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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흉포한 이 세태에 풍류 순풍 불어오길 바라며

이경철(시인·문학평론가)

 

[용인신문] 덥다 더워. 절기는 서늘함 깃드는 처서處暑 넘어 찬 이슬 내린다는 백로白露로 가고 있는데도 더위는 지긋지긋 계속되고 있다. 귀청을 찢어대는 매미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뉴스들이 더욱 덥게 한다. 더 이상 못 참고 막말로 뚜껑이 열릴 지경이다.

 

폭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지하도 참사와 최후진국 같은 잼버리대회 국제 망신. 연일 터져 나오는 묻지 마 칼부림 사건과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류. 꼴 보기도 역겨운 정쟁政爭 등등이 뚜껑을 열리게 만들고 있다.

 

계속되는 더위와 흉악한 세태에 창조적 활동은 할 수 없어 일단 접고 우리네 한국인 마음과 문화의 근본은 어떠한가를 다시금 공부하고 살피고 있다. 신라 당대 국제적 지성 최치원은 “우리나라에는 예부터 전해오는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 했다”고 현전하는 우리 최고 역사서 <삼국사기>는 쓰고 있다.

 

최치원은 풍류를 불교, 도교, 유교 삼교를 본래부터 포괄하고 있으면서 (實乃包含三敎) 우주 만물과 접하여 교감하며 서로서로 살려내는 접화군생接化群生 도라고 했다. 하여 인간은 물론 우주 삼라만상과 더불어 순조롭고 신명 나게 살며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도 풍류에서 나왔을 것이다. 물론 세상을 하늘의 이치, 도道로서 다스리는 재세이화在世理化 정신도 풍류에서 발원해 우리 민족의 핏줄을 연연히 흘러내리고 있을 것이다.

 

신시 배달국을 연 환웅으로부터 전해왔다는 <삼일신고三一神誥>에는 인간이 어떻게 신 같은 존재가 되어 이 땅에 대동세상을 여는가라는 우리 민족의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삼일’은 3이 1이 되고 1이 3이 되는 순환의 진리에 따라 1인 신이 3인 인간이 되고 3인 인간이 1인 신이 되는 이치를 담고 있다.

 

1이 3이 되는 과정이 ‘성통性通’, 3이 1이 되는 과정은 ‘공완功完’이다. 1은 일신강충一神降衷이고 3은 성통광명性通光明, 재세이화, 홍익인간으로 볼 수 있다. 성통은 원래의 자신의 모습이 하느님의 참됨임을 깨닫는 것이다. 하느님의 참됨으로 되돌아가는, 자신의 본 모습을 되찾는 도통道通의 과정이 성통이다.

 

이것은 불교에서 누구에게든, 아니 우주 만물에 불성佛性이 있어 마음을 갈고 닦아 깨달으면 부처가 된다는 것과 같다. 유교에서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의 현실태와도 같다. 물론 신선神仙을 지향하는 도교와 그대로 상통한다.

 

공완은 성통으로 자기완성을 이룩한 사람이 자신의 내부 하느님 뜻으로 성통광명, 이화세계, 홍익인간 세상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이런 도, 풍류를 깨닫고 멋있게 사는 사람이 환웅과 단군이요 우리 민족이다.

 

“무릇 순풍純風이 불지 않으면 세상 도리가 참됨에 어긋나고, 그윽한 덕화德化가 펴지지 않으면 사악한 것이 서로 경쟁한다. 그러므로 제왕이 연호年號를 세움에 몸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

 

신라의 영토를 크게 넓혀 후대에 삼국을 통일하게 한 초석을 놓은 신라 진흥왕이 넓힌 강역을 순시하며 세운 순수비에 새겨넣은 글 앞부분이다. ‘순풍’과 ‘덕화’라는 대목에서도 풍류를 들여다볼 수 있다. 위정자들은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 이처럼 순풍과 덕화의 풍류, 풍속을 잃지 않고 갈고 닦으며 살아왔다.

 

그런 풍류가 문화적 측면에서는 지금 ‘한류韓流’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으로 신명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데도 올여름 무더위 속 정치권은 요 모양 요 꼴이라니. 가위 뚜껑이 열릴 지경이다. 아니 뚜껑 열려 날뛰는 칼부림이 백주대낮에 횡행하고 있으니 우리 민족의 본래면목인 풍류도 되돌아보며 순풍을 불러일으킬 일이다.