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
김종경
허물어진
담장밖으로
목련꽃 떨어지는 소리
이유 없이
컹컹 물어뜯던
저 몽실한
눈빛,
긴 하품과
껌벅이는 눈빛 사이
조용히
한없이 떨어지는
꽃잎,
하나
둘.
2008년 계간 『불교문예』 등단
시집 『기우뚱, 날다』, 『저물어 가는 지구를 굴리며』
동시집 『떼루의 채집활동』
무심
김종경
허물어진
담장밖으로
목련꽃 떨어지는 소리
이유 없이
컹컹 물어뜯던
저 몽실한
눈빛,
긴 하품과
껌벅이는 눈빛 사이
조용히
한없이 떨어지는
꽃잎,
하나
둘.
2008년 계간 『불교문예』 등단
시집 『기우뚱, 날다』, 『저물어 가는 지구를 굴리며』
동시집 『떼루의 채집활동』
나의 어린 왕자에게 노광희 안녕 나의 어린 왕자 안녕이란 말은 왠지 훅하고 불길 같은 것이 가슴에 안기지 꼬옥 안아봐도 될까 이제 가을 냄새 번져가는 어느 들판에 서서 유언장처럼 사용한 말들의 이름표를 붙이고 있는지 나와 마주한 적 없어서 부스럭거릴 때까지를 한참을 기다렸어 찔레에 맞아 퍼래진 등허리에 뛰쳐나가는 무게를 싣고 따라가던 얼룩들이 꽃을 피웠네 아직도 그 별들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지 하늘이 낮아지면 생기는 별똥별 오래 갇혀있던 너를 업고 부서지듯 던진 기원 처음 지나간 빛을 기억해 꼬리를 물고 떨어지는 시간은 순간이라서 저문 밤 몸살로 며칠을 앓던 무릎에 얹어진 슬픔이 따뜻해져서 하루 한 페이지씩 넘기는 날에 조금씩 너의 얘기로 한 걸음씩 걸어가 어느 작은 목섬 기슭에 자는 파도 같은 푸른 옷깃을 입고 죽는날까지 처음인 날 것들이 많은 날 함부러 달려드는 바람을 걸러 천천히 흔들어 보는 일은 껍질도 꽃잎 인냥 이젠 꼭 안아볼까 하는데 나의 생은 언제나 부끄러운 맨발 그 깊고 푸른 눈으로 나를 기억하는지 순수문학 등단. 한국문인협회 및 용인문인협회 회원. 종자와 시인 박물관에 시비 선정 수혜 [상처에 대하여] 시비가 있다. 시집 [따뜻한 남자의 손은
4월 산마루 손영미 산벚나무 밑 바위 귓부리가 닳았다 움푹 패인 껍질에 대해 짓무른 눈에 대해 땅속 깊이 묻은 발등에 대해 나무가 소곤소곤 쏟아낼 때마다 후두둑 꽃파편들이 바위에 쏟아진다 바람불던 겨울 아궁이 속에서 새까맣게 탄 고구마를 골라내시며 너도 나처럼 속이 다 탔니 하시던 어머니 평생 속으로 속으로만 써놓던 주름진 동화를 펼쳐놓지 못했는데 늦저녁 산마루에서 되읽어보는 페이지 한쪽 움푹패인 껍질은 너의 훈장이야 짓무른 기다림이 있어 네가 쓰러지지 않았어 깊이 묻힌 발등 때문에 방랑자가 안되었어 어머니의 어머니 같은 바위와 산벚나무가 종일 속엣말을 주고받는 사이 철없는 꽃잎들이 뚝뚝 가지를 떠나고 껍질에 또하나의 골이 새겨졌다 바람이 산벚나무 가지에 걸린 갈피를 켜켜이 들춰 보고 있다 - 2025년 <시와소금> 신인상 당선작 - 약력 충북 청주 출생 24년 동서문학상 맥심상 25년 '시와소금' 신인상 경희사이버대 문예창작과 재학중. 용인문학회 회원.
맨드라미 송남순 담과 담 사이를 몰래 훔쳐보며 골목을 좋아했던 날도 있었다 모자 속에 숨어 있는 하얀 얼굴 빨간 옷이 잘 어울리는 건넛집 오빠 골목을 지날 때면 나무 그림자까지 살금살금 걸었는데 바람이 옮긴 걸까 그 소문 눈썹 짙은 언니 내 동생 그림자도 좋아하지 말라고 한다 봄부터 시작된 내 마음 저 맨드라미도 벌써 알고 있었나 보다 어느 날 꿈속에 오빠는 담벼락에 서서 웃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 오래 기억하고 싶어 붉은 얼굴로 골목을 막 뛰어다녔다 약력: 2020년 공직문학상 시부분 동상 수상. 시집으로 너에게, 첫/ 가장 깊은 곳의 초록이 있음. 2022년 경기문화재단 경기예술지원금 수혜
흔들리는 실루엣 김삼주 건조한 거리를 걷는다 마른 땅은 짠맛을 삼키고 바람은 한낮의 열기를 지워낸다 늘어진 나뭇잎들 저녁 무렵, 숨을 고르며 촘촘한 방충망처럼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무심한 가로등 하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본다 나방 한 마리 겁 없이 달려든다 지렁이 무덤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보도블록 밑의 열기가 뜨거워 살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뜨거워진 배를 뒤집다 온몸이 뒤틀렸다 개미의 마른 입술이 선혈의 맛을 핥는다 개미, 떼로 모여들고 잔치가 시작된다 흔들리는 내 그림자에 머뭇거린 해 질 녘 약력: 남원출생 2004년 문학21 등단 SDU문창과 졸업 용인문학회 회원 시집<마당에 풀어진 하늘>
이별하는 돌 손택수 돌을 쥔다 차가울 줄 알았는데 온기가 있다 나의 체온이 건너간 것이다 건너간 것이 체온만은 아니어서 떠나가는 거 서운치 않게, 지는 해를 따라가서 민박집에 주저앉았던 옛일도 떠오른다 입파도였나 국화도였나 찬찬히 낙조에 물든 밀물을 몰고 오는 시간 돌을 만지던 손을 코끝으로 당겨본다 희미한 물냄새가 있다 비가 지나간 걸 기억하고 있는가 가서는 되돌아오고 되돌아오길 왼종일 보리밭을 불어가는 바람처럼 떨어지질 않는 걸음으로 저만치 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매어준 머플러 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돌을 쥔다 누구의 체온인지 영 구분할 수 없게 약력: 199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호랑이 발자국』 『목련 전차』 『나무의 수사학』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