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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대표 시인이면서 1998년 ‘문학사상’으로 데뷔한 박해람 시인이 첫 시집을 내 놓았다.
랜덤하우스중앙에서 문예중앙시선 열다섯번째 시집으로 출판된 ‘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가는 사내’는 박 시인이 등단 8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첫 번째 열매인 셈이다.
총 56편의 시가 실린 이번 시집은 시적 여정의 출발을 알리는 ‘버들잎 경전’을 서시로 해 ‘싱싱한 삐걱거림’, ‘편도의 나날’, ‘상처의 등’, ‘위험은, 기억을 키운다.’ 등 싱싱한 죽음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다.
문학평론가인 이혜원씨는 박 시인의 시집에 대해 “제목에서도 엿볼 수 있듯 그는 사람이지만 머잖아 그림자가 될, 풍경이지만 머잖아 벽걸이용 그림이나 달력이 될 죽음의 징후, 배후들을 아주 시원스런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며 “낙서처럼 허허로우면서도 경전과 같은 깊이를 갖는 시, 쓰자마자 지우며 늘 새로워지려 하는 부단한 갱신의 시, 완성되는 순간 미련없이 무로 돌아가는 탈속의 시”라고 평가했다.
이어 “죽음이 한 생애의 마감이 아닌 다른 생애의 시작이라고 보기에 시인은 존재의 마지막 소리인 삐걱거림을 한세상이 생기는 ┯??듣는다”며 “없던 소리가 생긴데서 한 세상의 탄생을 감지하는 시인은 죽음을 삶의 음화가 아닌 또 하나의 세상으로 인정해 종종 삶과 죽음의 미묘한 경계에서 ‘싱싱한 죽음’을 인지한다”고 덧붙였다.
1968년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해 지난 1998년 ‘문학사상’ 신인공모에 ‘수화’외 3편이 당선되면서 등단한 박 시인은 현재 용인문학회 회원이며 용인에서 ‘우리집을 못 찾겠군요’를 운영하고 있다.
단단한 심장
살이 다 썩고 난 후의 복숭아 씨앗은
복숭아의 심장일까 그러고 보면
단단한 것들의 껍질은 너무 약하다
딱닥한 시멘트 바닥에 굴러도 깨어지지 않는
단단한 심장
그 심장이 깨어지고 우연히
그속의 또 다른 하얀 살을 보는 일
살을 부풀리기 이전에 먼저 채웠을 그 잇속을 한참 들
여다본다.
아무것도 건축되지 않은 공터
잠깐의 그늘도 만들지 못한 이 속엣것들은
아껴두었던 후생일까
더러는 까맣게 썩은 것들도 있다
다음 세상에도 못 가는 슬픈 것들.
연약한 이 몸속에도 한 세상이 단단하게 여물고 있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것들은 다른 세상의 일.
가끔 마음 뻐근할 때마다
그것들, 작은 샛길을 내고 있었던 것인가
샛길이란 잎이 다 진 후에 드러나는 길.
껍질은 지금도 붉게 물들어 떨어지고 있는 중인가
속으로 몰래 배신을 키워가고 있는 중인가.
심장에 손을 가만히 얹어본다
수없이 많은 세상들이 두근두근 뛰고 있다
다 내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