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3 청혼 진은영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 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조각처럼 -------------------------------------------------------------------- 여기 특별한 ‘청혼’이 있습니다.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 따로 있는 게 아니겠지만, 봄은 모든 사랑의 적기처럼 느껴집니다. 별들이 “벌들처럼 웅성거리”는 봄밤의 풍경이 떠오르지요. 여름날의 비를 주겠다는 밀어까지. 고요한 선언이 이어집니다.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시간에 아첨하지 않은 자는 세상에도 아첨하지 않으며 살아왔겠지요. 과연 “우리가 했던 맹세들”이 지켜질 수 있을까요. 서로를 찾느라 “술
▲ 수원의료관광센터-AKTC 협약식 수원의료관광센터(센터장 이강혁)는 지난 14일 외국인 환자를 수원시에 전략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한국중국어관광통역사협의회(이하 AKTC) 및 경기관광마케팅진흥회(이하 GTMO)와 MOU를 체결했다. 이번 협약은 수원시가 한국 관광산업의 최대 수요처인 중국 관광객과 최일선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중국어가이드 60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하는 AKTC와의 협력기반을 구축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성란 AKTC 회장은 그동안 서울, 제주에 집중된 중국 관광객의 관심을 수원으로 돌리고 협의회 차원에서 수원시 의료시설과 연계한 관광 상품을 적극 홍보하는데 협조하는 한편 협의회 전체 회원에게 2016년 수원화성 방문의해를 알림으로써 중국 관광객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실천방안으로 수원의료관광센터는 AKTC 추천 우수통역가이드를 초청해 수원시 의료시설과 관광자원 및 2016 수원화성 방문의해를 홍보하는 팸투어, 수원의료관광 중국시장 진출 방안 토론회 개최를 추진하는 한편, 2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중국 최대 민간단체인 중국특장생 연맹의 한국의 별 행사의 한국 측 파트너인 GTMO와는 금년 8월 방문하는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2 아네모네 성동혁 나 할 수 있는 산책 당신과 모두 하였지요 사랑하는 이여 제라늄은 원소기호가 아니죠 꽃 몇 송이의 허리춤을 자른다고 화원이 늘 슬픔에 뒤덮여 있는 건 아니겠지만 안 잘리면 그냥 가자 꽃의 살생부를 뒤적이는 세심한 근육을 우린 플로리스트 플로리스트라고 하지 꽃범의 꼬리 매발톱 모종의 식물들은 죽은 동물들이 기어코 다시 태어난 거죠 거기 빗물에 장화를 씻은 사람아 가을의 산책은 늘 마지막 같아서 한 발자국에도 후드득 건조하고 낮은 짐승이 불시에 떨어지는 것 같죠 나의 구체적 애인이여 그래도 시월에 당신에게 읽어준 꽃들의 꽃말은 내 편지 다름 아니죠 붉은 제라늄 내 엉망인 심장 포개어진 붉은 장화 아네모네 아네모네 나 지옥에서 빌려온 묘목 아니죠 -------------------------------------------------------------------- 시인들의 시인 성동혁. 그는「리시안셔스」라는 시에서 “나는 이 꽃을 선물하기 위해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아네모네’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 그러니까 이별의 말들. 이원 시인은 그의 시에 대해 “얼핏 보면 고요하고 일상적인 풍경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1 한 잎의 여자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 같은 여자,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 시인이 노래하는 ‘한 잎의 여자’는 풀푸레나무에서 비롯되고 있지요. 풀푸레, 라고 발음하면 눈앞에 푸른 기운이 가득 맴돌게 됩니다. 낙엽 지는 넓은 잎의 큰키나무. 꽃은 5월에 새 가지 끝에 피고 열매는 9월에 익으며 물속에 넣은 가지가 물을 푸르게 만든다고 하여 물푸레라 한다지요. 수많은 나무 중에 물푸레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0 찬란한 봄날 김유섭 나무들이 물고기처럼 숨을 쉬었다 비가 그치지 않았다 색색의 아이들이 교문을 나섰다 병아리 몸짓의 인사말조차 들리지 않았다 물살을 일으키며 지나가는 문구점 간판이 물풀처럼 흔들렸다 자동차가 길게 줄을 서서 수만 년 전 비단잉어의 이동로를 따라 느릿느릿 흘러갔다 물거품으로 떠다니는 꽃향기 속 수심을 유지하는 부레 하나 박제된 듯 정지해 있었다 위이잉, 닫혔던 귀가 열렸다 아이를 기다리던 엄마가 환해지며 비늘 없는 작은 손을 잡았다 꽃무늬 빗물이 찬란한 누구나 헤엄쳐 다니는 봄날이었다 --------------------------------------------------------------------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봄날’은 과거에 있을까요. 미래에 있을까요. 어쩌면 모든 ‘찬란한 봄날’은 현재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만히 시인이 포착해 놓은 풍경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유년 시절과 함께 떠오르는 단어들, 교문과 병아리와 문구점 등등. 우리는 어느새 느릿느릿 그 시간과 마주하게 있습니다. 어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부터, 닫혀버린 귀가 일순 ‘위이잉’ 열리는 것도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네요.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89 리라 손택수 리라 있지? 고대엔 리라 현을 양의 내장으로 만들었대 내장을 재로 씻어서는 갈기갈기 찢었지 하필 재였을까 잿더미였을까 멀리 독일까지 가서 고고학 공부를 하는 허수경 시인에게 들었다 왜 고국을 떠났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담담하게 시 때문이라고 했다 독하구나, 모국어를 위해 모국을 떠나다니 시인의 말을 받아적은 종이도 독을 삼킨 것이다 종이라면 제지공이었던 유홍준 시인이 생각난다 산판에서 벌목공 일을 할 때 양잿물 마시고 죽으려 길 몇 번, 양잿물 팔자가 어디 가겠노 살다보니 펄프에 양잿물을 타고 있더라 양잿물 마신 종이에 시를 쓸지 누가 알았겠노 말년엔 시 한 편이면 천하 원수도 다 용서가 될 것 같다고 안주도 없이 소주를 마시던 박영근 시인도 생각난다 수전증에 걸린 손으로 술잔을 건네던 그가 나는 꺼림칙했다 손의 발작이 옮겨오면 어쩌나 멀찌감치 떨어져 지냈다 겨울밤 덜덜덜 발작이라도 하듯 모포를 덮고 떠는 창문 옆에서 모니터를 면경처럼 들여다보고 있다 야근을 자주 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는데, 위장병과 소화장애 환자가 되기 십상이라는데 무슨 독한 사연도 없이 쓰린 속을 움켜쥐고 누가 시키지도 않는 야근을 하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88 나의 매화초옥도 조용미 눈 덮인 산, 무거운 회색빛 하늘, 초옥에서 창을 열어두고 피리를 불며 앉아 있는 선비의 시선은 먼데 창밖을 향하고 있다 어둑한 개울에 놓인 다리를 밟고 건너오는 사내는 어깨에 거문고를 메고 있다 멀리서 산속에 있는 벗을 찾아오고 있다 방 안의 선비는 녹의를 그는 홍의를 입고 있다 초옥을 에워싸고 매화는 눈송이가 내려앉듯 환하고 아늑하다 매화를 찾아, 마음으로 친히 지내는 벗을 찾아 봄이 오기 전의 산중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생겨나고, 부유하고, 바람의 기운 따라 천지간을 운행하는 별처럼 저 점점이 떠 있는 흰 매화에서 우주의 어느 한 순간이 멈추어버린 것을, 거문고를 메고 가는 한 사내를 통해 내가 보았다면 눈 덮인 산은 광막하고 골짜기는 유현하여 그 속에 든 사람의 일은 참으로 아득하구나 천리 밖 은은하게 번지는 서늘한 향을 듣는 이는 오직 그대뿐 밤하늘의 성성한 별들이 지듯 매화가 한 잎 한 잎 흩어지는 봄밤, 천지간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나는 그림 속 사람이 된다 별빛이 멀리서 오듯 암향도 가깝지 않다 -------------------------------------------------------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87 그대에게 가는 모든 길 백무산 그대에게 가는 길은 봄날 꽃길이 아니어도 좋다 그대에게 가는 길은 새하얀 눈길이 아니어도 좋다 여름날 타는 자갈길이어도 좋다 비바람 폭풍 벼랑길이어도 좋다 그대는 하나의 얼굴이 아니다 그대는 그곳에서 그렇게 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일렁이는 바다의 얼굴이다 잔잔한 수면 위 비단길이어도 좋다 고요한 적요의 새벽길이어도 좋다 왁자한 저잣거리 진흙길이어도 좋다 나를 통과하는 길이어도 좋다 나를 지우고 가는 길이어도 좋다 나를 베어버리고 가는 길이어도 좋다 꽃을 들고 가겠다 창검을 들고 가겠다 피흘리는 무릎 기어서라도 가겠다 모든 길을 열어 두겠다 그대에게 가는 길은 하나일 수 없다 길 밖 허공의 길도 마저 열어두겠다 그대는 출렁이는 저 바다의 얼굴이다 -------------------------------------------------------------------- 그대에게, 미래에게 가 닿을 수만 있다면, 그 길이 꽃길이든 눈길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요. 자갈길 혹은 벼랑길이라도 달게 걷고 걷게 될 것 같습니다. 걷는 것만이 방법이라면 말이지요. 한 걸음 한 걸음이 새로운 발돋움일 테니까요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86 세 스님 이승훈 먹물 옷 입고 겨울 모자 쓰고 등에는 배낭 메고 젊은 스님 셋이 돌다리 밟고 어디 간 다. 겨울 안거 마치고 어디로 가는 세 스님. 첫 번째 스님은 흐르는 물 보고 손은 비구 옷에 숨기고, 뒤에 오는 스님은 고개 숙이고 검은 장갑 끼고 모자는 스님 모자, 세 번째 스님은 꼿꼿이 서서 돌다리 건넌다. 물은 흐 르고, 집은 보이지 않고, 우물도 보이지 않는 다. 흐르는 물은 무슨 말을 하고, 세 스님은 어디로 가는가. 아침 햇살이 내린다. -------------------------------------------------------------------- 한 겨울 개울물처럼 맑고 시린 풍경이 여기 있습니다. 이승훈 시인은 ‘그냥 쓴다’라고 말한 바 있지요. 아마도 그건 이유 없음의 이유일 것. 그 ‘무심’만이 동력이며 목적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 시인에게 시는 깨달음의 과정 그 자체. 과연 세 스님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은 도반. 물은 흐르는 것으로 무슨 말인가를 건네고, 젊은 스님들은 묵묵히 걷는 것으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 시를 바르트가 보았다면, 무언어의 상태가 곧 깨달음이라는 확신을
시로 쓰는 편지 85 늦게 온 소포 고두현 밤에 온 소포를 받고 문 닫지 못한다. 서투른 글씨로 동여맨 겹겹의 매듭마다 주름진 손마디 한데 묶여 도착한 어머니 겨울 안부, 남쪽 섬 먼 길을 해풍도 마르지 않고 바삐 왔구나. 울타리 없는 곳에 혼자 남아 빈 지붕만 지키는 쓸쓸함 두터운 마분지에 싸고 또 싸서 속엣것보다 포장 더 무겁게 담아 보낸 소포 끈 찬찬히 풀다보면 낯선 서울살이 찌든 생활의 겉꺼풀들도 하나씩 벗겨지고 오래된 장갑 버선 한 짝 해진 내의까지 감기고 얽힌 무명실 줄 따라 펼쳐지더니 드디어 한지더미 속에서 놀란 듯 얼굴 내미는 남해산 유자 아홉 개. “큰집 뒤따메 올 유자가 잘 댔다고 몃개 따서 너어 보내니 춥을 때 다려 먹거라. 고생 만앗지야 봄볕치 풀리믄 또 조흔 일도 안 잇것나. 사람이 다 지 아래를 보고 사는 거라 어렵더라도 참고 반다시 몸만 성키 추스리라” 헤쳐 놓았던 몇 겹의 종이 다시 접었다 펼쳤다 밤새 남향의 문 닫지 못하고 무연히 콧등 시큰거려 내다본 밖으로 새벽 눈발이 하얗게 손 흔들며 글썽글썽 녹고 있다. -------------------------------------------------------------------
시로 쓰는 편지 84 석류 신동옥 가지 끝에 피톨을 머금고 삼켜 솟구치는 불의 나팔 밤하늘로부터 일직선으로 날아드는 대답에 귓바퀴를 안으로 돋는 옹골찬 타악기 떨어져 썩은 한 알이 가지에 기어올라 과육을 졸이고 졸여서 쪼그라 들어서 샅을 긁고 습진을 털어내고 다시 잎을 틔울 때 끝간 데까지 저를 물리고도 모자라 검붉게 달아오른 핵, 탄착점 없는 열정이 꿈꾸는 희생자 없는 세계의 고요한 애절양(哀絶陽).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새해, 모두에게 주어진 새로운 시간입니다. 약속처럼 모든 해는 붉게 떠오르지요. 해돋이를 보다 떠오른 건 뜻밖에도 붉은 석류. 그 모습이 서로 닮아 있기 때문이겠지요. “가지 끝에 피톨을 머금고 삼켜 솟구치는 불의 나팔” 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을 향해 목청껏 외치는 일에 조금 지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해야할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희망은 언제나 필요하다.’ 그러한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석류 알처럼 단단한 마음이 아닐까요. 다시 한 번 ‘마음의 사회학’을 떠올려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83 이면의 무늬 홍일표 개가 개의 꿈에서 빠져나오는 동안 파도의 자세를 이해하는 것은 힘들고 위험한 일 공원의 가로등은 아무것도 결심하지 않았는데 불이 켜지네 겨울이 명백한 휴머니스트라고 말하지 않아도 눈은 내리고 가로등은 끊임없이 어둠의 중얼거림을 거절할 뿐이네 발꿈치에 다른 계절이 눈물처럼 스미는 것 천 년 전 바람이 남긴 말의 각질을 뜯어내며 질기고 딱딱한 공기의 살과 해후하네 나는 드라이아이스 같은 너의 노래를 들으며 여기는 최소한 거기가 아닌 곳이라고 중얼거리지만 여전히 촛불은 미완의 음악 따듯하게 응고된 슬픔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견디는 것 그 사이 수차례 다녀간 눈과 비 봄과 겨울도 모르는 또 다른 목청의 노래가 발바닥이나 겨드랑이에 서식하는 걸 아직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파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네 5분간, 내가 읽지 않은 파도의 표정이 거듭 쓸쓸해지네 ----------------------------------------------------------------------------- 송년, 홍일표 시인의 시집 『매혹의 지도』를 펼쳐 봅니다. 시인의 말에서 그는 “명왕성에 라일락이 피는, 혹은 457년 만의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