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가마 앞에서
박후기
나무토막 같은
청춘을 살았다
불길 속으로
자진해서 들어갔던,
거두절미당한 벌거숭이는
어느새 나무의
후생이 되었다
숯으로 변한 나는
불같은 사랑을
두려워하면서도
마음 한구석
불씨를 숨기고 살아간다
막 배를 가른
죽어가는 짐승의 속처럼,
숯을 꺼낸 빈 가마는
여전히 뜨겁다
우리가 머물렀던 자리도
얼마간 따듯할 것이다
박후기 시인은 가족사를 통해 현대 사회의 모순을 간접 화법으로 드러내는 시인이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 촉촉해서 무엇에 닿던지 서러움이 번진다. 세상에 대한 극진한 사랑 아니면 이룰 수 없는 시세계를 가지게 된 것은 박후기 시인의 미덕이 될 것이다.
「숯가마 앞에서」는 박후기 시인의 내면의 풍경이며 그의 개인사의 뜨거운 성화일 것이다. 그의 나무토막 같았던 청춘은 불길이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 두려울 것이 없었던 질풍노도의 시간들을 지나며 스스로 불타올랐던 청춘은 사라지고 그곳에 새로운 후생, 숯으로 변한 우리들의 몸이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숯은 청춘이 타고 남은 재가 아니라 다시 한번 타오를 불씨를 내장한 정련되고 성숙한 인간이다.
나무토막을 숯이라는 새로운 발화의 물질로 변화시킨 노역의 숯가마는 숯을 꺼내고도 얼마간 뜨겁다. 마치 막 배를 가른 짐승의 속처럼 쉬이 생명의 새로운 치환 증거를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새 몸으로 태어난 숯이 불같은 사랑으로 타올라 소진한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머물렀던 자리의 온기는 얼마간 따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박후기 시인이다.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