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 김연화 보광사 뒤뜰 초록 보자기에 밥알들 펼쳐 앉았다 법당 예불 후 고양이들 공양 마치고 남은 밥알들 햇살들에게 방생 중이다 약력: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다. 월간 《현대시》 편집부에서 근무했으며 2018년 《시와 표현》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화성작가회의 회원이다.
가을 사진관 류미월 대청호수 포토존에 애완견이 앉아있다 만추에 취한 꼬리 계절을 쓸어 넘길 때 숨죽인 길섶의 나무도 놀빛으로 흔들리네 다음을 예비하는 자연 속의 사진관 푸른 물빛 프레임엔 바람 한장 걸려 있고 가을은 셔터 소리로 제 몸을 익히고 있네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문학석사) 2008년 《창작수필》 등단, 2014년 《월간문학》 등단, 가람시조문학신인상 수상, 모상철시조문학상 수상, 시집 『나무와 사람』, 산문집 『달빛, 소리를 훔치다』, 전자시집 『하루하루 각설탕』, 아르코 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 용인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
시 이건행 먼 친척뻘 되는 아저씨가 묻는다. 네가 시 쓴다고 들었는디 시가 뭣이여? 딱히 한마디로 답하기 어려워 고민의 흔적 같은 것이라고 하자 아저씨는 신난 듯 말한다. 그럼 나도 시인이네. 날마다 머리가 깨지도록 아프니께.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땜시. 고민을 됫박 정도가 아니라 가마니째 하지. 아버지 산소 들렀다가 아저씨에게 시인을 돌려주고 대신 쌀 한 가마니 얻어왔다. 찰진 고민들로 빼곡한.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전 경제일간지 기자 (사건·미술·증권 담당) 현 일간지 ‘이건행 칼럼’ 연재 작가 현 인문학 책 비평가 1997년: 장편소설 『세상 끝에 선 여자』 (임권택 감독 영화 '창'의 원작) 2015년: 시 「상대원 연가」 발표 (동명 뮤지컬 모티브) 2021년: 시집 『호박잎쌈』 (디지북스 공모 선정 e-Book), 인문학 소개서 『인문독서 가이드북』(편저)
러시안룻렛 조희 식탁에 둘러앉은 다섯 사람 북극에선 빙하가 녹아내리고 터키는 땅이 갈라지고 일본 해변은 쓰나미가 휩쓸고 가고 하와이에는 허리케인이 몰아치고 한반도는 극한 호우에 잠기고 모두 치명적인 순서 약력: 2022년 『내일을여는작가』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2024년 아르코 문학창작산실 지원금을 수혜했다.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괘종시계 이병진 어디에 눌러있어도 배꼽 맞추고 살 운명이다 팍팍한 삶일지언정 부부의 연緣으로 묶여 지내다 보면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방향도 같은가 보다 종종걸음치는 살뜰함이 있고 천천히 따라가는 배려가 있다 어둠 속에서도 묵묵히 길을 가고 말없이 따르고 술 취한 다음 날도 어김없이 제 할 일을 한다 촌각을 다투는 치열한 북새판에 시침과 분침이 엇길로 가지 않는 것은 작은 걸음으로도 최선을 다하는 초침 앞에서 떳떳하고 싶은 까닭이다 또각또각 시간의 동맥을 따라 걷다가 지칠 무렵 때맞춰 가슴을 뛰게 하는 종소리가 있기 때문이다 약력: 2022년「월간문학」신인작품상으로 등단 시집 「나는 폭이 없는 길을 간다」(2023), 「애매와 모호」(2026) 제22회 모던포엠 작품상(2026), 용인문화재단 예술지원창작지원 선정(2026) 웹진 시인광장 편집위원, 모던포엠작가회 회원, 시야 동인
푸르른 날 서정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는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서정주, <푸르른 날> 전문, - 『생활문화』 1946 . 2 약력: 미당 서정주(1915~2000)는 1936년 시 「벽」으로 등단해 『화사집』, 『귀촉도』, 『신라초』 등을 남긴 한국 현대 시인이다. 동국대학교 교수와 한국문인협회장을 지냈으며, 전통적 정서와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약력: 김현승(1913~1975) 시인은 1934년 동아일보를 통해 등단했다. 조선대와 숭실대 교수를 역임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고독과 신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정신적 깊이를 탐구하여 한국 주지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가을의 기도》, 《눈물》, 《견고한 고독》 등을 발표하며 한국 서정시의 영역을 넓혔다.
환희 김윤배 새벽 산자락이다 거미줄에 이슬이 수없이 매달렸다 이슬마다 나무들이 들어있다 숲이 들어 있다 산맥이 들어 있다 바람이 들어 있다 바람은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1986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간 시집 ‘겨울 숲에서’ ‘떠돌이의 노래’ ‘강 깊은 당신 편지’ 등과 장시집 ‘사당 바우덕이’ ‘시베리아의 침묵’, 산문집으로 ‘시인들의 풍경’, 평론집 ‘김수영 시학’, 동화집 ‘비를 부르는 소년’ ‘두노야 힘내’ 등 다양한 저서를 펴냈다.
종 種 박설희 쓸쓸함과 막막함 사이에서 오늘의 물결이 닿은 곳 짝짓기를 거부해 후손을 남기지 않았다는 땅거북, 외로운 조지 마지막 종種으로 남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우주탐사선 파이어니어 10호는 우리 외에 지각 있는 존재를 만나지 못했다, 우리는 외롭다 등의 메시지를 담은 금속판을 싣고 우주로 날아갔다 ‘외롭다’는 마음을 우주인은 이해할까 검은 우주 속 단 하나의 종, 지구인 긴 밥주걱처럼 생긴 부리를 물속에서 휘젓는 멸종위기종 저어새도 도무지 먹이 활동에는 적합하지 않은 부리를 가진 나도 지구의 가장자리에 정박해 있는데 오늘도 난민처럼 지구 밖을, 별들을, 우주 너머를 기웃거리다 잠이 들 것이다 약력: 강원 속초에서 태어나 2003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쪽문으로 드나드는 구름』 『꽃은 바퀴다』 『가을을 재다』, 산문집 『틈이 있기에 숨결이 나부낀다』 등이 있다.
듣는 사람 이시영 좋은 시인이란 어쩌면 듣는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깊은 산 삭풍에 가지 부러지는 소리도 들을 수 있고 놀라서 달음박질치는 다람쥐의 재재바른 발자국 소리도 조심조심 들을 수 있다 때론 벼락처럼 첨탐 높은 교회당을 때리는 야훼의 노한 음성도 어릴 적 볏짚 담 너머 키 작은 어머니의 다듬이 소리도 함께 들을 수 있다 좋은 시인이란 그러므로 귀가 쫑끗 솟은 사람인지 모른다 그래야 잉크병 얼어붙은 겨울밤 곱은 손 불며 이 모든 소리를 백지 위에 철필로 꾹꾹 눌러쓸 것이다 약력: 전남 구례 출생하였고,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월간문학》 제3회 신인작품 공모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정지용 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지훈상, 백석문학상,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개망초꽃 안도현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것 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약력: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등단.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 외 다수.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는 15개국 언어로 해외에 번역 출간. 석정시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수문학상, 윤동주상, 백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노크 김은령 물 위에 앉은 꽃 무연, 무연히 바라보는데 못 전체가 수런수런 일렁거렸다 깊은 곳에서 수면을 치는 어떤 파동이 있었다 스스로 환한 꽃, 꽃! 둥근 잎 아래 누군가 살고 있어 그가 물 위로 건져 올린 자명등이었던 것 하령지에 와서 수련 구경하다가 찰방찰방 맨발로 걸어 들어가서 부유하며 잠든 연자를 깨운 그 주인공을 불러보았다 한 세계를 보이시는 당신 거기 계세요? 김은령: 경북 고령 출생. 1998년 《불교문예》 등단. 시집 『통조림』, 『차경』, 『잠시 위탁했다』와 불교 장편소설 『일연, 달빛으로 머물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