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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시론]항일무장투쟁이 죄가 되는 나라

이우현(전 용인시의회 의장)

 

[용인신문] 결론부터 말하자면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차라리 중앙아시아로 보내드리자. 처음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 교정에서 치운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눈과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이 아직도 친일파의 세상이라는데 절망했다.

 

지난 2018년 벽두,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있는 홍범도 장군 묘소에 성묘를 겸해 참배했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한겨울 빙판길로 변한 열악한 도로를 10시간이 넘도록 달려서 찾아간 홍범도 장군의 묘소. 홍범도 거리라고 명명된 묘소 앞의 길을 조그만 태극기를 들고서 걸었다. 장군의 묘소는 잘 가꾸어져 있었고 근엄한 표정의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모셔져 있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도 홍범도 장군은 이렇게 존경받았고 20만 한인사회의 정신적인 지주였다. 홍범도 장군에 대한 한인사회의 존경심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섰다.

 

홍범도 장군은 1922년 말 모스크바에서 대한민국 항일 독립운동가 중에 최초로 블라디미르 레닌을 단독으로 만나 상아로 장식된 권총과 금화 100루블, 적군(赤軍)의 장교복을 선물로 받았다. 그 자리에는 볼셰비키 적군 총사령관 레프 트로츠키가 배석했다. 당시 막 수립된 소비에트 공화국연방(USSR)은 1919년 4월 11일 상해에 수립된 대한민국 망명정부를 최초로 승인한 나라다.

 

당시 레닌은 독립축하금으로 40만 루블의 지원을 약속하고 먼저 20만 루블을 보내 대한민국의 독립을 축하했다. 홍범도 장군은 유일했던 우방국의 국가원수와 단독회담을 하였고 대한민국의 지원을 약속받았다. 홍범도 장군이 레닌에게 이처럼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은 러시아 내전에 국제 간섭군으로 3개 정규사단을 파견하여 백군을 돕고 러시아 연해주 일대를 점령하고 있던 일본군과 맞서 싸운 공로에 따른 것이었다.

 

홍범도 장군은 지금 친일파들이 시비를 걸고 있는 볼셰비키 적군의 선봉부대였던 고려인 파르티잔 독립여단의 사령관으로 일제와 싸웠고, 1923년 연해주 일대에서 일본군을 완전히 몰아냈다. 이것은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유일한 우방국을 지원하여 일본군을 무찌른 것이 죄라면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는 일본제국에 반역죄를 저지른 반역자들이다. 당시 대한제국은 1910년 국권을 상실하여 9년을 무정부 상태로 있다가 1919년 4월 11일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법통을 계승했다.

 

독립운동가는 물론이고 조선의 백성에게 유일한 합법정부는 상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친일파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일본제국 천황폐하의 신민(臣民)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고, 가문의 영광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과거 친일을 했다면 그것을 반성하는 것이 정상이다.

 

조국이 광복된 지 78년이 지나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가 재건립(再建立)된 지 75년이 지났는데도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불세출의 애국지사가 친일파에게 박해를 받고 있다. 국방부는 육사에 설치한 항일 독립운동 전시실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슬그머니 수당(隨唐)과 거란의 침입을 막아낸 역사관을 설치했다고 한다. 왜? 그들은 항일 독립운동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일까? 현직 국가보훈부 장관은 대표적인 친일파의 한사람으로 거론되었던 故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을 직권으로 기록 말소를 시켰다고 한다. 백선엽 장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는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일본군 간도 토벌대로 만주 일대의 독립운동가를 박해한 죄과가 면죄(免罪)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홍범도 장군의 흉상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이것이 말끔하게 정리되려면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고 두 번 다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재론하는 사람이 있다면 친일파로 간주하겠다‘고 선언하면 된다. 일제가 가장 두려워하고 싫어했던 홍범도 장군을 계속 욕되게 할 거라면 차라리 유해를 정중하게 수습하여 중앙아시아 한인의 품으로 보내드리자. 홍범도 장군은 친일파들에게는 망령(亡靈)이지만 여전히 중앙아시아 한인사회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구심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