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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 임신 소식을 전한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건넨 말, “꽃 많이 보고, 좋은 생각만 해라.” 친정엄마도 거든다. “예쁜 마음을 가지면 애가 예쁘게 태어나지.” 일본에는 ‘아름다운 것을 보면 아이가 그 빛을 받는다’는 말이 있고, 서양에도 임산부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행복한 상상을 하면 아이가 건강하고 잘생긴다는 믿음이 있다. 인류 어디서나 ‘엄마의 마음이 아이 얼굴을 만든다’는 속설은 오래 살아남았다.
이 믿음의 매력은 분명하다. 임신부 주변을 좋은 환경으로 채우게 하고, 가족과 이웃까지 웃게 만든다. 그러나 과학의 판정은 “부분적으로만 맞다”이다. 아기의 눈, 코, 피부색 등 외모 대부분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수백 개의 유전자가 결정한다. 수정 순간 이미 큰 설계도가 완성되며, 임신 중 엄마의 마음가짐이 이목구비를 재설계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심리 상태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태아 발달은 유전이라는 설계도 위에 엄마의 몸 상태, 호르몬, 영양·산소 공급 같은 환경이 덧입혀진다. 긍정적인 감정은 혈류를 원활하게 하고, 그로 인해 태아는 더 건강하게 자란다. 이는 눈매를 바꾸는 일은 아니지만, 부드러운 인상이나 건강한 피부처럼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기여할 수 있다.
이 원리를 설명하는 개념이 ‘에피제네틱스(후성유전학)’이다. 같은 설계도라도 환경에 따라 완성된 집의 인상이 달라지듯, 안정된 심리와 충분한 영양은 발달을 돕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영양 부족은 작은 흠집을 남길 수 있다.
이 속설이 힘을 얻은 데는 문화적 이유도 있다. 과거에는 유전 개념이 보편적이지 않았고, 태아 발달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다. 대신 ‘마음가짐’이라는 도덕적 가치가 임신부를 보호하는 지침 역할을 했다. 문제는 오늘날에도 이것이 ‘외모 완성’처럼 과도하게 해석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속설을 실천하는 사례, 예를 들면 좋아하는 배우 사진을 붙이거나 꽃 사진을 매일 보는 일 등이 외모를 바꾸지는 않지만, 엄마의 기분을 좋게 하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효과는 있다. 다만 힘든 시기를 겪은 임신부가 “혹시 내가 나쁜 생각을 해서…”라며 죄책감을 갖는 것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아이 외모의 90% 이상은 유전이, 나머지는 환경이 다듬는다. 환경은 조력자이지 조각가가 아니다.
결국 ‘예쁜 생각’은 외모 주문이 아니라, 아이의 첫 집이 될 자궁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관리다. 균형 잡힌 식사, 규칙적인 수면, 적당한 운동, 좋은 사람과의 대화, 스스로 웃을 수 있는 일. 이것이 진짜 예쁜 생각이다. 외모는 유전이 그리지만, 건강과 행복은 환경이 완성한다. 임신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바로 ‘예쁜 생각, 건강한 생활,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