은 공약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국가 전략이다. 말의 무게를 잃은 국가는 방향을 잃는다. 국가산단 논란은 지금 우리가 그 위험한 경계선 위에 서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