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인신문 | 임신 소식을 알린 순간부터 질문은 정해져 있다. “아들이야? 딸이야?” 아직 입덧이 끝나지도 않았고, 초음파로 콩알 같은 심장만 확인했을 뿐인데 세상은 벌써 성별을 묻는다. 이름은 뭘로 지을지, 옷은 분홍인지 파랑인지, 성격은 활달할지 조심스러울지까지 앞서간다. 이쯤 되면 아이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인생 시나리오는 이미 반쯤 쓰여 있는 셈이다.
사실 성별은 이미 끝났다. 남아인지 여아인지는 임신 사실을 알기 훨씬 전에, 아주 찰나의 순간에 이미 결정됐다. 수정이 되는 바로 그 순간이다. 난자는 늘 X 염색체 하나를 들고 있고, 정자는 X 아니면 Y 둘 중 하나를 들고 온다. X가 들어오면 딸이고, Y가 들어오면 아들이다. 엄마가 뭘 먹었는지, 어떤 자세였는지, 달력이 어느 날이었는지는 결정적이지 않다.
성별이 정해지면 자궁 안에서는 제법 다른 풍경이 만들어진다. 남아 태아와 여아 태아는 자라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남아 태아는 임신 중반 이후 남성호르몬의 영향을 받으며 근육과 신체 쪽에 에너지를 많이 쓴다. 그래서인지 태동이 크고 거칠게 느껴진다고 말하는 임산부도 많다.
반면, 여아 태아는 비교적 안정적인 호르몬 환경에서 감각과 정서 처리와 관련된 뇌 발달이 빠른 편이다. 같은 주수인데도 “얘는 조용히 안에서 반응하는 느낌이에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모든 아이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문제는 이 ‘경향’을 곧바로 성격이나 미래의 모습으로 확대 해석해버리는 우리의 상상력이다. 다만 평균적인 경향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질문이 이어진다. “그럼 태교도 남아용, 여아용으로 나눠야 하나요?” 결론부터 말하면, 태교의 핵심은 성별과 크게 상관없다. 태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의 장르가 아니라 엄마의 심박수이고, 책의 내용이 아니라 엄마 목소리의 리듬이다. 엄마가 긴장하면 그 긴장이 고스란히 전달되고, 엄마가 편안하면 그 안정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태교의 본질은 늘 같다. 잘 먹고, 잘 자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줄이는 일이다. 태교의 대상은 아이가 아니라, 사실상 엄마의 신경계다. 성별보다 훨씬 중요한 건 엄마의 신경계 상태다.
다만 아주 미세한 차이는 있다. 남아 태아는 임신 중 스트레스에 조금 더 취약하다는 보고들이 있다. 조산이나 저체중 출생 비율이 남아에서 약간 더 높은 이유다. 그래서 “아들이니까 튼튼하겠지”라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더 쉬고, 더 느긋해지는 태교가 필요하다. 여아 태아는 비교적 임신 유지가 안정적인 경우가 많지만, 감정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어 잦은 감정 롤러코스터보다는 일정한 정서 리듬이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차이를 ‘성별별 육아 매뉴얼’로 오해하는 순간 태교는 과학을 떠난다. 그렇다고 해서 남아에게는 격렬한 음악을, 여아에게는 잔잔한 클래식을 들려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태아는 아직 ‘성별 역할’을 배우지 않는다. 태아가 느끼는 건 엄마가 그 음악을 들으며 편안한지 아닌지다.
그래서 태교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아들이냐, 딸이냐”가 아니라 “지금 이 아이는 편안한가”다. 성별은 이미 결정되었다. 바꿀 수도 없고, 바꿀 필요도 없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다. 이 작은 생명이 이 세상에 도착할 때까지 엄마 자신부터 안정되는 일이다. 성별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해도 충분하다.
“아들인지 딸인지는 이미 정해졌고, 지금은 잘 크는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