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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적의 사회읽기

사흘에 한번 꼴로 삼백여 빈집 털이를 해오다 붙잡힌 도둑이 경찰에서 진술한다.
“자넨 어떻게 그렇게 많은 집을 털 수 있었나?”
“안전하다고 믿는 집일수록 털기가 쉽더군요.”
“안전하다니? 도난방지 장치를 말하는가?”
“그런 보안장치 말고도, 사회적으로 위세 있다고 뽐내는 집일수록 털기가 쉽더군요.”
“주로 어떤 집을 털었는데?”
“정치가, 기업가, 고급관리, 부유층 집만 털었습니다.”
“그들 집을 주로 터는 이유는?”
“우리나라엔 그들이 돈을 다 가지고 있잖아요!”
“그들은 봉급쟁이와 같은데 돈이 집에 있겠나?”
“천만에요. 그들이 감춰둔 장소만 알면 가장 쉽습니다.”
“요즘에 집에 돈을 두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나? 자네가 너무 과장하는 것 같은데.”
“그럴까요? 은행에 넣어둔 비자금 통장을 보면 참 우스워요. 현금이나 달러, 귀금속을 감춰두는 인간들도 너무 많구요.”
“특별히 다른 점이 있는가?”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 보면, 그 집의 분위기를 금방 알 수 있어요. 전 빈집에서 한가하게 그 집 주인의 성품, 인격, 지성 정도를 잣대질 해볼 때가 많아요.”
“자넨 여유있는 도둑이구만. 그래 어떤 걸 발견했는데.”
“우선 휘황찬란한 물건이 많아요. 너무 화려하게 치장하더군요. 값의 차인 있지만, 전부 고가품으로 뽐내더군요. 어떨 땐 거실에서 보면, 전에 턴 집하고 너무 똑같아서, 착각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서재인 듯한 방에 들어가 보면, 지적 수준이 천차만별이더군요.”
“어서, 계속 얘기해봐. 좋은 책은 많던가?”
“책이나 많으면 다행이죠. 어떤 집은 정말 이런 친구가 어떻게 저런 자리에 올라갔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아요. 그랜드피아노 위에 세워 논 상장, 기념패, 훈장과는 달리 책이 장식용으로 놓인 집이 많더군요. 그것도 읽을 만한 책도 없이.”
“너무 세상일에 바빠서 그럴 시간이 없겠지, 아니면 모든 지식을 인터넷으로 흡수하던가.”
“그랬으면 제가 비록 도둑이지만 애국심을 들먹이진 않겠죠. 보는 게 고작 성공기법, 성격 개조, 적극적 사고 향상과 관련된 대중서적 뿐입니다. 인생에 대한 깊은 사유를 하는 사람들이 없더군요. 제가 비록 도둑이지만, 남의 집의 거실에 앉아서 한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습죠 도둑이 나라 걱정하는 게.”
“웃기지 말게. 자넨 남의 집이나 터는 도둑놈에 불과하네.”
“천만에요. 저만큼 사회지도인사들의 내면세계를 잘 아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TV나 대중쇼에 나와서 웃으며 손이나 흔드는 저들의 진짜 모습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형사 나으리도 파악해드릴까요?”
“난 그만 두고. 그 집 돈을 다 어쨌는가?”
“전 가난한 놈이라서, 사실 번 돈을 다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사회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디에 주었는데?” “우선 술집에 좀 주고, 양로원에 가끔씩 던져주고, 도서관에 책 사서 보내주고, 돈 줄 곳이 너무 많아서 탈이더군요.”
“훔친 돈으로 생색을 잘 냈구만.”
“저라도 나누어 주지 않으면, 정치꾼이나 관리인들이 빌게이츠 같은 자선사업 하겠습니까? 제가 비록 돈을 훔치는 나쁜 놈이지만, 나라 걱정은 합니다. 메꼼하게 차려입고 연설이나 하는 놈들보다는 제가 더 진솔한 게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