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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식물원… 정부·지자체 지원 ‘SOS’

LOCAL FOCUS_한택식물원(원장 이택주)

 

66만㎡ 규모 식물 1만 여종 보유
자생식물 보고… 생물 다양성 보루
이택주 원장 50여년 사비 털어 운영
‘사립’ 지원 사각… 하루하루 걱정

 

용인신문 |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 비봉산 자락, 66만㎡(20만 평) 규모의 (재)한택식물원(원장 이택주·86)은 한국 자생식물 2400여 종을 포함, 1만여 종의 식물을 보유한 국내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식물원이다. 1979년부터 조성되어 2003년 문을 연 이곳은 이미 2001년 환경부로부터 ‘희귀·멸종위기식물 서식지외 보존기관(22종)’으로 지정된 바 있다.

 

한택식물원은 국내 최대의 종합 식물원이자 한국 고유의 식물 유전자원을 보전하는 대한민국 자생식물의 보고이며 생물 다양성의 핵심 기지다. 이처럼 중차대한 가치를 지닌 한택식물원이 ‘사립’이라는 이유로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을 받지 못해 인건비, 운영비 등 운영 고충이 큰 상황이다. 66만㎡에 달하는 식물원을 10명 미만의 직원이 관리하는 실정이다. 이택주 원장은 “지난 1995년 당시 한택식물원과 규모가 비슷했던 북경식물원은 종사자만 680여 명이었다”고 회상했다.

 

겨울철 4개 온실 유지에 들어가는 기름값이 5000만 원에 달하지만, 겨울철은 완전 비수기여서 방문객이 뜸하다. 지은 지 20년 된 온실 유리를 교체하지 못해 일조량 부족으로 호주 나무에 이끼가 꼈고, 백두산 및 한라산 등 고산지대 식물을 키우기 위한 여름 냉방시설은 건축비와 냉방비 문제로 엄두도 못 내고 있다. 다만 식물원 내 미기후 지역을 활용해 일부 식물을 보전하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식물원을 서비스업으로 분류하고 지목이 ‘유원지’여서 이에 부과되는 세금 부담도 큰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한택식물원의 설립 목적은 식물자원 수집 및 보존, 연구, 환경·생태교육이다. 식물의 생태를 우선으로 고려해 조성된 식물원은 사진 찍기 좋게 꾸며진 관광 정원이나 수목원과는 달리 식물에 진심인 관람객이 주로 방문하기 때문에 입장료 수입이 극히 적다. 따라서 공공적, 공익적인 한택식물원이 지속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강정화 이사는 “자생식물 중 한반도 고유종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식물로, 우리가 식물 주권을 주장할 수 있는 종들”이라며 “자원화 연구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도 연구동에서는 희귀·멸종위기식물의 대량 증식 및 복원 방법, 신품종 개발, 자생식물 재배 매뉴얼 개발, 자생식물의 농업화·산업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 역대 대통령들도 방문했던 ‘한국 자생식물 낙원’

한택식물원의 남다른 가치는 일찍부터 국가적으로 인정받아 역대 대통령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 원장은 각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과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비공식적으로 방문해 퇴임 후 만들고 싶어 하는 정원에 대한 자문을 구했고, 이 과정에서 한택식물원의 애로사항을 약속했으나 퇴임하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식물원을 비영리 재단법인으로 만드는 과정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 방문해 한택식물원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사전 예고 없이 여러 차례 이곳을 찾았다.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절, 이 원장은 국가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청와대에 우리 자생식물을 많이 심었고, 청와대 사랑채에서 야생화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대통령이 되기 전 여러 번 방문했다. 처음 본다는 자생식물인 ‘반디지치’에 대한 질문에 이 원장이 직접 설명해 주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위대한 분을 만났다”며 식물원 카페에서 커피를 샀다고 이 원장은 회상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한택식물원을 꾸준히 찾았던 것은 단순한 관광 명소를 넘어, 한국 자생식물 보존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살아있는 자연사 박물관’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 “선진국은 기부금과 자원봉사도 줄 이어”

대통령들이 식물원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공공·공익 기능을 수행함에도 ‘사립’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지원이 없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는 지적이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중요한 문화유산이자 교육 공간임에도 코디네이터 한 명 제공 외에는 전혀 지원이 없다고 한다.

 

이 원장은 “선진국에서는 식물자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며 “국제 규약인 생물다양성협약에 의거, 멸종위기종인 야생생물자원을 각 나라가 책임지고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식물원은 국가가 운영하거나 기업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100년, 200년 된 곳들이 수두룩하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에서는 시민들이 식물자원을 중요한 기초과학이자 자원으로 인식하고 있어 기부금 비중이 크고, 시민사회단체 등 사회 지식인 전반의 자원봉사도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 불로초까지 식물원에 바친 이택주 원장의 꿈

한택식물원 조성 당시, 우리나라는 식물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었다. 이 원장은 “당시 UN 가입국 중 식물원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했다”고 기억했다. 그는 나라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잡초처럼 홀대받던 자생식물을 채집하기 위해 전국 팔도강산을 누볐다.

 

용인 백암면이 고향인 이 원장은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후 건설 토목 현장에서 승승장구했으나, 개인의 부귀영화를 접고 50여 년 동안 오로지 한국 자생식물만을 위해 온 재산과 젊음을 바쳤다. 해외 세계유산 식물원들은 조경이 예쁘게 되어 있지만, 한택식물원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다. 오히려 해외에서는 이택주 원장이 직접 설계한 이곳을 작품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북경식물원과 협약을 맺은 이 원장은 중국의 산에서 뿌리에 구슬 같은 것이 매달린 ‘불로초’라 불리는 주삼을 캔 일이 있다. 북경식물원 관계자가 먹으라고 권했지만, 이 원장은 불로초를 한택식물원에 가져와 심었으나 죽은 사연도 있다.

 

이 원장은 여든을 훌쩍 넘긴 고령에도 한택식물원을 미래에 이어가고, 세계적인 수준의 생태 교육 및 연구 센터로 발전시키겠다는 꿈을 놓지 않고 있다. 국가나 기업도 외면하고 있는 식물원을 한 개인이 일궈 대한민국 식물자원의 위상을 세웠고, 더구나 용인에 있다는 사실은 용인시의 큰 자랑거리다. 한택식물원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지도록 ‘사립’이라는 낡은 잣대를 넘어, 공공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미래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글: 박숙현 기자/사진: 김종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