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110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이상한 뜻이 없는 나의 생계는 간결할 수 있다 오늘 저녁부터 바람이 차가워진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거라 말해주는 사람들을 새로 사귀어야 했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이의 자서전을 쓰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익숙한 문장들이 손목을 잡고 내 일기로 데려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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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절기가 그러하겠지만, 그 어느 절기보다 ‘마음’이라는 단어를 자주 떠올리게 됩니다. 바람결이 서늘해지고 우리의 내면도 깊어져만 가지요. 시인은 ‘언제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음’에 대해 적고 있지요. 그는 등단 당시 한 인터뷰에서 촌스럽더라도 작고 소외된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음은 어떻게 작동되는 것일까요. 세계는 내내 불편할 것이고, 개인의 고통 역시 사라질 수 없는 것, 그리고 그것들 모두 쉽게 잊진 않으리라는 시인의 윤리 의식은, 그 진정성 있는 언어로 전유되어 우리들의 가슴에 가는 실금의 파동을 남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사회의 모든 현상 속에는 구성원의 마음이 내재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마음은 개인의 마음이 아니라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기억이 공유되어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나중까지 지키고 돌봐야 할 그 무엇. 꽃보다 마음!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