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신문 | “뉘집 자식인고...”
옛날 어르신들은 마을에서 뛰어노는 사내아이를 보며 “뉘집 자식인가”를 단번에 알아차렸다고 한다. 이장 집 사내들은 꼼꼼하고, 최부자 집 사내들은 걸음걸이만 봐도 알 수 있으며, 김씨네 집안 사내들은 불같은 성질이 특징이라는 식이다. 놀랍게도 대체로 틀리지 않았다.
남성을 떠올리면 흔히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만 거론한다. 그러나 남성의 본질은 호르몬이 아니라 Y염색체에 담긴 정보에 있다. 이 염색체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만 전해지는, 인간 유전체 중 유일한 부계직계 유전이다. 어머니는 줄 수 없고, 딸은 받을 수 없다. 그렇기에 Y염색체는 단순한 유전 정보가 아니라, 한 가문의 남성상을 형성하는 ‘보이지 않는 족보’라 할 수 있다.
Y염색체 안에는 생식 능력과 성 결정, 나아가 행동 성향에 이르기까지 남성의 핵심 코드가 압축돼 있다. 작지만 치밀하고, 단순하지만 강인하다. 눈빛이나 걸음걸이, 말투와 습관이 닮은 이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Y염색체는 아버지의 성격과 기질, 그리고 반응의 방식까지 다음 세대로 옮긴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는 속담은 심리학이 아니라 생물학의 언어에 가깝다. 어느 집안의 남성은 고집스럽고, 어느 집안의 남성은 깐깐하며, 또 어느 집안의 남성은 여성스러울 정도로 섬세하고 꼼꼼할 수 있다. 불같은 성질의 아들의 아버지가 다혈질일 수 있는 것은, Y염색체에 포함된 교감신경 반응 관련 유전자들이 스트레스나 자극에 대한 생리적 흥분 반응의 민감도를 세대 간에 이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Y염색체는 인간 염색체 중 가장 작고, 담긴 유전자의 수도 가장 적다. X염색체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고 해서, 어떤 이들은 “Y염색체는 이제 필요 없는 유전자”라고까지 말한다. 심지어 범죄자 식별에 쓰이는 도구 정도로만 여기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남성 범죄자를 추적할 때 Y염색체 분석(Y-STR 분석)을 하는 것은, 범죄성과의 연관 때문이 아니라 부계 고유성을 이용하기 위함이다.
분명한 사실은 Y염색체는 인류가 시작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남성을 존재하게 하고 계승시켜 온 위대한 유전자라는 것이다. 인간 배아, 즉 수정란이 완성되려면 정자에 담긴 정보(염색체, DNA)가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서 정자를 생산할 수 있는 주체가 바로 남성 아니겠는가. 남성의 도움(정자) 없이는 생명 잉태가 불가능하다.
Y염색체 안의 유전자 가운데 상당수가 남성의 성 결정과 생식 능력을 책임진다. SRY(성결정 유전자), DAZ(정자형성 유전자), TSPY(정세관단백 유전자)가 대표적이다. 이들 중 하나라도 결손되면 정자 생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Y염색체 돌연변이 혹은 미세결실일 경우 정자 수가 턱없이 적은 희소정자증이 되거나, 무정자증과 같은 생식장애의 원인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성이라면 자신이 속한 집안의 Y염색체 내력에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아들인 나에게만 대물림된 생물학적 유산이며, 세대를 넘어 이어야 할 사내로서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이 유산은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라 가족을 지켜낸 힘이다. 남성다움이라는 Y염색체로 이어지는 유전자의 힘이라 할 수 있다.
당부하건대, 세상의 며느리들은 남편의 성격을 단점으로만 여기지 말고 집안(시댁)의 내력으로 이해하며, 장점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응원해 주기를 바란다. 또한 아들의 남성다움을 애써 누르지 말고 기를 살려서 품격 있는 사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