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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력·문해력·글쓰기

김종성(소설가·전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교수)

 

[용인신문] 글쓰기가 시인·소설가 같은 문학가를 지망하는 사람들한테만 필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문학가를 양성하는 도구로써 글쓰기뿐만 아니라, 삶의 도구로써 글쓰기도 필요하게 되었다.

 

글쓰기는 문해력이 있어야 하고, 문해력을 키우려면 무엇보다도 어휘력이 있어야 한다. 대학생들의 어휘력 빈곤은 어제오늘의 일만이 아니다. 특히 우리말의 50% 이상이 한자어인데도 한자어의 정확한 뜻을 몰라 벌어지는 엉뚱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학 신입생들에게 다년간 글쓰기를 지도해온 교수에게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다고 하는 학생들이 조세희 선생이 지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한 구절인 “마음 편할 날이 없고 몸으로 치러야 하는 노역 같았다. 우리의 조상은 세습하여 신역을 바쳤다. 우리의 조상은 상속·매매·기증·공출의 대상이었다.”에서 ‘노역·세습·상속·매매·신역·공출’의 뜻을 몰라 엉뚱한 해석을 한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여러 해 동안 글쓰기와 소설창작론을 지도한 필자도 그 교수의 말이 공감되었다. 오정희 선생의 단편소설 「동경」을 분석하는 시간이었다. ‘동경’이 무슨 뜻이지? 학생이 스마트폰의 폴더를 열고, 어떤 것을 간절히 그리워해서 그것만을 생각하는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동경(憧憬)’의 뜻풀이고, 단편소설 「동경」에서 ‘동경(銅鏡)’은 구리거울이라는 뜻이다. 학생들이 ‘구리거울’하고 웅얼거렸다.

 

우리말 어휘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각급 학교 학생들과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사자소학』을 읽힐 필요가 있다. 주자(朱子)가 지은 『소학』과 그 밖의 경전 중에서 격언 등을 뽑아 사자 일구(四字一句)로 엮은 『사자소학』은 간단한 한문 문장을 통해 한자를 익힐 수 있도록 한 책으로 우리말 어휘 학습에 유용하다. 한자도 언어이기 때문에 문장을 통해 어휘를 익혀야 한다. 단순히 어휘만 학습해서는 안 된다. 영어 어휘만 학습해서는 영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문해력과 어휘력을 키우는 데 있어서 독서가 중요하다. 책을 선택해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교에서 선정한 고전의 목록을 알아내 그 고전을 체계적으로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삼국유사』를 예로 들면 대학생이나 일반인이 읽을 수 있도록 편집된 책이 있고, 중고등학생이 읽을 수 있도록 편집된 책이 있다. 그리고 초등학생이 읽을 수 있도록 편집된 책도 있다. 읽는 사람의 수준에 맞는 『삼국유사』를 선택해 읽어야 한다.

 

‘글쓰기의 기초’ 시간에 ‘독자 중심의 글쓰기’라는 단원을 수업할 때였다. 원래 작자 미상의 설화집인 『수이전』에 실려 있었으며, 일연이 『삼국유사』를 편찬할 때 채록하여 전하는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복사해서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고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의 눈높이에 맞게 글을 쓰도록 했다. 한 학생이 쓴 글을 읽어보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의 눈높이에 맞게 글을 잘 썼다. 학생에게 처음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읽은 것이 언제냐고 물었다. 학생이 초등학교 3학년 때 동화처럼 쉽게 풀어 쓴 『삼국유사』를 읽은 것이 떠올라 그대로 썼다고 대답했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현시점에서 글쓰기 능력의 배양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어휘력의 빈곤은 문해력의 빈곤을 낳고, 문해력의 빈곤은 글쓰기 능력의 부재를 불러온다. 삶을 살아가는 길목에 어휘력·문해력·글쓰기가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