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철새가 있고 텃새가 있다. 육식동물이 있고 초식동물이 있듯이 다들 각자의 모습으로 산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과 다른 이야기를 보면서 불만을 갖는 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삶의 만족 따윈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안정을 가지고 싶은 사람과 남들 눈치 안보고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고, 정신적인 행복을 높게 평가하는 사람과 물질적인 것을 더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원래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는데 전혀 다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만나게 되면 서로 너무도 달라 소통마저도 안 된다.
한번은 아이의 사주가 너무 좋아서 칭찬만을 잔뜩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듣는 엄마는 근심과 걱정으로 좌불안석이 되는 것이었다. 엄마의 생각으로는 지금 공부 잘하고 있고 착실해서 나중에 좋은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다니다가 훌륭한 남편과 결혼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필자는 전혀 다른 말을 해서였다.
그 아이는 창의력과 독창성이 많아서 자기 멋대로 살아갈 사람이었다. 특히 꾸미는 것과 만들기를 좋아해서 피부미용이나 패션계통으로 가면 이름을 날릴만한 사주였었다. 그리고 지금도 학교에서 경연대회 같은 것을 하면 상을 타오는 아이였고, 자신의 주관과 독립심이 뚜렷해서 단순히 시집가서 살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런 말을 들은 엄마는 ‘아이가 아주 나쁜 길로 빠지는 군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착실한 아이가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하죠.’ 라고 묻는 것이었다. 물론 필자는 그 어머니의 사주를 알고 있었다. 사회순응적인 절대 반항 안하며 남들의 시선에 늘 순종하는 아주 착한사람의 사주였다.
그녀에겐 개인의 욕구 따위는 없었다. 남들에게 늘 칭찬만 받는 사람이 그 어머니의 목적이었으니까 딸이 멋대로 살게 된다는 말에 기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미 뱉은 말을 취소할 수도 없고,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 그 어머니에게 변명하느라 너무도 힘들었다.
부부간에는 의외로 정신적인 사람과 물질적인 사람이 만나는 경우가 많다. 한쪽은 돈을 벌고 한쪽은 문화생활과 정신적인 활동을 한다. 또한 사회성이 높은 사람과 개인성이 높은 사람이 같이 살면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가 생기게 된다.
그 둘은 서로 소통이 안 된다고 느끼며 그 갈등에 대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상담하러 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물론 상담하러 온 사람 편에서 배우자에 대해 힘드시겠다고 이야긴 해주지만, 그냥 사람은 다른 것뿐이다. 무엇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며 싫어할 것도 없는 건데, 사람들은 자기 쪽에서만 타인을 본다. 언제나 상담하면서 내놓는 불만은 ‘남들은....’ 이다.
사람은 생각하고 분별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타인을 이해하며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는데, 같이 사는 경우에는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시간과 공간을 같이 하면서 더 이상 같이 사는 사람을 타인이라는 생각을 안 하게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신의 생각대로 타인이 움직여주고 사랑하며 살기를 바라지만, 그건 안 된다. 결국 필자는 이해 따윈 하지 말고 그냥 포기하고 받아들이는 게 제일로 현명한 방법이라고 이야기 해준다. 단지 우린 오해할 뿐이다. 자신의 생각에 비춰 긍정적인 해석을 내리고 꿈을 꿀 뿐이다.
그리고 그런 긍정적인 오해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님의 말씀이 진실함을 가지고 용서하고 베푸는 마음인 충서(忠恕)로 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