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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설마· 정도이다. 그런 사실을 따져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본사에서는 <우리지역 문화재 탐방-은표랑 함께 떠나요>를 이끌고 있는 홍순석교수(강남대)가 작년 1년 동안 일본 고대문화의 거점인 나라현 천리대에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현지에서 조사한 자료와 7.22일-8.2일까지 10일간 홍은표(용인초5)와 이재연(용인대2)이 함께 아스카, 나라, 천리, 오사카지역에 산재한 한국문화유산을 탐방한 결과를 10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주>
■ 일본 야마토 정권과 백제문화의 전파
야마토 정권은 일본 최초의 통일정권으로 3세기 말에서 645년 다이카개신[大化改新]이 일어날 때까지 일본을 지배했다. 3세기에 여왕 히미코[卑彌呼]가 다스리는 야마타이국[邪馬台國]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던 30여 개의 연합국 시대를 거쳐, 4세기 초에는 긴키내[近畿內]의 야마토를 중심으로 통일국가가 생겼는데, 이 통일국가를 지배한 정권이 야마토정권이다.
야마토정권 시대에 이르러 한반도와 중국의 많은 사람들이 일본(왜)으로 건너왔는데, 이들을 도래인(渡來人)으로 부른다. 특히 4세기 말에 백제에서 한자(漢字)와 유교가 전래되고, 6세기 중엽에도 백제로부터 불교가 전래되면서 일본의 문화 수준은 향상되었다. 이 시대의 주역인 쇼토쿠태자[聖德太子]는 아버지 요메이천황(用明天皇)을 대신해 섭정하면서 소가씨[蘇我氏] 등 여러 호족들과 협력해 천황을 중심으로 국가의 틀을 다졌다.
이때 백제는 근초고왕 집정기로 일본에 한학을 전하였다. 근구수왕 때는 왕인 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다. 성왕 때 유귀(柳貴) 등은 오경박사(五經博士)로서 한학과 유학 등을 전하했다. 무왕 때 관륵(觀勒)은 천문 ·역법 ·지리 등을 전하고, 성왕 때(552) 노리사치계는 최초로 불교를 전했으며, 혜총(惠聰)은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되고, 도장은 성실론(成實論)을 저술하였다. 아좌태자는 쇼토쿠태자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그 밖에도 화공(畵工) ·와공(瓦工)· 경사(經師)· 율사(律士)· 의사들을 보냈다. 이와 같이 백제는 일본의 문화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야마토 정권은 622년 쇼토쿠태자가 죽자 막을 내리게 된다. 645년에 권력자 소가씨가 살해되고, 고토쿠[孝德] 천황이 즉위하였다. 처음으로 연호를 정해 645년을 다이카[大化] 원년으로 삼아 이듬해 1월부터 본격적인 개혁정치를 단행하였다. 이 개혁이 다이카개신이다.
■ 일본 나라시대의 한국문화유산
일본 나라(奈良)시대의 문화가 번성한 데는 한민족의 문화전래에 힘입은 바가 크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걸쳐 우리 한민족의 선조들은 선진민족으로서 그들에게 한자·유학·불교·미술 등 문화를 전파하고, 생활용품의 제조기술, 관개용 저수지 축조기술 등을 가르쳐 그들의 문화개발에 공헌을 했다. 나라시대에 가장 유대가 깊었던 나라는 백제로서, 현재에도 나라현 도처에 구다라[百濟]· 와니[和爾:王仁의 音譯] 등의 지명과 구다라사지[百濟寺址] 등 백제계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또 1972년 발굴된 타카마쓰총고분[高松塚古墳] ??안에서는 백제의 영향을 받은 인물, 복장, 동물 등의 벽화가 선명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현재 일본이 자랑하고 있는 삼대목조불상인 호류지(法隆寺)의 <구세관음상(救世觀音像)><백제관음상>, 그리고 코류지(廣隆寺)의 <보관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백제인과 신라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누구라도 일본에서 이러한 문화유산을 접견하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은 말할 나위도 없다.
<홍순석/강남대 교수>
☞ 다음호에는 <아스카지역의 우리 문화유산>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